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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와 이동통신망, 그리고 망 중립성

2011.04.12

세 개의 사업자가 나라에서 땅을 빌려 민자로 구축한 고속도로가 있다. 고속도로에는 ‘음성통화’ 전용도로와 ‘SMS’ 전용도로가 따로 마련돼 있다. 나머지 차선은 얼마 전까지 WAP이라는 간판을 단 허가된 차량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비싼 이용료를 내면서 말이다.

그러나 KT라는 이름의 한 고속도로 사업자가 애플이라는 외산 브랜드의 제품을 수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애플은 뻥뻥 뚫린 고속도로의 빈 자리를 애플 제품을 구입한 이용자들이 마음껏 이용하기를 바랐다. 뒤늦게 국내에 출시된 애플 제품이 큰 인기를 끌자  다른 사업자도 WAP 간판을 달지 않고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스마트’의 시대가 열렸다.

스마트 열풍은 봇물 터지듯 퍼져나갔다. 꽁꽁 묶여있던 고속도로의 나머지 차선이 풀리면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다양한 상품을 운송하는 운송업자들이 등장했다. 다양한 운송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는 고객들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세 개의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월 5만5천원만 내면 개인이 무제한으로 자사의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았다.

운송업자들은 게임과 도서, 음악과 영상 등 더 다양한 상품을 고속도로를 통해 운송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고속도로 통행량이 급격히 늘자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업자들은 ‘와이파이’라는 무료 우회도로를 만들어 통행량을 분산하고자 했다. LTE라는 더 빠른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려는 준비도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고속도로는 매우 붐빈다. 이용자들이 고속도로가 너무 막힌다며 불평을 한다.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뒤늦게 왜 월 5만5천원의 무제한 통행 상품을 출시했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급기야 운송업자들이 고속도로 사업자가 전용도로를 통해 독점 운송하던 음성통화와 SMS와 경쟁하는 상품을 운송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와 인스턴트 메시징(카카오톡 등)이라는 상품이 그것이다.

당황한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무제한 통행 상품을 구입하지 않은 이용자들이 mVoIP 운송 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통제했다. 무제한 통행 상품을 구입한 이용자도 낸 돈에 따라 하루에 운송받을 수 있는 상품량이 제한됐다. 인스턴트 메시징 운송은 아직 차단하지 못했지만, 고속도로를 붐비게 하는 주범으로 몰아세우며 운송업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무제한 통행료를 냈는데 왜 내가 운송 받을 수 있는 상품에 제한이 있느냐”며 항의했다.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속도로는 우리가 돈 내고 깔았는데 운송사업자들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라고 항변했다. 운송업자들은 “한국에서 운송사업하기 참 힘들다”라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규제 당국은 이 문제가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고속도로 중립성’ 이슈에 해당하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고속도로 중립성이란 ‘고속도로 사업자가 운송되는 상품의 종류를 제한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다. 학계에서는 “운송업체에 차등적으로 비용을 부과하게 되면 대형 운송업체만 살아남고, 더 이상 운송업에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속도로 사업자가 상품을 제한하는 것은 인류가 고속도로를 건설한 근본 철학에 위배된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운송업자들이 통행하는 차선을 제한하고, 더 넓은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운송업자가 아닌 주문자에게 요금을 받아왔던 고속도로 사업자들이 운송업자들에게도 도로 이용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규제 당국은 올해가 가기 전에 적절한 규제안을 내놓겠다고 말한다. 지금 분위기로는 일부분 고속도로 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해외 상황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국형 고속도로 중립성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속도로 사업자가 주문자 뿐만 아니라 운송업자들에게도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속도로 중립성 규제안이 논의되는 중에도 고속도로 사업자와 여러 운송업자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가 고속도로에서 차단될까 걱정이다. 고속도로 사업자들은 음성과 문자 단독 운송을 통한 막대한 수익이 손상될까 걱정이다. 운송업자들은 이럴 바에는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 마켓’이라는 해저터널을 타고 해외 운송업으로 전환할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이동통신산업의 현주소다.

highway traffic jam

(출처 : flickr.com 저작자표시 epSos.de님이 일부 권리를 보유함)

이동통신망을 고속도로에 비유하는 것은 진부하다. 고속도로라는 단순한 비유가 이동통신 산업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에 깔끔하게 부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진부하고 단순한 비유가 이동통신산업을 둘러싼 복잡한 이슈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고속도로에서 과다적재 차량을 단속하듯, 이동통신 사업자가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다적재 말고, 적재품의 중량에 관계없이 품목에 따라 상품의 운송을 거부할 수는 있을까? 직접 운송사업까지 벌이는 고속도로 사업자가 경쟁 운송업체의 고속도로 통행을 막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mVoIP나 메시징 서비스를 차단할 권리가 통신사에 있는 것일까?

또 다른 질문. 버스에 탄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매달 통행료를 받는 고속도로 사업자가 있다고 하자. 이들은 과연 버스 여객회사에 별도로 통행료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이용자에게 매월 요금제를 부과하는 통신사업자가 서비스 사업자에게도 요금을 부과해도 되는 것일까?

만약 미국 통신사가 유튜브에서 비용을 받고 다른 동영상 서비스와 비교해 두 세 배 빠른 속도로 동영상을 전송해준다면, 더 이상 유튜브를 이길 수 있는 혁신적인 동영상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을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자동차는 고속도로 사업자에게 구입하는 것일까,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구입하는 것일까? 휴대폰은 통신사에서 구입하는 것일까, 단말기 제조업체에서 구입하는 것이 맞을까? 자동차를 타고 이 도로 저 도로 마음대로 달리면 안될까? 내가 산 휴대폰으로 통신사는 마음대로 선택하면 안될까?

질문을 단순하게 만들면 답은 우리의 상식에서 찾을 수 있다.

SK텔레콤과 카카오톡 사이에 벌어진 최근의 이슈 덕분에 망 중립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 번 높아졌다. 방통위는 연내에 망 중립성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인 통신산업의 미래가 달린 만큼 무리하게 서둘러서 안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더욱 다양하게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사업자들도 망 중립성안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관련된 논의를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하자. 최소한 뒤에서 여론을 조성하며 간을 보지는 말자.

방통위가 1년 넘게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우리의 상식에 부합되는 망 중립성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 참, 그 동안 방통위는 고속도로 사업자랑 무척 친했다. 자신들은 그런 적 없다고 하는데 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지 이 참에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자신들의 그간 행보를 뒤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zoomin@bloter.net

블로터닷넷 기자. 모바일의 시대에 모두 다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모바일, 스마트폰, 통신, 소통 / 따뜻한 시선으로 IT 세상의 곳곳을 '줌~인'하겠습니다. ezoomin@bloter.net / 트위터 @ezo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