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SK이노 추격 허용한 삼성SDI, ‘초격차’ 전략은 반도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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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삼성SDI 건물.(사진=삼성SDI)

지난 20일 국내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기준(중국 시장 제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에 이은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3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순위만 놓고 보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의 입지가 아주 탄탄해 보이는데요.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며 시장 확장에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것과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물론 삼성SDI도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지만 온도차는 확실해 보입니다.

(출처=SNE리서치)

구체적으로 지난해 삼성SDI의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3.8Gwh에서 6.7Gwh로 76.3% 증가했고, 점유율도 8.5%에서 10.3%로 1.8% 포인트 상승하는 등 양호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성장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요.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배터리 사용량을 전년 10.9Gwh에서 20.3Gwh로 두 배 가까이 늘렸고요. 점유율 또한 24.1%에서 31.1%로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1위 파나소닉과의 사용량 차이는 기존 10.4Gwh에서 1.2Gwh로 줄어들었고, 점유율 차이도 23.2% 포인트에서 1.9%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 역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2019년만 하더라도 사용량은 1.9Gwh로 선두권 업체들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년 만에 사용량을 6.5Gwh로 늘리며 3위 삼성SDI(6.7Gwh)를 턱밑까지 따라붙었습니다. 점유율 차이도 0.4% 포인트에 불과합니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사용량 기준 삼성SDI를 추월할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출처=각사 및 증권가.)

배터리 생산능력도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를 앞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증권업계가 추정하는 2021년 각사 배터리 생산능력 추정치는 LG에너지솔루션이 156Gwh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SK이노베이션(50Gwh)입니다. 삼성SDI의 추정 생산능력은 41Gwh로 SK이노베이션에 약 10Gwh 밀립니다.

이처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단기간에 사용량을 늘릴 수 있던 배경에는 공격적 투자가 자리합니다. 과거 LG화학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전지사업부문(현 LG에너지솔루션)에 배정된 투자금액은 총 6조8000억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부터 7조7000억원의 투자를 계획해 지난해 3분기까지 4조원가량을 쏟아 부었습니다. 투자규모만 놓고보면 두 업체가 배터리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각사 사업보고서.)

무엇보다 두 업체는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해 재무부담 가중은 물론이고 사업구조 재편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2020년 3분기 연결기준 LG화학의 부채비율은 112.6%로 집계됐습니다. 2016년 부채비율이 45.8%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4년 만에 두 배 넘게 부채비율이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총차입금은 2조9000억원 규모에서 11조30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늘었구요.

SK이노베이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6년 78%였던 부채비율은 2020년 3분기 150% 가까이 치솟았고, 총차입금 규모도 6조6000억원에서 15조700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출처=한국기업평가.)

두 업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추가 투자 방안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LG화학은 전지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한 이후 빠르게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자본금을 조달해 투자에 활용하기 위해서죠.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과, SKIET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삼성SDI도 배터리 사업 확장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2017년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준공했으며, 현재 증설을 통해 생산량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두 업체와 비교해 구체적인 투자규모와 투자내역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에너지솔루션(전지사업) 부문에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조원 가까운 투자를 실시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소형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도 포함돼 있어 순수 전기차 배터리를 위한 투자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출처=사업보고서.)

다만 앞서 언급했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인 투자와는 확실히 온도차가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삼성SDI의 2020년 3분기 부채비율은 60.5%로 상당히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습니다. 총차입금 규모는 2016년 9500억원에서 2020년 3분기 약 4조원으로 늘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과 비교하자면 아주 많이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무구조 악화를 감수하며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사업 확장에 대한 욕심이 적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죠.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예전부터 삼성SDI가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도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평가 받는다”고 했습니다.

(출처=한국기업평가.)

재계서는 삼성SDI의 그룹 내 포지션을 비교적 조용한 움직임의 근거로 꼽기도 합니다. LG그룹과 SK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찍고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죠. LG그룹은 특히 최근 계열분리 및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매각 검토 등 사업구조를 뜯어 고치고 있습니다. SK그룹도 마찬가지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바이오, 통신, 반도체 사업과 함께 미래 주력 사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성도 전기차 배터리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고 투자를 벌이고 있지만,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 대한 투자와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룹 차원에서 보자면 대만 TSMC와의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경쟁이 가장 화두죠.

물론 삼성SDI는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는 수익성 위주로 사업을 꾸려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하기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최근 들어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이에 따라 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투자를 검토하는 등 현재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격차를 만드는 삼성의 ‘초격차’ 전략이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LG와 SK처럼 시장 선점이 우선인지, 아니면 삼성처럼 수익성 확보가 우선인지, 둘 중 무엇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향후 결과가 답을 말해주겠죠. 다만 앞으로 5년 뒤 다른 전략을 선택한 삼성SDI가 과연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