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변화는 사치’…LS그룹 3세, 보수 DNA 뚫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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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LS그룹 오너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착실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9년도부터 오너일가 3세들이 하나 둘 승진과 함께 계열사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죠. 특히 작년 말에 실시한 임원인사는 확실한 세대교체를 알리는 상징적인 인사였습니다.

고(故)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인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예스코홀딩스 CEO(최고경영자)를 맡았고요.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인 구본규 LS엠트론 부사장도 LS엠트론 CEO에 올랐습니다. 그룹 3세가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직 대표이사를 맡지 않은 오너 3세들도 초고속 승진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 E1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올해 이사회를 통해 등기임원에 선임될 예정입니다.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의 장남 구본권 상무는 지난 임원인사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만 1년 전인 2019년 말 인사를 통해 상무로 승진한 바 있습니다.

(왼쪽부터)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CEO, 구본규 LS엠트론 CEO, 구동휘 E1 COO.(사진=LS그룹)

이 외에도 LS그룹 오너일가 3세 경영인으로는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인 구본웅 포메이션그룹 대표가 있는데요. 구 대표는 일찌감치 그룹 밖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밴처캐피털을 세워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룹 오너 경영진의 세대교체는 단순히 대를 이어 경영을 해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룹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죠.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끊임없이 죽고,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 인류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LS그룹은 대기업집단 중에서도 보수적인 경영스타일로 정평이 높습니다. 그룹 각 계열사들이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에 매진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입니다. 잘 하는 것을 유지 혹은 더 잘하려고 하는 것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새로 뚫고 가려는 것은 다르죠.

그룹의 보수성은 사업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LS그룹은 독특하게도 ㈜LS와 예스코홀딩스 두 개의 지주사 경영체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지주사들을 중심으로 주요 계열사들이 뿌리내리는 형태인데요. ㈜LS에는 LS니꼬동제련, LS일렉트릭, LS엠트론, LS전선 등 제련, 전력설비, 케이블 사업자들이 포함돼 있고요. 예스코홀딩스에는 도시가스사업자인 예스코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사업자 한성PC건설 등이 속해 있습니다. 액화천연가스 사업을 영위하는 E1은 그룹 내 또 다른 세력을 이루고 있지만, 예스코이에스 지분을 일부 보유해 예스코홀딩스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룹 계열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각 시장에서의 지위가 확고하다는 데 있습니다. LS니꼬동제련은 국내 유일의 전기동 생산업체로 사실상 국내서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LS니꼬동제련이 생산하는 전기동은 전선업체의 필수 재료입니다. LS전선은 LS니꼬동제련으로부터 전기동을 사들여 전선을 만들어 파는데, 이 전선 시장 또한 사실상 과점화된 상태입니다. 시장 1위의 LS전선이 현재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을 인수하지 못하는 이유로 독과점 규제가 꼽힐 정도죠.

LS그룹 지배구조.(출처=공정거래위원회.)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예스코홀딩스의 자회사 예스코가 영위하는 도시가스 사업은 산업 자체가 독점적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일정 공급권역을 승인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E1의 LPG 사업 또한 과점형태로 이뤄져 있습니다. SK가스와 E1 두 개 업체가 시장의 주요 사업자들이고요. 이미 전국 주요 유통망을 확보해놓은 상태라 신규 사업자들이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독과점적 시장 지위를 활용한 사업포트폴리오는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혁신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굳이 모험을 시도하지 않아도 사업이 잘 되기 때문이죠.

이를 고려하면 LS그룹이 2017년 PEF운용사 KKR에 동박업체 KCFT(현 SK넥실리스)를 매각한 것은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LS그룹은 당시 LS엠트론 내 동박 사업부를 KKR에 3000억원에 팔았습니다. 이후 KKR이 이 동박사업을 SKC에 1조2000억원에 도로 팔며 LS그룹이 헐값에 KCFT를 매각했다는 뒷말도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LS그룹은 LS오토모티브 매각과 얽힌 딜이라며 절대 손해 본 거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주요 사업을 매각했다는 것이죠.

SKC에 편입된 SK넥실리스는 매 분기마다 실적을 개선하며 벌써 주력 사업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 중인 SKC는 SK넥실리스의 전기차 동박 사업을 ‘모빌리티’ 사업이라 이름 붙이고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1조2000억원의 투자가 과도한 것인지, 아니면 LS그룹이 당시 SK넥실리스를 헐값에 팔았는지 적확한 평가는 어렵겠죠. 확실한 것은 SK그룹은 재무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기차 시장에 과감히 베팅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LS그룹이 신사업에 완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말 현대차와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해 발전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 상호협력(MOU)을 체결했고요. LS엠트론은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관련 사업 강화를 위해 울트라캐패시티(UC) 사업팀을 물적분할해 LS머티리얼즈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요 대기업그룹이 수소, 전기차,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정도는 확실히 아니죠.

LS그룹의 3세 경영시대가 펼쳐지며 그룹 주요 계열사들에서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투자 기조, 사업 방향성, 신사업 등에서 일부 수정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죠. LS그룹의 오너 3세들은 과연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회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그룹의 보수적인 DNA를 뚫어내지 못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