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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발자 자화상「미국은 총질, 한국은 삽질?」

2006.09.02

‘미국은 총질, 한국은 삽질’. 

지난 19일 한국자바개발자협의회(JCO)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옥상훈 회장은 국내 개발자들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개발자들이 마치 중요한 무기와 같은 대우를 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소위 ‘삽질’, 즉 쓸데없는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비유다.

이날 ‘대한민국 개발자들의 현실과 비전’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자바와 닷넷, 데이터베이스, 델파이, 플래시, 오픈소스 등 각 분야별 대표 커뮤니티의 운영자들을 한자리에 모였다. 업계는 개발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학계에서는 학생들이 개발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개탄하는 가운데, 개발자들은 이런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도급 시스템, 개발자 처우 문제의 출발점
논의는 크게 개발자의 근로시간, 개발자의 처우, 개발자 교육, 개발자로서의 비전 등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근로시간은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지난해 IT산업노조가 조사한 것에 따르면 국내 개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다른 직종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며 심지어 8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전체의 6%에 달했다.

패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하도급 관행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자바서비스넷의 이원영 사장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요구사항이 빈번하게 바뀌는 것이 문제다. 납기일 자체를 하루 12시간씩 일해야 맞출 수 있도록 계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손영수 데브피아 운영자도 "우리나라에서 좋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경험을 잘 반영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납기일만 잘 맞추면 좋은 소프트웨어로 대접받는다"고 개탄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고급 개발 인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 작용한다. 서학수 고수닷넷 운영자는 "우리나라에는 합리적인 납기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경험 많은 개발자가 거의 없다. 코더만 넘쳐난다. 발주 담당자도 IT를 잘 모르다보니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오케이’하지만 실제 결과물을 보고는 요구사항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산 SW의 품질도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손 운영자는 "국내 프로젝트 성공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의 SI 프로젝트가 인터페이스나 애플리케이션 등 겉으로 보이는 기술에 집중돼 있어 기반 기술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개발자의 임금과 처우 문제에 대해서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박경훈 훈스바라닷컴 운영자는 "우리나라는 게임 하나가 크게 성공해도 실제 개발자들에게는 돌아가는 보상이 매우 적다. 개발자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는 태도다. 적절한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연봉 1억원짜리 고급 인력이 국내에서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원영 사장도 "개발자들이 바라는 것은 근사한 저택이나 수십일간의 외국 여행이 아니다. 교통비, 야근비, 서적 구입비, 경조사, 회식비 등 당연히 법인 경비로 지출돼야 할 것들조차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개발자들의 처우를 정확하게 해주는 것만이 기업과 개발자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악덕 기업이 퇴출되는 환경 만들어야
개발자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사장은 "처우와 관련된 것들은 개발자 스스로 당당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핵심 개발을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업주를 상대로 요구하고, 지적하고, 고소해야 한다. 2002년 이전까지는 커뮤니티의 주요 주제가 기술이야기였는데 그 이후부터 악덕 기업, 악덕 프로젝트 관련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기업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개발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태준 데이터베이스사랑넷 운영자도 "개발자들은 보통 회의에 참석하기를 꺼려하는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회사 회의에 참석해 문제를 제기하고 발언해야 한다. 그렇게 전산인의 힘이 커져야 처우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자 교육의 현주소도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문 운영자는 "개발자의 인력 구조는 아래가 지나치게 큰 기형적인 피라밋 구조인데 이것이 앞서 언급한 노동환경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개발 인력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생용 전산과목 교과서인 컴퓨터생활은 기술 담당 교수가 만들고 있다. 내용은 온통 파워포인트, 엑셀, 윈도우로 가득차 있다. 활용 중심이다 보니 굳이 전산 과목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우리도 외국처럼 대학에서 배울 과정을 조금 미리 맞볼 수 있도록 원리와 개발 중심을 바꿔야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고 말했다. 

유승호 와글와글닷넷 운영자도 "사용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개발자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개발자들이 오래동안 활동할 수 있는 기술은 결국 기반 기술, 코어 기술이므로 아시아눅스처럼 플랫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많은 패널들이 오픈소스를 이러한 플랫폼 기술의 하나로 꼽았다. 권순선 KLDP 운영자는 "잘 나가는 분야에서는 먹을 게 없지만 새로 시작하는 분야에서 잘 찾으면 먹을 것이 생긴다. 개발자 처우나 스킬업을 이야기하는데 오픈소스는 기획과 디자인, 개발 등 전체 SW 개발 과정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개인의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창신 아파치 커미터도 "SI가 소프트웨어 개발의 전부는 아니다. 한 분야를 찾아 깊이 파보고 구글 블로그 등을 통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자 현실에 대한 더 많은 논의 필요
이 논의에는 방청석에서도 큰 관심을 나타냈는데 자신을 개발자 2년차라고 소개한 한 참석자는 "나는 그동안 4군데의 직장을 거쳤고 해외에 나가기도 했다. 짧은 경험이지만 국내에선 개발자하면 컴퓨터를 AS하거나 단순 작업하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야근이나 휴일근무도 일상화돼 있다. 오픈소스를 대안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픈소스 참여 자체가 커리어를 높이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이 먼저인 것 같다. 명예를 중시하는 외국과는 좀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노조와 같은 이익단체를 만들어서 우리 주장을 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50여명의 SW 개발자들과 IT산업노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참석자가 예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의 SW 개발자를 두루 아우르면서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던 다양한 의제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 플래시 개발자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오픈소스가 개발자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처럼 논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개발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JCO 옥상훈 회장은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계속 마련해 개발자들의 현실을 알리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nanugi@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