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덱스와 CES, 그들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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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덱스(COMDEX)라는 이름은 IT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두 번 정도 들어봤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컴덱스가 국내에서도 개최된 바가 있어 더욱 그러하겠지만, 지난 79년 컴퓨터 거래 업체들 간의 전시회(COmputer Dealers EXposition란 명칭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로 시작된 컴덱스는 전 세계적인 PC 산업의 부흥과 더불어 성장하면서 절정기로 평가받는 2000년에는 참가자 25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람객을 유치하면서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된다.

하지만 급변하는 정보시대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을까, PC 산업의 미래를 맹신했던 것일까. 세계적으로 닷컴 버블이 걷히고 PC 산업이 점차 쇠퇴하면서 2003년을 끝으로 컴덱스는 더 이상 가치 없는 브랜드로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 컴덱스의 이런 몰락에는 CES(Comsumer Electronics Show, 이하 CES)의 약진이 있다. 미국 소비자 가전협회(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 이하 CEA)가 지난 1967년부터 개최해오던 이 전시회는 최근 컴덱스의 쇠퇴와 함께 디지털 가전과 디지털 컨버전스가 핵심 키워드로 급부상함에 따라 세계 최대의 전시회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내년 1월 40주년을 맞이하는 CES에는 약 2천7백여 개 업체가 참여하고 참관자도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등 CES는 IT 분야에서 당분간은 적수 없는 ‘외로운’ 질주를 할 것으로 보인다.  

컴덱스보다 먼저 시작된 CES는 전시회 초창기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최초의 고체소자 텔레비전을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 당시 미국 전체 가구 중 컬러 텔레비전 보유 가구가 16%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72년에는 49%로 그 수가 늘어나게 됐는데, 이러한 현상은 CES를 통해 새로운 기술에 대한 활발한 전시를 함에 따라 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의 CES는 심포지엄이나 판촉을 위한 세미나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VCR(Video Cassette Recorder)이나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가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설립되었던 75년을 지나면서 CES는 새롭게 등장한 컴퓨터 기술과 함께 가정용 위성방송 수신기를 포함한 최신의 홈 오디오와 비디오 가전 산업의 장으로 발전하게 된다. 950여개 업체가 참석한 가운데 약 7만명 정도의 관람자가 찾는 CES는 세계 전시회 중에서 컴덱스와 함께 탑10 안에 드는 행사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은 꾸준히 늘어나게 되었다. 본격적인 AV 시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CES는 당시 관람객들을 현란한 화면으로 사로잡게 되었는데, 이때 등장한 퍼스널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그리고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니의 워크맨과 CD 플레이어, 캠코더 등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한편 CES와 달리 다소 늦은 79년 시작을 알린 컴덱스는 PC 산업의 부흥을 꿈꾸며 초반부터 눈부신 업적을 이뤄내기도 했다.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의 등장과 함께 최초의 16비트 PC인 IBM PC 5150이 81년 컴덱스에서 선보였으며, XT와 AT 컴퓨터를 거쳐 애플 매킨토시까지 소개되며 PC 산업 전체를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하드웨어의 성장과 함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83년 컴덱스에서 빌 게이츠가 MS-DOS 2.0을 처음으로 발표하면서부터 컴덱스는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PC 산업의 성장을 배경으로 MS-DOS의 종식을 예고하며 등장했던 윈도우 3.1과 빌 게이츠 스스로 “도스의 시대는 끝났다(DOS is Dead)"라고 말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윈도우 95에 이르기까지 PC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운영체제와 더불어 전 세계 IT 산업의 핵심 기술과 모든 제품들이 컴덱스에서 소개되면서 컴덱스는 가전에 치우친 CES와는 확연히 다른 독자적 주도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AV 시대가 지나고 통신과 디지털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가전과 컴퓨터의 경계가 디지털로 인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각자 다른 길을 걷던 CES와 컴덱스는 미묘한 경쟁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본격적인 21세기로의 진입을 앞두고 CES는 컴퓨터 분야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데, 디지털 오디오 기술이나 인터렉티브 CD, 디지털 위성 시스템, 그리고 DVD 등을 시작으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HDTV와 PVR(Personal Video Recorder) 등이 이때 소개됐다. 

반면 컴덱스는 90년대 후반 들어 PC에 집중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하며 급속히 산업이 성장하고 있던 인터넷과 네트워크 중심의 기술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컴덱스는 전자상거래와 e비즈니스 관련 기술들에 대한 산업 관련 전시회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미 컴덱스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빌 게이츠는 94년 컴덱스 기조연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당신의 손끝에 정보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당시 빌 게이츠는 자신의 기조연설을 위해 6개월 이상을 준비한다고 알려져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이때 컴덱스에서는 소형화의 바람이 불면서 오라클의 NC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다가올 인터넷 시장의 선점을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의 인터넷 브라우저 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도 했다. 이와 같은 컴덱스의 성공에 힘입어 97년에는 한국에서도 컴덱스 코리아가 시작됐는데, 개막 당시 2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기조연설을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만이 넘는 참관인을 모집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컴덱스였음에도 불구하고 PC 산업의 쇠퇴와 닷컴 경제의 붕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결국 컴덱스는 2003년을 끝으로 CES에 IT 전시회 최강자 자리를 넘겨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국내에서 열리던 컴덱스 코리아 역시 2004년 디지털 라이프란 이름으로 변형되어 개최되었지만 이 역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컴덱스는 결국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다.   

반면 CES는 컴덱스의 몰락을 뒤로 한 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극대화시키며 최근까지 첨단 기술의 장으로 발전하게 된다. 실제로 CES에 참가한 많은 정부 관계자들이 주요 인사들이 제시하는 지식과 기술을 다양한 컨퍼런스를 통해 얻게 되고, 이들이 가전 및 정보통신 관련 기술 입법에 많은 기여를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과거 IT에 대한 모든 정보는 컴덱스에서 나왔듯이 이제는 첨단 기술에 대한 모든 정보는 CES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40회를 맞는 CES 2007에서는 어떤 기술과 제품들이 발표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개막식 전날 기조연설을 맡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지난 99년부터 CES에서 기조연설을 계속해 오고 있지만 최근 은퇴를 선언해 이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와 함께 관심을 모으는 키노트 연설자는 바로 세계적인 컨텐츠 회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로버트 아이거. 최근 디즈니가 픽사(Pixar)를 인수한 것이나 애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컨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CES 2007에서는 엔터테인먼트와 멀티미디어 컨텐츠에 관련된 기술과 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CEA가 이러한 CES의 성공에 힘입어 내년 경에는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단독 전시회 개최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CEA의 회원 기업과 CES 참가자 대부분이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CES 참가자의 11% 이상인 약 2만명 정도가 게임 관련 제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조사됐기 때문이다. 또한 최대 게임 전시회라고 할 수 있는 E3가 최근 그 규모를 축소한 것 역시 그 가능성을 더욱 커지게 하고 있다. 최근 CES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CES의 끊임없는 진화이기 때문이다. 

IT 역사에 있어 CES와 컴덱스, 두 전시회는 흥망성쇠를 떠나 세계 산업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원한다. 수십 년 간 IT 산업을 주도해온 빌 게이츠가 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수십년간 IT 산업에 기여해온 컴덱스가 살아남지 못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새로운 기술이든, 새로운 제품이든 변해야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