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스토리지] 스토리지 시장, 그 ‘빅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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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커다란 인수합병이 2건이나 있었습니다. 웨스턴디지털이 히타치GST를 인수함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시장점유율 1위의 기업이 되었고, 넷앱은 LSI의 외장형 스토리지 사업을 인수하여 엔트리 부문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웨스턴디지털의 히타치GST 인수를 통해 본 HDD 기업의 인수 역사

스토리지 기업들의 인수 합병 건 중에서 가장 높은 인수 금액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IT 업계에서도 40억 달러 이상의 인수합병건은 별로 없더군요. HDD 기업을 인수하는 데 43억 달러라는 규모는 이 시장에서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웨스턴디지털은 2010년 시장점유율을 31.2%까지 끌어올리며 1위에 등극했는데 이번에 히타치GST를 인수하면서 확실한 1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업용 제품과 하이엔드 HDD 시장으로 진출, 그리고 SSD 사업의 확대 등은 긍정적인 기대효과라고 생각됩니다. (2010년 4분기 HDD 수요 조사 결과 참조)

HDD에 대한 웨스턴디지털의 관심은 정말 대단합니다. 후지쯔 HDD를 인수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고 심지어는 씨게이트에 인수의향을 밝힌 적도 있습니다. 특히 씨게이트 인수 협상의 경우 초미의 관심속에 지난 2010년 12월에 진행됐는데 결국 무산되었죠. 결렬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너무 큰 인수 비용과 두 회사의 제품군이 워낙 겹쳐 인수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점 등이 꼽혔습니다. 현재 씨게이트는 69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후지쯔도 도시바가 인수하는 바람에 웨스턴디지털의 야망은 결국 히타치GST를 43억 달러에 인수하는 기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2011년 4분기 HDD 공급자들의 시장 점유율>

2010-CQ4

HDD 시장은 인수와 합병의 역사입니다. 현재 씨게이트, 웨스턴디지털, 삼성전자, 도시바 등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2강 2약의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요?

먼저 씨게이트의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씨게이트는 1979년 설립된 기업인데요, 1980년 최초로 5.25인치 디스크 드라이브를 제조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9년 임프리미스라는 부품업체를 4억5천만 달러를 주고 인수해 제조 능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5년 상당히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 나오게 되는데요. 당시 코너(Conner)라는 HDD 제조업체가 있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코너의 HDD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 코너를 씨게이트가 인수했습니다. 무려 10억4천만 달러라는 금액을 지불했다고 하는군요. 코너를 설립했던 설립자와 씨게이트의 설립자는 예전에 서로 동업 관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코너는 최초로 3.5인치 디스크를 개발한 기업으로 기술력은 있었으나 재정상의 위기로 씨게이트에 회사를 넘기게 됩니다.

씨게이트가 코너를 인수하던 시기에 한국의 기업들도 미국의 IT 기업들 인수에 나섭니다. HDD만 놓고 보면, 1996년 현대전자가 맥스터(Maxtor)를 인수합니다. LG전자도 제니스(Zenith)를 인수하고 삼성전자는 AST를 인수하는데, LG전자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후에 맥스터(Maxtor)는 2000년 퀀텀(Quanum)을 13억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사실 HDD는 IBM이 처음 개발했는데, IT의 역사에서 IBM은 참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기업입니다. HDD 뿐만 아니라 굵직한 IT 흐름에는 항상 IBM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1등 자리를 차지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2년 IBM이 자신의 HDD를 히타치에 매각합니다. 히타치의 인수 금액은 20억5천만 달러였습니다. 당시 IBM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에 초점을 두고자 했고 계속애서 적자를 내는 HDD 사업을 이때 정리하게 됩니다.

HDD의 역사에서 퀀텀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HDD와 테이프 스토리지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기업입니다. 오늘은 HDD에 국한해서 보겠습니다. 퀀텀의 HDD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DEC의 데이터 스토리지 사업부를 3억4천8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당시 퀀텀은 DLT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DEC의 HDD 기술인수를 통해 SCSI드라이브에 관한 전문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좀 아쉬운 점은 이때 스토리지웍스(StorageWorks)라는 브랜드를 가져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DEC의 스토리지 부문 인수 후 기업용 디스크 시장에서 1,000RPM 디스크 개발에 성공하고 ‘파이어볼'(Fireball) 시리즈 등으로 잘 나가던 퀀텀은 전략적인 의사결정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HDD 개발의 주안점을 성능이나 속도 보다는 용량에 집중해 3,600rpm의 속도에서 돌아가는 HDD를 출시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2000년 들면서 PC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지고 이러한 현상은 HDD 제조업체들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는데 퀀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퀀텀은 2000년 맥스터에 13억 달러에 매각됩니다.

한편 맥스터는 1981년 설립해 1985년 기업공개(IPO), 1990년 미니스크라이브(MiniScribe)라는 HDD 기업을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하였습니다. 1992년 재정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회생하게 되는데 1996년 현대전자가 참여하고 2000년에는 퀀텀을 인수합니다. 맥스터는 1990년대 중반 중요한 기술을 매각하는데, 이 기술이 바로  SCSI 관련 기술로 스킬(Sequel)이라는 기업에 넘깁니다. 스킬은 유니시스에서 분사한 기업인데, 이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수준에 그치는 바람에 커다란 사업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맥스터는 스킬에 핵심 기술을 넘기면서 1993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연구소를 없애는 구조조정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외형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되지만 결국 2006년 씨게이트에 인수(19억 달러)됩니다.

hdd-mna-history

이렇게 2강이 구축됩니다. 2약은 어떨까요? 2약의 두 기업 도시바와 삼성은 HDD에서는 다소 열세지만 장래를 보면 오히려 2강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시바는 2009년 3억4천500만 달러에 후지쯔 HDD 사업을 사들입니다. 1.8인치 드라이브를 비롯해 3.5인치 디스크 등에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업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시바는 기업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삼성은 주로 컨슈머 시장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2약 기업은 잠재성면에서는 2강을 앞서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과 도시바는 낸드 플래시 기술에 관한 원천 기술과 반도체 생산 능력, 설계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기업과 견주어 모자람이 없습니다. 향후 태블릿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PC가 유통되고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대용량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또 스토리지 시스템에서 높은 성능이 필요하고 사회전체적인 측면에서도 전력절감 기술이 대두되면 낸드 플래시 기술이 주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씨게이트나 웨스턴디지털이 플래시 기술을 인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 4개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까요?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넷앱의 LSI 외장 스토리지 부문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들

적어도 넷앱과 LSI의 입장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넷앱은 인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LSI는 매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기업이 내는 보도자료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LSI는 큰 수익이 되지 않는 스토리지 시스템 부문을 매각하고 싶어했고 넷앱은 시장점유율을 끌어 올려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투자관련 커뮤니티 그룹인 모틀리풀(The Motley Fool)에 따르면 LSI의 스토리지 사업은 적자를 내지 않을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LSI의 스토리지 관련 사업 중에서도 HBA나 어레이 컨트롤러 등은 매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실리콘 칩 기술에서 마벨(Marvell)이나 브로드콤(Broadcom)과 같은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4억8천만 달러는 필요한 금액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편 넷앱은 2010년 LSI와 관계된 매출이 7억 달러나 되었다는데요. EMC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LSI와 같은 엔트리 레벨의 외장 스토리지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넷앱의 CEO인 톰 조즌스(Tom Georgens)는 보도료를 통해 LSI 스토리지가 비디오 관련 애플리케이션이나 유전자 관련 연구를 위한 프로그램 등에서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고 향후 이 시장이 2014년까지 50억 달러라고 하였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4억 8천만 달러는 과했다는 것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의견인가 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넷앱 CEO 톰 조즌스가 예전에 LSI의 CEO였더군요. EMC에서도 몸담은 적이 있는 그가 LSI와 넷앱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인수합병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네요. 넷앱으로 옮기기 전 무려 9년 동안 엔지니오(Egenio)를 담당했으며 그 중 마지막 2년은 LSI의 CEO를 했다고 합니다. 엔지니오를 담당하기 전에는 11년 동안 EMC에서 마케팅 및 엔지니어링을 했다는 군요.

넷앱에 인수된 후 LSI의 OEM 비즈니스는 변화가 예상됩니다. LSI의 엔지니오(Engenio)는 IBM, 오라클, 델, SGI 등으로 공급되고 있는데, 넷앱 인수 후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하는 점에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IBM과의 관계는 더 강력해 질 것으로 예측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사실 이미 IBM은 넷앱의 스토리지를 OEM으로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데, 엔트리급의 스토리지까지 넷앱으로부터 받게 된다면 오히려 유리한 고지에서 공급에 관한 협상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앱은 상당히 여러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자사의 라인업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데요, 올해만 이번 건을 포함해서 두 번째 인수합병입니다. 지난 1월 아코리(Akori)라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하였고 이번에는 LSI 스토리지 부문까지, 연초부터 ‘쇼핑’에 나섰네요.

현재까지의 넷앱이 인수한 기업들의 내역입니다. 연도별로 차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2005. VTL 소프트웨어 기업 알락크리터스(Alacrtitus) 1천 1백만 달러에 인수
  • 2005. 데이터 암호화 어플라이언스 기업 데쿠루(Decru), 2억 7천 2백만 달러에 인수
  • 2006. 여러 사이트에 비동기 방식으로 원격 복제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 기업 토피오(Topio) 1억 6천만 달러에 인수
  • 2008. 스토리지 자원 관리(SRM) 소프트웨어 기업 오나로(Onaro)를 1억 2천만 달러에 인수
  • 2010. 오브젝트 기반의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기업 바이캐스(Bycast) 인수, 인수금액은 공개되지 않음
  • 2011. 1월 스토리지 및 서버 리소스를 모니터링하는 소프트웨어 아코리(Akorri) 인수, 인수금액은 공개되지 않음
  • 2011. 3월 LSI 외장형 스토리지 사업부문을 4억 8천만 달러에 인수

참으로 많은 인수와 합병이 연초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합종연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몸집 불리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참 궁금합니다.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할 때 쓴 비용이 74억 달러였고,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스토리지텍을 인수할 때 들인 비용이 41억 달러였습니다. 2005년 시만텍이 베리타스 소프트웨어를 135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스토리지 인수와 관련해서는 가장 큰 딜이었습니다. 사실 시만텍의 베리타스 인수는 IT 기업 전체 역사에서도 아주 큰 건이었는데, 기록된 것으로 보면 HP의 컴팩 인수(250억 달러) 다음이라고 합니다. 스토리지 부문에서도 대형 인수합병이 계속되는 것은 이 분야가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여겨집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인수와 합병이 있을 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