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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성 한컴 전무 “20년 외길 ‘한글’ 개발…혁신 없인 생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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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한글1.0’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듬해인 1990년 10월9일 이찬진 씨를 포함한 서울대 선후배 4명이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를 설립했다. ‘국가대표 소프트웨어’와 ‘국민기업’이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초기 한컴과 ‘아래아한글’을 주무르던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컴도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쳐왔다. 그럼에도 꿋꿋이 한컴과 아래아한글을 지키는 이가 있다. 한컴 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는 양왕성(44) 전무다.

양왕성 전무는 대학을 갓 졸업한 24살에 한컴에 입사해, 꼬박 20년을 아래아한글 개발에 매달렸다. 근속기간으로 따지면 ‘한컴 최고령’이다. 어느덧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양 전무는 아직도 머릿속에 온통 아래아한글 생각뿐이다. 그에게 ‘청춘’은 곧 ‘아래아한글’과 동의어다. 양 전무는 지난 4월22일로 한컴 근무 20년을 꼬박 채웠다. 그런데도 “불과 몇 년 안 된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왔다는 얘길 게다.

▲양왕성 한글과컴퓨터 전무(개발본부장).

– 아래아한글 역사는 머릿속에 다 들어 있을 것 같다. 첫 개발 당시 얘기를 들어보자.

= 한글과컴퓨터가 1990년 10월9일, 한글날 공식 설립됐다. 저는 창립 6개월 뒤 합류했다. ‘한글1.0’은 회사 설립 1년6개월 전에 만들어졌다. 한컴 창립 뒤 ‘한글1.51’이 막 나왔고, 내가 입사해 처음 만든 게 ‘한글1.52’였다. 당시는 아래아한글이 막 세상에 나오던 시기였다. 1.× 버전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래아한글이 막 나오던 당시엔 워드프로세서가 텍스트 기반이었다. 아래아한글은 위지윅(WYSIWIG) 에디터 기반의 실용적 워드프로세서로 이름을 날렸다. 위지윅 에디터를 채택한 건 의미가 남다르다. 어떤 회사 PC든 위지윅 기반으로 워드프로세서가 돌아가고, 어떤 프린터든 인쇄를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게 아래아한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계기였다.

– 한컴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 휴우~. 그 때 얘길 다 하려면 너무 길다. (웃음) 줄여서 말하면 이렇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병우 박사님이 만든 한글문화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찬진 대표를 만난 곳도 한글문화원이다. 이찬진 대표가 한컴을 설립하는데 함께하자고 했는데, 그 때 나는 다른 회사 입사가 결정된 상태라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컴 설립 6개월 뒤, 합류하게 됐다.

저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정보통신공학을 배웠다. 당시엔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컴퓨터에 빠져든 이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대학 1학년때 컴퓨터 동아리에 가입하며 본격 재미를 붙였다.

그땐 PC통신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컴퓨터에 빠진 이들이 PC통신에서 자연스레 교류했고, 컴퓨터 관련 자료도 PC통신으로 주고받았다. 그 시절 만나던 분들이 지금은 국내 IT 업계를 주름잡는 분들이 돼 있다. 저 빼고. (웃음)

– 본인에게 아래아한글은 남다른 의미가 있겠다. 아래아한글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 어떤 고객이 보낸 e메일 가운데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그 분이 아래아한글을 가리켜 ‘정신노동의 집약체’라고 했다. 생각해보자. 육체노동으로 만든 결과물은 많다. 정신노동의 산물도 주변에 많이 있겠지만, 오랫동안 남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래아한글이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래아한글엔 ‘국민SW’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이런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부담감은 없나.

= 부담감보다는 의무감이 더 큰 것 같다. 아래아한글이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 동안 회사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 좋은 SW가 개발할 수 없는 환경에 빠지면 어떡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그 땐 생존의 문제였다. 지금은 생존 문제는 없다. 제품 자체로 경쟁력을 갖춰나가도록, 구조적 뒷바탕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주력한다.

– 외환위기 직후 아래아한글을 MS에 매각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1998년 당시 아래아한글은 퇴출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편으로 억울했다.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제품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당연하다. 헌데 당시 시장조사를 해보면 아래아한글 사용률이 80% 정도였고, 가장 낮게 조사된 수치도 75% 이상이었다. 100명 가운데 75명 넘게 쓰는 제품이 퇴출돼야 한다고 말하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고비를 잘 넘겼다.

– 지난해부터는 아래아한글이 아니라 ‘한컴오피스’에 주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 경쟁력 면에서, 워드프로세서만으로 살아남을 순 없다. 오피스SW로 전환해야 한다. 이찬진 대표가 아래아한글을 낳고 한컴을 창업한 사람이라면, 한컴이 오피스SW로 전환하도록 도운 게 백종진 대표 시절이었다. 지금 이홍구 대표 체제에선 이 제품으로 세계 경쟁력을 만들어나가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컴오피스와 씽크프리 오피스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게 제 꿈이다.

– 세계 시장에선 막강한 경쟁상대들이 적잖다.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생각인가.

= 예전엔 한컴엔 기회가 적었다. MS ‘윈도우’ 플랫폼 안에서 ‘MS 오피스’와 싸우는 형국이었다.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젠 윈도우가 아닌 환경에서 MS오피스가 아닌 상대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만만한 싸움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쉬운 환경이다. MS오피스가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컴에 굉장히 큰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분야에선 성과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온·오프라인, 데스크톱·모바일이 엮이는 통합 솔루션이 있어야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한컴은 모든 솔루션을 다 갖고 있다. 육·해·공군을 다 갖고 있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결국 한컴이 큰 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한컴은 이제 제대로 된 주인과 선장을 만났다.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 한컴 주요 서비스와 제품을 통합하는 데 있어 기술적 어려움은 무엇인가.

= 시간이 필요한 부분은 있다. 빠르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 ‘한컴오피스 2010 SE’도 내놓았고, 인원 충원도 빠르게 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공채로만 20명 넘게 뽑았고, 수시모집도 계속 하고 있다. 급한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했고 기술쪽 성과도 보고 있다.

– 모바일쪽 대응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한다면.

= 한컴이 모바일 시장 진출을 얘기할 때, 여러 곳에서 걱정했다. 아래아한글이 아이폰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점을 여럿 지적했다. 다행히 잘 전환했다. 지금은 한글 뷰어만 제공하지만, 에디터도 적절한 시점에 발표할 것이다. 씽크프리와 따로 갈 수는 없다. 묶어서 가는 전략을 갖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씽크프리로 첫 단추를 꿰었고, 아이폰은 한컴오피스 뷰어가 있다. 모바일과 서버, 온라인 솔루션이 한컴에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각각의 구슬이다. 이들을 잘 꿰고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 직접 개발에 참여한 한컴 제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자식’이 있다면.

= ‘한글2.0’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전까지 아래아한글은 글자를 가로·세로로 두 배 밖에 확대하지 못했다. ‘한글2.0’부터 포인트 단위로 글자를 키우고 줄일 수 있게 됐다. 다단과 표 기능도 들어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한글2.0’에 수식 에디터가 들어갔다. 그 수식 에티더가 제 작품이다. 제 전공이 수학과 아닌가(웃음).

대학 시절부터 품은 꿈이 두 가지 있었다. 내가 만든 워드프로세서로 내 리포트를 만들어 제출하고 졸업하는 것과, 수식이 제대로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그걸 못했다. 그 뒤 한컴에 입사해 ‘한글2.0’에 수식 에디터를 만들어 붙였다. 그 뒤 대학원에 들어가 아래아한글로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결국 꿈은 다 이뤘다. (웃음)

▲1992년 출시된 ‘한글2.0’. 양왕성 전무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제품이다.

– ‘한글워디안’ 같은 제품은 반응이 썩 좋진 않았다. 이를테면 ‘아픈 손가락’ 아닌가.

= 워디안이 나왔을 때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 ‘한글97’ 이하 버전과 파일 형식이 호환되지 않는 것과, 기능과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기능이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안정화 이슈는 좀 오래갔다. 워디안에 표 안의 표 기능이나 가로·세로 용지를 한 문서에 섞어쓰기, 실행취소 기능 등 굵직한 기능이 많이 들어갔으니까.

특히 굵직한 변화는, 유니코드를 기본 코드셋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한글97’까지는 자체 HNC 조합형을 썼다. 그러다보니 이전 버전과 파일 형식 호환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한글워디안’부터는 유니코드 표준 코드로 넘어왔다. 파일 형식이 바뀔 수 밖에 없었다. ‘한글워디안’ 이후 ‘한컴오피스 2010 SE’까지 모든 제품들은 사실 ‘한글워디안’ 엔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글97’까지 강점 중 하나가, 조합형을 기본으로 썼기 때문에 MS-DOS나 윈도우에서 안 나오던 글자들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글쓰는 사람에겐 대단한 이슈였다. 모든 한글을 표현한 덕분에 인기 있었다. 이제 유니코드상에서도 모든 한글을 표현할 수 있다. 최근 유니코드는 160만자 옛한글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체계로 바뀌었다. ‘한컴오피스 2010 SE’에선 옛한글도 미려하게 표현하는 기능이 들어갔다.

-지난해 6월 HWP 문서 형식을 공개했다. 이후 성과나 적용 사례는.

= 사실, HWP 파일 형식은 ‘한글97’때도 공개를 요구하는 곳에 다 줬다. 아래아한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 일부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곳도 있었다. 지난해 한글 API를 공개하면서 스펙 문서를 최대한 자세히 공개했다. 우리 입장에선 최대한 자세한 부분까지 정리해 공개했다. 나중에 저작권 이슈가 발생하면서, 저작권도 대부분 풀었다. 내부 문서를 갖고 외부에서 업데이트되면 보완하고 또 공개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펙 문서가 워낙 방대하다. 이 문서를 바탕으로 기능을 구현하고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는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완성도를 아래아한글만큼 올리려면 한컴이 투입하는 개발자 숫자와 기간만큼 투입해야 비슷한 완성도가 나올 것이다. 그 정도 자신이 있기에 API를 공개한 것 아닌가. (웃음)

– 아래아한글이란 SW에 대해선 찬사외 비판이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 우리만의 형식을 고집했다는 비판도 있다. ‘한컴워디안’때 파일 형식을 바꿨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우리만의 형식을 고집하기 위해 파일 형식을 바꾼 건 아니다. 파일 형식은 기능을 담는 그릇이다. 다른 형식들이 아래아한글의 표현력이나 기능을 더 잘 담을 수 있다면 우리도 호환성을 위해 전환해나갈 수 있다. 한컴은 HWP 기술 내용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마크업 언어를 10년 전부터 공개해 쓰고 있고, 그걸 표준화해 기본 형식으로 쓸 준비도 차근차근 밟고 있다.

– HWPML 표준화 추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HWP 파일 형식은 이미 공개했다. 공개된 형식의 어떤 부분을 개선하거나 좀 더 표준에 가깝게 만들자는 개선안은 나왔다. 외부 용역기관에 의뢰해 1차 결과가 이미 제출됐다. 이 개선안에 따라 한컴오피스 제품 내부도 수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 지금은 표준 기술문서에 맞춰 다시 문서 작업을 하는 단계고, 표준기관과도 협의가 진행중이다. 예정대로 간다면, 올해 안에 HWPML 표준을 제안하게 될 것 같다.

내부 형식을 공개하려 해도 절차가 필요하다.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다듬고, 검증하고, 업데이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진 내부 투자 시간을 잡지 못해 외부 발표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회사의 복잡한 사정도 걸려 있었고. 본의 아니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

▲한컴이 20여년간 내놓은 ‘아래아한글’ 및 오피스SW 제품들.

–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는 스타일 같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 인라인스케이트와 축구를 즐긴다.  못 탔다. 같이 하는 운동으로는 축구를 일요일마다 한다. 직업상 자리에 오래 앉아있다 보니, 일부러라도 몸을 부딪히는 운동을 하려 한다. 체력을 최대한 소모하고 몸이 부딪히는 운동이 축구다. 매주 일요일마다 한바탕 뛰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포지션은 아직 수비와 미드필더 언저리다. (웃음) 인라인스케이트는 혼자라도 시간 날 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한강변을 자주 돈다. 아들 녀석이 자전거를 탈 때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딸아이에게도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쳐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 앞으로 제품 출시 계획과 관련해 각오를 밝힌다면.

= 이미 오피스SW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상황이다. MS랑 계속 경쟁해왔는데, 오피스SW로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는 끊임없는 내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때 이뤄진다. 한컴은 변신을 거듭해왔다. 살아남으려면 계속 변신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변신을 중단하는 순간 도태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아래아한글과 한컴오피스를 개발하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한 우리 개발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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