구제역 살처분 현황 공개 ‘미적’…누리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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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도 울부짖고, 사람도 울었다. 전국 농가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구제역’은 씻기 힘든 후유증을 남겼다. 전국 소·돼지 농가를 대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350만마리 소·돼지 등 가축이 묻혔다. 시체로 묻힌 경우라면 그나마 낫다. 구제역 발병 대상 지역으로 지정된 농가에선 목숨이 붙은 소와 돼지가 떠밀리듯 구덩이에 파묻혔다. 묻히기 전 새끼에게 마지막 힘을 짜내 젖을 먹이던 어미소도, 젖을 마신 송아지도 따라 묻혔다. 생지옥이다.

허나 막막하고 답답하다. 어느 지역에 몇 마리나 묻혔을까. 핏물이 하수도로 스며들고 악취가 진동하지만, 어느 지역이 몸살을 앓는지 제대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지자체마다 살처분 내역을 더러 공개하긴 해도,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도 않을 뿐더러 전체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실정이다.

보다못한 이용자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전국 구제역 살처분 현황을 직접 지도와 도표로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IT 서비스는 이럴 때 유용하다. 누구나 읽고, 쓰고, 편집할 수 있는 온라인 문서를 띄웠고, 해당 지역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누리꾼들이 협업 방식으로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백욱인(@netuuk)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2월27일 저녁 6시께 개인 블로그에 올린 ‘구제역 매몰지 감시‘ 글을 보자. “정부는 3월말까지 사태를 수습하고 최첨단 IT기술로 실시간 오염 감시체제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매몰지에 대한 기초 자료 공개는 미루고 있습니다. […] 기초 실태 파악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일이 그리 오래 걸릴 리도 없는 데 뭘 하고 있는걸까요. 그 정도 작업으로 질질 끄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 매몰지 관리를 맡기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황당한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협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구글맵과 파노라마 사진 공유 서비스 파노라미오를 활용해 이용자들이 직접 구제역 살처분 현황을 기록하자는 제안이다. 해당 지역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구글 지도도 열었다. 백 교수는 이같은 작업이 지금처럼 더디고 힘겹게 진행될 일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른바 ‘첨단 IT’를 활용해도 얼마든지 빠르고 효과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공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심산이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트위터로 백 교수 제안을 본 다른 이용자 조양호(@asincho)씨는 전국 구제역 매물지 지도를 만들기 위한 기초 데이터 문서를 온라인에 띄웠다. 이 문서는 구글 문서도구를 써서 누구나 온라인으로 접속해 읽고, 쓰고, 고칠 수 있게 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구제역 매물지 정보를 구글 문서에 기록하고, 지도에 위치를 등록하면 된다. 한 사람이 작업하면 더디지만, 여럿이 힘을 모으면 어렵잖다. 공개된 서비스와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트위터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구제역 매몰지 정보 공유 감시‘ 모임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살처분 현황 데이터 작성에 참여하길 권유하는 글을 ‘#pig3mil‘ 해시태그를 붙여 퍼뜨리고 있다. 트위터에서 이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글과 현황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

누리꾼들이 이처럼 스스로 나선 이유는 정부가 관련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월 중순, “지리정보시스템 등 첨단 IT를 활용해 각 부처에 분산된 지도를 통합한 종합 정보지도를 올해 상반기 안에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어느 지역에 얼마나 많은 가축이 묻혔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가 2월17일 경기도내 매몰지 현황 자료를 내놓았지만, 매몰 장소를 리 단위까지만 공개해 정확한 지역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이와 관련해 지난 2월9일 농림부와 환경부, 행정안전부 등에 정보공개 청구 신청을 했지만, 보름이 넘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자료를 받지 못한 상태다. 정보공개 청구 신청을 한 세 부처 가운데 행안부는 전국 광역시·도별 매몰지 수만 공개했고, 환경부는 ‘보유 자료가 없다’고 전화상으로 답변했다. 농림부가 그나마 5개 도별 구제역 발생지를 시간별로 공개했지만, 발생 장소를 리 단위까지만 공개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매몰지 면적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구제역 살처분 관련 정보는 국민 건강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하루빨리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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