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문턱 없는 SW, 이렇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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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Accessibility)은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온·오프라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을 담은 말이다. 가깝게는 인도에 시각장애인용 안내 블록을 설치하는 일부터, 금융기관이나 e쇼핑몰 웹사이트를 비장애인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까지 그 범위는 폭넓다. 접근성은 ‘상호운용성'(호환성)과도 구분된다. 윈도우나 맥OS 같은 다양한 운영체제부터 인터넷 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구글 크롬, 사파리 처럼 서로 다른 웹브라우저에서 똑같이 웹을 이용하는 건 이를테면 상호운용성이다. 그렇지만 상호운용성을 지키면서도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는 많다. 공인인증서를 윈도우나 매킨토시에서 모두 쓸 수 있게 해줄 순 있어도, 공인인증서 자체가 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라면 접근성은 낙제점이다.

웹에선 대체로 접근성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확산되는 분위기지만, 소프트웨어(SW) 분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기업이 내놓은 SW 가운데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한 제품이 몇이나 될까. 시각장애인이 아래아한글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을까. 아니, 시각장애인 전용 보조기구를 써서 아래아한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 설계 단계부터 고려했을까.

웹을 넘어 SW나 일상 분야까지 두루 장애인 이용성과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선 안철수연구소가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손잡고 자사 제품의 장애인 접근성을 제대로 보장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국제 표준 제정기구인 W3C는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2.0‘을 마련해 문턱 없는 웹 구현 방법을 제시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2.0’을 지난해 12월말 국가 표준으로 제정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지난 3월 ‘CSUN 2011’에서 공개한 ‘접근성 도구 및 교육‘(Accessibility Tools and Training)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접근성 도구 및 교육’은 개발자가 접근성을 보장하는 SW나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과 모범사례를 담은 지침서다. 원래 MS 내부 개발자 그룹들을 위한 교육 자료로 쓰던 것을 올해 3월, 전세계 기업이나 정부, NGO나 개인 개발자가 무료로 쓸 수 있도록 공개했다. 정부기관용과 기업·NGO용 둘로 나뉘어 제공되며, 웹사이트에서도 전체 내용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미국에선 재활법 508조에 따라 연방정부나 공공기관이 SW를 조달할 때 장애인 접근성 보장 기능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접근성의 중요성과 효용성은 더욱 커지고 있고요. 하지만 기업들은 장애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 이해하는 개발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에 지침서를 무료로 공개한 목적도 기업 내 개발자가 스스로 접근성 관련 인식을 높이고, 교육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보니 커니 MS 신뢰할 수 있는 컴퓨팅그룹 접근성팀 이사는 5월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1 웹 접근성 향상 전략 세미나’에서 SW 접근성 보장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접근성=장애인만을 위한 기능’이란 인식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MS는 20년 넘도록 접근성 기능을 운영체제에 기본 내장해 제공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해 제공한 기능을 일반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쓴다는 사실을요. 포레스터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6~64세 경제활동 인구의 57%가 장애인을 위한 기능들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처음 고안된 음성인식 기술도 지금은 음성 다이얼이나 음성검색처럼 보편화된 기술로 발전했어요. 기업도 이젠 장애인을 배려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고객으로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장애인 접근성 보장은 기업 경쟁력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접근성을 이해하고 이를 제품 기획 단계부터 고려하는 개발자나 기획자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접근성을 보장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새 직원을 뽑을 때 더 많은 구직자 풀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 직원 재교육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국내 업체로선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이 수출과도 직결된다. 일례로,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SW는 미국 연방정부나 공공기관 문턱도 넘지 못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을 통과시키며 스마트폰과 인터넷전화, IPTV까지 접근성 의무화 대상을 확대했다.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스마트TV나 스마트폰은 당장 미국지역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형편이다. 하지만 접근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국내 기업이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은 MS 같은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의사결정권자의 의지, 이를 잘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 접근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개발자, 끊임없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고객 등 4요소가 보장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죠. 그러기 위해선 각 나라 정부나 관련 단체와의 긴밀한 협력도 빠져선 안 됩니다.”

MS는 ‘접근성 도구 및 교육’을 내놓으며 전세계 기업이나 공공기관, NGO 등 7곳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국내에선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NIA와 MS는 우선 올해 말까지 ‘접근성 도구 및 교육’ 한글 번역을 마치고, 내년부터 대학 등에서 교과과정에 활용하는 등 사용 범위를 넓히는 노력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홍경순 한국정보화진흥원 접근성지원부 부장은 “글로벌 선도 IT 기업들은 장애인과 고령자를 고객으로 생각하고 투자하지만, 국내 SW 업체들은 아직도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제공하는 일을 비용으로 따지려 하는 경향이 짙다”라며 “접근성 문제는 단순히 기업이 돈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기술과 의지를 공유할 수 있는 노력을 장애인과 함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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