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P가 웹OS와 태블릿 PC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PC 사업 부문을 분사하겠다고 했고, 소프트웨어 솔루션 부문을 강화하겠다고도 말했다. HP로선 큰 결정이었고, 전세계 PC 시장에서도 ‘빅 뉴스’였다. HP는 아직도 전세계 PC 판매량 1위 기업이기 때문이다.
HP의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진 이후 HP의 PC 사업부의 진로에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삼성전자나 중국 레노보가 HP PC 사업부 ‘인수 후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공식 글로벌 블로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혀 루머를 일단 잠재웠다.
HP PC 사업부가 분사된 이후엔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까. 전세계 PC 시장과 PC 사업을 둘러싼 산업에 어떤 영향이 벌어질지 예측해 봤다.
PC 사업부, HP의 독립 법인으로 남을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HP가 웹OS 사업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한 지난 8월19일, HP는 PC 사업부에 대해 ‘분사’라는 표현을 썼다. PC 사업부를 독립된 법인으로 따로 떼어낸다는 뜻이다. PC 사업부를 HP가 자회사 형태로 갖고 있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HP가 PC 사업부를 매각 매물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면, PC 사업부를 분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최근 PC 시장의 성장곡선과 HP의 성적표를 보면, HP가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8월19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2분기 팔려나간 PC는 총 8434만대로, 2010년 2분기에 비해 양적으로 2.3% 성장했지만 원래 가트너가 예측한 6.7%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8434만대 PC 중 HP는 1483만대를 팔아 전체 시장에서 17.6%를 차지했다. HP PC 사업부의 2011년 2분기 기준 매출은 95억달러 수준이지만 이 역시 2010년 2분기와 비교하면 3%가량 감소한 결과며, PC 수량으로 따지면 2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DC 자료도 PC 시장 성장이 둔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DC는 지난 6월, 애초 예상한 PC 시장 성장률 7.1%를 4.2%로 수정해 발표했다. IDC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새로운 기기가 출현 때문에 PC 시장 성장세는 예상보다 주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PC 시장이 과포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형태의 기기가 등장하며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HP의 수익 구조를 보면 2011년 2분기 PC 사업부는 전체 HP의 비즈니스에서 31%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PC 시장 지표가 나빠질수록 HP 재무지표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PC 사업부는 HP에게 가장 돈을 많이 벌어주는 사업부인 동시에 쇠락하는 사업이다. HP가 PC 사업부를 떼내는 건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것과 같다.
권상준 한국IDC 책임연구원은 “HP의 PC 사업부 분사 계획을 두고 HP가 전체 PC 사업을 포기한다고 해석하기엔 이르다”라며 “HP 전체 재무평가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PC 사업부가 HP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엔 HP는 PC 사업부를 제외한 서비스 솔루션, 프린터, 서버 등 고수익 부문에 집중할 수 있고 PC 사업부는 독립적으로 운영돼 HP의 재무지표를 개선할 수 있다.
HP, PC 사업부 매각하나
HP가 PC 사업부를 매각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HP의 PC 사업부 분사 결정은 앞으로 PC 사업부를 다른 업체에 매각하기 위한 전철이라는 분석이다.
HP PC 사업부를 인수할 후보로 거론된 업체는 국내 삼성전자와 중국 레노버 등이다. HP PC 사업부를 인수하면 단숨에 전세계 PC 시장 ‘넘버원’으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증권사 메릴린치는 “삼성의 인수합병은 소프트웨어와 특허 관련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HP PC 사업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삼성이 HP PC 사업부를 인수하더라도 한자릿수 초반 마이너스 수익률 때문에 대규모 현금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공식 글로벌 블로그를 통해 지난 8월25일, HP PC 사업부 인수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레노버는 2005년 미국 IBM의 PC 사업부 씽크패드를 인수한 전력이 있다. 레노버는 IBM PC 사업부를 인수한 이후 2011년 2분기 현재 전세계 PC 시장 12.1% 점유율을 기록하며 HP, 델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레보버가 HP PC 사업부를 인수하게 되면 2011년 2분기 기준으로 전세계 PC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늘릴 수 있다. 지금보다 2배 이상 몸집을 불려 2위 델을 멀찌감치 따돌리게 된다.
레노버가 HP PC 부문을 인수하게 되면 특히 해외 시장 공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레노버는 매출의 절반인 48%를 중국 시장을 통해 거두고 있다. 미국 PC 시장에서는 5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HP가 PC 사업부 분사를 결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 PC 사업은 고여 있는 물이나 다름없다. HP PC 사업부의 큰 덩치도 인수합병에 걸림돌이다. 막대한 현금을 들여 인수를 자청할 업체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PC 시장엔 어떤 영향이
HP의 PC 사업 포기는 전세계 컴퓨터 시장을 둘러싼 업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업체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HP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PC를 파는 업체인 만큼 MS에게 HP는 가장 큰 고객이다.
2011년 들어 MS의 간판 제품 윈도우 운영체제에 대한 매출이 감소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2011년 1분기 기준으로 윈도우부문 매출은 2010년보다 4%나 감소한 44억달러를 기록했다. 윈도우 운영체제 부문 영업이익도 10%나 줄어들어 27억달러에 그쳤다.
MS의 윈도우 사업이 주춤한 까닭은 HP가 PC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결정한 이유와 같다. 전세계 PC 시장에 켜진 ‘빨간불’ 때문이다. 대만 PC 업체 에이서도 PC 제조관련 분야 매출에서 10% 하락을 경험하는 등 PC 시장 전체 포트폴리오가 정체현상을 겪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밀려 작은 크기의 넷북부터 차츰 시장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HP는 아예 PC 사업부를 분사하겠다고 발표했다. MS에게 이중 악재나 다름없다. HP가 PC 사업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리면, PC 출하 수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MS는 의연한 입장이다. HP의 PC 사업부 향방과는 관계없이 MS가 받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석현 한국MS 마케팅팀 이사는 “HP PC 사업부가 합병이나 분사를 통한 변화가 생겨도 HP 자체 수량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라며 “합병으로 인한 수량 손실이 아주 없진 않겠으나, 윈도우 PC 시장은 윈도우 내에서 움직이는 특징을 보이므로 양적인 손실은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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