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먼데이]섭종 없는 게임 시대를 연 ‘플라네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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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조명해봅니다.

본문에 앞서 기자는 한때 넥슨의 ‘듀랑고’란 게임을 즐겨했다. 오픈 첫날부터 ‘섭종(서버 종료)’하던 날까지 거의 매일 접속했을 만큼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몇 장의 스크린샷 뿐이다. 넥슨이 서비스를 종료함과 동시에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아쉬었지만 그저 보내줄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오랜만에 듀랑고에 대한 아쉬움들이 솟구쳤다. 블록체인 게임엔진으로 ‘섭종 없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스타트업 ‘플라네타리움’ 이야기다.

김재석, 서기준 플라네타리움 공동대표

“비트코인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운영 주체도 없지만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도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을 통해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했어요.” 서기준 플라네타리움 공동대표의 말이다.

블록체인은 분산화된 형태의 디지털 장부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개개인이 데이터 기록자 겸 서버 역할을 하므로 단 한 명의 사용자만 있어도 전체 데이터가 유지되는 반영구성이 특징이다. 플라네타리움은 이런 블록체인의 성질과 오픈소스의 장점을 융합한 게임엔진 ‘립플래닛’을 통해 새로운 유저 중심 게임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블록체인과 오픈소스가 만나면 어떤 게임이 만들어질까? 서기준 대표는 “게임의 영속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선 유저가 게임을 접하는 시각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언젠가 사라질 게임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게임을 향한 애정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서 대표는 “또 게임 코드와 데이터가 개방되는 오픈소스의 특성상 유저에 의한 2차 창작 생태계도 활발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환경에서 게임의 수명과 생태계 성장 방향성은 게임사가 아닌 유저에게 주어진다. 게다가 립플래닛으로 만든 게임은 게임 전체가 오롯이 블록체인 위에서 구동된다. 일부 반쪽짜리 블록체인 게임과 달리 게임사가 문을 닫아도 게임은 유저에게 남을 수 있는 이유다. 또 게임사의 업데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저들은 이를 거부하고 업데이트 전 ‘구세계’ 게임으로 독립하는 일도 가능하다. 블록체인의 포크(Fork) 개념을 이용하는 것으로, 게임의 생사와 변화가 개발사 독단으로만 이뤄졌던 기존 게임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게임사 입장에선 어떤 이점이 있을까? 김재석 공동대표는 “수년 이상 애지중지 만든 게임이 운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2차 창작 생태계가 활성화된 게임에선 개발자가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9.12.18 섭종의 기록 – 아마 듀랑고도 ‘어쩔 수 없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소형 게임사라면 VC 투자 및 펀딩 외에도 블록체인 아이템 사전 판매를 통한 개발 자금 확보 채널을 추가할 수 있다. 플라네타리움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블록체인 게임 ‘나인 크로니클’ 개발 당시 40만달러(한화 4억3600만원)의 사전 투자금을 유치에 성공했다. 보통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평균 6000만원의 자금이 확보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또 립플래닛으로 만든 게임은 가상자산(암호화폐)를 사용하지 않아 기존 블록체인 게임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그동안 수익화 및 마케팅 요소로 도입돼 왔던 게임 내 가상자산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가상자산 거래소 가입·인증 절차가 필요해 적잖은 사용자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김 대표는 “굳이 가상자산이 아니더라도 립플래닛 생태계 내에서 게임 간 아이템 거래 등이 가능한 수준의 호환성은 갖춰뒀다”고 설명했다.

플라네타리움의 블록체인 게임 나인 크로니클 인게임 자료 (자료=나인코퍼레이션)

이 외에도 장점은 많다. 김 대표는 “흥행 여부와 관계 없이 게임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점도 제작자들 입장에선 서비스 부담을 덜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스가 공개된 환경에서의 게임 조작 위험은 블록체인이 갖는 무결성에 따라 방지되며 아이템 뽑기 등 게임 플레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도 모두에게 투명히 공개된다.

이처럼 플라네타리움은 기존 게임 제작 및 서비스 환경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보완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곧 투자 유치로 이어져 네이버 D2SF 외 4개 액셀러레이터·투자사는 지난 6일 플라네타리움(법인명 나인코퍼레이션)에 총 21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누적 투자금액은 총 35억원이다.

두 공동대표는 이번 투자금 일부를 나인 크로니클 및 엔진 고도화에 쓰겠다고 밝혔다. 또 합의 알고리즘 개선을 통해 턴 베이스 기반을 넘어 거의 모든 게임을 립플래닛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모바일 환경 지원 및 원활한 엔진 활용을 위한 API 문서화, 인터페이스 개선을 통해 더 많은 게임사의 립플래닛 생태계 참여를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플라네타리움 임직원 일동 (사진=나인코퍼레이션)

특히 이번 투자로 한층 넉넉해진 ‘실탄’은 인재 충원으로 이어진다. 김 대표는 “우리는 게임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오픈소스 오리엔티드 게임사”라며 “성장 저변을 넓히고 싶은 개발자가 있다면 문을 두드려 달라”고 말했다. 서 대표도 “현재 8000명 이상의 커뮤니티 사용자들과 소통하며 게임을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엔진 개발 및 서비스 경험까지 모두 쌓을 수 있는 다이나믹한 환경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