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스템에 맞는 사고와 행동의 혁신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기업들을 취재할 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던 담당자들이 즐겨 하던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한 말은 어느 기업이 한 말이 아니다. 바로 정부가 홍보하고 있는 ‘디지털예산회계프로그램 홍보 동영상’ 거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말이다.
지난주 많은 미디어에는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통계를 질타하는 글들이 실렸다. 내용은 재정경제부(www.mofe.go.kr)가 지난 8월 22일 발표한 2007년 상반기 통합재정수지(잠정)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재경부는 지난달 22일 2007년 상반기 통합재정 운영성과를 잠정 집계한 결과 총수입 125조1천억원, 총지출 131조3천억원으로 통합재정수지가 6조1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런 적자 이유로 재경부는 경기회복에 따른 세수호조에도 불구하고, 재정의 조기집행으로 인해 6월말 예산대비 62.0%를 집행했고, 총수입 측면에서 6월은 특별한 세수 납기일이 없어 추세적으로 연간 저점을 기록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통합 재정은 공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세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해 공공재 등을 생산하는 비시장성 재정활동을 포괄한다는 설명도 덧붙였었다.
그런데 그 발표가 있고 15일 만에 재경부는 상반기 6조1천억원이라던 적자가 정반대로 11조3천억원 흑자로 바뀌었다고 정정발표했다. 그 차액이 무려 17조원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다. 총지출 131조3천억원은 113조4천억원으로 줄었다.
재경부는 그 이유에 대해 “올해 디지털 회계시스템을 새로 도입하면서 외부 용역업체가 인건비를 중복 계산하도록 프로그램을 잘못 짜 총지출이 부풀려졌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업체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별도로 운용돼온 국가 예산과 회계시스템을 통합한 재정통합정보시스템인 ‘디지털예산회계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총 사업비 600억원이 소요된 국가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이다. 특히 프로그램 이름에서 나와 있듯이 예산과 회계를 통합한 말 그대로 국가의 핵심 중의 핵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시스템은 삼성SDS가 현대정보기술, 아토정보기술, 하나아이엔에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한 프로젝트였다.
정부는 관련 시스템을 통해 공공 부문 재정활동의 정확한 파악과 재정낭비요인제거, 재정정책의 합리적 결정 지원, 새로운 재정 제도의 기반 제공, 국가 신인도 향상이 있을 것으로 홍보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 신인도는 땅에 떨어진 셈이다.
만약 이런 일이 일반 기업에서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해당 기업의 주가는 폭락을 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분식회계 건으로 전세계 투자가들이 회계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발표가 있었다면 그는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상당기간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담당자들은 옷을 벗었을 것이고,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었다면 개발 업체는 두번 다시 그 업체의 정보화 프로젝트에는 발을 못부치는 것은 물론 관련 업계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충분했을 것이다.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은 2004년 3월, 그 구축에 대한 승인이 난 후 2006년 말까지 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됐다. 홍보 자료를 보면 윤성식 고려대 교수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그대로 전산화 한 수준”이라고 밝히면서 이 시스템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런데 개통 후 1년도 안돼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이번 정부 시스템의 오류는 그 수치면에서 단순 오류로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 문제가 있다. 이런 시스템을 오픈했다는 것 자체에서 정부나 프로젝트 참여 업체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이라는 용어를 네이버나 구글, 다음커뮤니케이션, 엠파스 같은 검색 창에 넣고 클릭하면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알바구함”이라는 소식도 볼 수 있다. 담당자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도 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것이 오래전 일도 아니다. 바로 최근의 소식이었다. 시스템을 오픈한 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분명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국가의 핵심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인력 운용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콘소시엄을 이끈 업체는 물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들도 앞서 밝힌 대로 유명한 업체들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ERP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지도 못했겠지만 사전에 테스트를 수없이 거쳤을 것이고, 시스템 오픈에 문제가 있었다면 고객을 설득해 오픈 시기를 연기했을 것이다.
자동차에 문제가 있으면 그 부품을 만든 회사 뿐 아니라 판매한 회사도 책임을 진다. 그런 면에서 현재 미디어에 간간히 인터뷰한 프로젝트 담당 회사의 목소리는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다.
고객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핵심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시스템 오픈 전 제대로 된 검수작업도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했더라도 형식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RP 시스템은 기업들도 성공을 이뤄내기가 수월치 않은 분야다. 단순히 구축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도록 사용자에 대한 교육부터 지속적인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야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핵심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기업이야 제품을 안사면 그만이지만 국가는 이민가지 않는 한 선택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 정보화 시스템에 대한 실태 조사부터 프로젝트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 시스템의 경우 각 지방단체와도 시스템이 연동돼 있다. 하나의 잘못이 발생하면 국가적으로 동일한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고 모두 그곳에 관심을 표명하지만 대통령이야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한번 잘못된 시스템은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혈세가 낭비된 시스템을 교체하기 위해 또 다른 혈세가 낭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정기국회도 지금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말로만 민생을 떠들 것이 아니라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 국회 차원의 강력한 점검을 서둘러야 한다. 기술의 수용에만 급급해 제대로 기술이 적용됐는지에 대한 파악이 없다면 이런 일들은 어느 때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IT 강국이라는 허명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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