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 ’21세기법’, 국내 기업 수출 준비됐나?

가 +
가 -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을 제정·공표했다. 국내 기업들을 포함해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이 법이 규정하는 조항들을 준수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IPTV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현준호(@jhyun22) 책임이 법의 주요 내용과 국내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IT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기 때문에, IT 분야에서의 장애인의 차별을 방지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2010년 10월에 미국 정부에서 제정한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이하 ’21세기법’)을 살펴보겠다.

미국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1990년에 ‘미국 장애인 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에서는 건물, 교통, 고용, 의료, 교육 등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차별을 없애고자 홍보, 가이드라인 및 기술 표준 제정 등의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장애인 법 공식 웹사이트(http://www.ada.gov)

미국은 또한 1998년에 ‘재활법 508조'(Section 508 of Rehabilitation Act)를 제정했다. 연방정부에 의해 개발, 조달, 유지?보수, 사용되는 모든 전자 정보기술의 데이터와 정보는 비장애인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등하게 장애인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미국 재활법 508조 공식 웹사이트(http://www.section508.gov)

한국에서도 미국의 장애인법, 영국의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참고해 2007년 4월10일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와 시행령 제14조(정보통신 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 단계적 범위 및 편의의 내용) 2항 1호에 의거해 2009년 공공기관을 필두로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국내의 모든 웹사이트에서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달리 미국 장애인법은 인터넷 등이 활성화되지 않은 1990년도에 제정된 탓에, 정보통신 분야와 관련해 명확한 준수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 휴대폰 등 주요 정보통신 제품과 서비스가 미국 장애인법의 차별 항목에 포함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혼란을 줄이고 정보통신 제품과 서비스, 웹사이트에 대한 장애인 차별을 없애고자 미국에서는 관련 법률이 제정됐다. 지난 2010년은 미국 장애인법이 제정된 지 20주년이 된 해로, 2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국 장애인법에 웹 접근성이 포함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의 노력도 이뤄졌다. 특히 2010년 10월 8일에 정보통신 분야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새로운 법인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The 21st Century Communication & Video Accessibility Act of 2010)을 제정한 점에 주목할 일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21세기법 공식 웹사이트 (http://transition.fcc.gov/cgb/dro/cvaa.html)

21세기법은 크게 ‘통신 접근'(Communication Access)과 ‘비디오 프로그래밍 접근'(Video Programming Access) 2개 분야로 구성됐다.

통신 접근 분야를 보자. 21세기법은 ▲청각 및 언어장애인에 대한 인터넷 기반 통신중계 서비스 보장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와 장비의 접근성 준수 ▲접근성 미준수시 장애인의 민원 제기 및 조사 ▲스마트폰에 대한 접근성 준수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통신 이용 보장 ▲재난 접근 자문위원회 구성·운영 등을 규정했다.

비디오 프로그래밍 접근 분야는 ▲비디오 프로그래밍 및 재난 접근성 자문위원회 구성 ▲화면해설 및 닫힌 자막 제공 ▲디지털 방송수신 장비에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들과 연관이 많은 주요 조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인터넷 기반의 통신중계 서비스 보장 : 동 법 715조에서 기존 유선과 무선 사업자에게 통신중계 서비스를 의무화한 통신법 225조(Section 225 of the Communication Act)의 조항을 넘어,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인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을 이용하는 통신사업자에게도 1년 이내에 청각 및 언어장애인을 위한 통신중계 서비스를 시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유선, 무선,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통신 사업자도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청각 및 언어장애인을 위한 통신중계 서비스 제공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통신중계서비스 개요(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통신중계 서비스 웹사이트(http://www.relaycall.or.kr/info/introduce.asp))

②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Advanced communication services)와 장비의 접근성 준수 : 동 법에서 제시한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란 연결된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서비스(interconnected VoIP service), 상호 연결되지 않은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서비스(non-interconnected VoIP service), 전자 메시징 서비스( electronic messaging service) 그리고 상호운용이 가능한 비디오 회의 서비스(interoperable video conferencing service) 등 4가지가 포함된다. 동 법 716조에서는 이러한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와 장비의 접근성 준수 의무를 명시했으며, 법 시행 1년 이내에 이와 관련된 세부 기술지침 등을 제정·공표하라고 규정했다.

③ 접근성 미준수시 장애인의 민원 제기 및 조사 : 동 법 717조에서는 통신중계 서비스,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와 장비의 접근성 및 스마트폰 접근성이 미비한 것을 장애인이 직접 민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원 제기 비용은 없으며,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180일 이내에 반드시 관련 민원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해 공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접근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관련 제조사나 서비스 제공자에게 이를 조속한 시간에 내에 수정하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게 규정했다. 동 법은 미국 장애인법, 재활법 508조 등 기존의 타 법률과 달리 장애인이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울 경우 보다 쉽게 민원을 제기하고 이를 빠른 시간 안에 조사해 발표하고 명령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④ 스마트폰에 대한 접근성 준수 : 동 법 718조에는 웹브라우저가 탑재된 휴대전화기, 즉 스마트폰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준수하라고 규정했다. 동 법에서는 스마트폰 자체에서 접근성을 제공하거나 제3자가 제공하는 응용프로그램(앱)이나 보조기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을 적은 비용으로 구입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으면 접근성을 준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3년 뒤인 2013년 10월9일부터 적용되며,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의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조항이다.

⑤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통신 이용 보장 : 동 법 719조에는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통신중계 서비스를 위해 매년 1천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이들을 위한 기기 개발·보급, 연구, 서비스 등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시청각 중복장애인에 대한 통신서비스 방안 등에 대한 연구와 방안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⑥ 재난 접근 자문위원회 구성·운영 : 동 법 106조에는 고급화된 통신 서비스에서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재난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재난 접근 자문위원회'(Emergency Access Advisory Group)를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위원회는 사업자, 개발자, 정부관계자, 장애인 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⑦ 비디오 프로그래밍 및 재난 접근성 자문위원회 구성 : 동 법 201조에서는 비디오 프로그래밍 및 재난 접근성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위원회를 통해 18개월 안에 화면해설, 재난 정보, UI와 비디오 프로그래밍을 위한 가이드 및 메뉴 관련 기술 표준 등을 제정·공표하도록 규정했다.

⑧ 화면해설 및 닫힌 자막(Closed caption) : 동 법 202조와 203조에서는 인터넷 프로토콜 기반의 영상에 대한 화면해설과 닫힌 자막에 대한 의무를 규정했다. 이를 위해 FCC에서 관련 조사, 의견 수렴 등을 실시해 화면해설과 닫힌 자막에 대한 의무 범위를 설정하도록 규정했다.

⑨ 디지털 방송수신 장비의 UI : 동 법 204조와 205조에서는 디지털 방송수신 장비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TV, IPTV 등의 제조사와 서비스 업체들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동향을 파악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

21세기법에 따라 미국 장애인은 통신 및 비디오 분야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법의 효력은 미국에만 미치지만, 유럽연합 등 선진 시장에서 이러한 접근권 보장 의무화가 논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1세기법은 아직은 선언적 성격이 짙다. 미국 FCC를 주축으로 관련 제품과 서비스별로 세부 기술 지침 등을 계속 마련할 예정이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통신사, TV·IPTV 제조사나 서비스 업체도 이러한 논의에 참여해 미국 시장 진출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IT 기업들이 장애인을 시혜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으로 인식해야 한다. 장애인의 애로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차갑게 느껴지는 기술을 활용해 따뜻한 온기와 정이 느껴지는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보다 많은 국내 IT 기업들이 접근성 제고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 참고 사이트 >

1)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 관련 미국 연방 통신 위원회 (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공식 웹 사이트 : http://fcc.gov/cgb/dro/cvaa.html
2) 미국 장애인 법(ADA) 관련 미국 법무부 공식 웹사이트 : http://www.ada.gov
3) 미국 재활법 508조 관련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ection508.gov
4) 한국정보화진흥원 통신중계서비스 : http://www.relaycall.or.kr/home/main.asp

현준호 책임은 2002년 1월 한국정보화진흥원(구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입사해 IT 접근성 관련 정책 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웹 및 금융자동화기기 접근성 국가표준화 제정시 간사 역할을 맡은 바 있다. 현재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근무중. jhyun22@nia.or.kr

네티즌의견(총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