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리는 인터넷, 조금만 배려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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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웹이나 소프트웨어에서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얘기하면, 주로 시각장애인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요. 청각장애인의 접근성 문제는 잘 드러나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비단 IT 분야에서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의사소통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부족한 게 안타깝습니다.”

김철환(46)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정책실장은 국내에서 꾸준히 청각장애인 접근성 문제와 처우 개선 요구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활동가다. 그가 짚는 근본 문제는 두 가지다. 의사소통, 그리고 사회 인식 차이에서 오는 격차다.

“청각장애인은 그래도 볼 수는 있으니, 웹을 검색하거나 정보기술을 취득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문제를 조금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워요.”

김철환 정책실장이 꼽는 첫 번째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듣지 못하지만 볼 수는 있다고 해서, 웹을 이해하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청각장애인 대다수는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데요. 수화는 말 그대로 새로운 모국어입니다. 한국어나 다른 언어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제3의 언어에요. 이 언어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에겐 한글도 말 그대로 제2외국어나 다름없습니다. 기본적인 이해력이 딸리게 마련이지요.”

이런 이유로 청각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국내 평균, 심지어 국내 장애인 평균 이용률보다 떨어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올해 2월 내놓은 ‘2010년 정보격차지수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장애인 인터넷 이용률은 53.5%로 전체 국민의 인터넷 이용률인 78.3%보다 24.8%p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청각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41% 수준으로, 장애인 평균 인터넷 이용률보다 낮다. 김철환 정책실장은 “인터넷 정보를 소화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자연스레 인터넷에 대한 흥미나 필요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주변 청각장애인들을 보면 젊은층은 학교에서 일찍부터 인터넷을 접한 덕분에 익숙한 편이지만, 30대만 넘어가도 간단한 기사 검색이나 단순한 게임을 즐기는 것 이상은 안 하게 됩니다. 청각장애인은 주로 수화를 이용하는데, 인터넷에선 원하는 정보를 깊이 있게 가져오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발간한 ‘전세계 장애인 보고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통신중계 서비스, 수화, 점자 서비스 개발 등을 지원하라”라고 명시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지난해 개정 과정을 거치며 일반 TV 뿐 아니라 IPTV 방송물에 대한 자막 제공과, 음성 내용을 수화 영상으로 전달해주는 통신중계 서비스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하지만 극장 영화나 DVD 영상물 등에 자막을 의무 제공하는 문제는 저작권 관련 협회의 반발로 결국 ‘임의조항’ 형태로 국회를 통과하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 웹이나 영화관, DVD 등에서 청각장애인이 동영상 내용을 자막으로 소화하는 데는 걸림돌이 남아 있는 모양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덕분에 장애인 접근성이 많이 개선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이 동영상에 자막을 제공하는 부분은 아직 취약한 게 사실이에요. 동영상 제작자가 일일이 자막을 달아주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손쉽게 자막을 넣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시스템을 설계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김철환 정책실장은 실제로 이같은 자막 지원 운동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8년에 ‘쉬리’란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죠. 그 때 저는 농아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청각장애인들의 민원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영화에 자막을 입혀 상영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영화사를 무작정 찾아갔어요. 다행히 영화사에서 필름을 한 벌 내준 덕분에 자막을 입혀 1999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상영회를 가졌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났어요. 그 때 자극을 많이 받았죠.”

영화 분야엔 문외한이었던 김철환 정책실장은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첫 ‘장애인 영화제’를 열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주요 음향효과를 진동으로 전환해 전달하고, 자막도 넣었다. “당시 영화제를 준비하며 함께 작업했던 엔지니어들이 조금씩 자막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한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한국영화가 나올 때도 하나둘씩 한글 자막이 들어가기 시작하더군요. 지금은 적잖은 DVD가 자막을 기본 제공하고 있지만, 당시로선 낯선 일이었거든요.”

김철환 정책실장은 “청각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기술적 측면에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시범서비스로 대학에 입학한 청각장애인을 위해 강의 내용에 자막을 입혀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는데, 청각장애인들이 무척 반가워했어요. 책을 수화로 읽어주는 응용프로그램도 많이 개발됐고요. 하지만 대민서비스나 공공기관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직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조금 더 들어보자. “대민서비스나 AS센터 안내문을 보면, 담당 전화번호가 대개 유선전화로 안내돼 있죠. 그러면, 청각장애인은 전화 문의를 할 수가 없어요. 휴대폰 번호도 함께 알려주면, 하다못해 문자메시지로 문의라도 할 수 있겠죠. 말이나 글로 의사 표현을 속시원히 하기 힘든 장애인들을 위해 동영상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이번 수해 때도 재난방송이 수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지 않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청각장애인들 민원이 여럿 들어왔어요. 조금만 세심히 배려하면 더불어 편리할 텐데요.”

또 다시 인식과 배려의 문제로 돌아간다. “예컨대 유엔은 2002년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권 협약을 만들면서 수화를 독립된 언어로 인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법률은 수화를 독립된 언어로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요. 한국도 2009년부터 유엔 인권협약 적용 대상국이 됐는데, 지금부터라도 수화를 서비스 관점이 아니라 권리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수화를 배워서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하고, 웹에 올라오는 모든 글을 청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짧고 쉬운 문장으로 고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조금만 세심히 배려하기만 해도 많은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어요. 웹에서도 되도록 간편하고 심플한 이용자화면(UI)을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청각장애인들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해결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요.”

김철환 정책실장은 가정 형편 탓에 대학을 중퇴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우연찮게 수화 강좌를 듣게 되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그 뒤 ‘젊은 혈기에’ 직장도 그만두고 장애인 관련 협회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장애인 정보화와 인권분야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2008년부터 뜻 맞는 지인들과 함께 장애인정보문화누리를 만들어 지금까지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0년말 기준으로 보건복지가족부에 등록된 국내 청각장애인은 26만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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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올라온 호주 청각장애인 직업 사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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