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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만 되면 자가용이 그립다!
by 도안구 | 2008.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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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내려갑니다. 시골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데, 그리로 가는 것이죠. 아내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입니다.

사내 아이 둘과 아내,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 6일 오전 6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갑니다. 거기서 다시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타지요. 서산에서 한번에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도 있습니다. 집 장만 먼저 해본다고 빚내서 집 사서 아직 자가용이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명절만 되면 자가용 사자는 이야기가 나올만 하지요. 아내는 이야기는 잘 안하지만, 내심 빨리 자가용을 사서 아이들 데리고 이곳 저곳 여행도 다녔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결혼하고 처음 시골집에 내려갈 때 아이 둘을 안고 버스를 타는 부부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속으로 ‘아니 아이가 둘이나 있으면서 자가용도 없나? 자가용 좀 사지..에궁..’이라고 했었는데, 저 역시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아마 젊은 친구들이 저희 부부를 보면 똑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자가용 없으면 올라올 때도 항상 번거롭습니다. 다시 서산시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와서 버스를 타야 하니까요. 광명에 사는 형님 차를 얻어타고 올라오기도 했는데 자가용을 타도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고, 또 광명에서 서울 은평구로 다시 와야 해서 그냥 버스 타고 푹 자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게 몸도 맘도 편합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여러 사람에게 민폐도 끼치게 됩니다. 명절에 가족간에 음식도 같이 만들고 하지만 오랫만에 만나는 시골 ‘X알 친구’들과 한잔 하려면 또 읍내에 나가야 하는데 제가 차가 없으니 매번 옆 집 친구 차를 얻어타게 되고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아침엔 새벽 4시경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할텐데…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시골 내려가는 버스비가 어른 둘에 아이 하나(둘째 녀석은 아직 돈 안내도 되는 나이)로 2만 6천원입니다.(우등으로 표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은평구에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려면 1만원은 넘습니다.

저희 시골집은 공군 레이더 기지때문에 개발이 안되는 절대농지 지역입니다. 읍내에 사는 친구녀석들이 저희 집에 올 때마다 하는 말이 “이곳은 20년이 지나도 하나도 안바뀌는 구나.. 비포장이 포장됐고, 옛날 집이 새집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건 다른 데 있습니다. 새로운 분들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동네. 초등학교도 폐교된 곳. 명절에 갈 때마다 최근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남아계신 분들도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가고 늙어가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의 얼굴도 그렇죠. 자주 뵙지도 못하고 전화만으로 안부인사를 나누는데 한 두달 사이에 뵈어도 왜 그리 빨리 늙어가시는지 원.

형님이 장가가기 전에는 시골집에 초고속인터넷도 들어와 있었는데 형님 장가가고 바로 끊었습니다. HSDPA 모뎀이 있었으면 가서 사진도 찍고 글도 올려보겠지만 와이브로 USB 모뎀만 있어서 불가능할 듯 합니다. 초고속인터넷도 완전 시골이라서 읍내까지는 KT와 하나로텔레콤, LG파워콤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저희는 그 읍내에서 10리는 더 들어가는 깡촌이라서 KT만 서비스 합니다. 그래서 3년 약정에 서비스 상품 이것 저것 받는 건 엄두도 못냅니다. 경쟁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대신 저희 밭에는 이동통신 기지국이 하나 들어서 있습니다. 시골은 전화가 잘 안터지다보니 이동통신사들이 기지국을 세웁니다. SK텔레콤에서 기지국 세우러 왔다가 원래는 옆집 산에 세우려 했는데 그 땅이 서울 사람거라서 그분과 계약하지 못하고 밖에서 돌아다니시던 저희 아버지에게 기지국 세우면 돈 준다고 해서 바로 세우게 했답니다.

그 후 KTF와 LGT도 SK텔레콤이 세운 기지국에 소형 기지국 장비를 가져다 붙였습니다. 공동 이용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그 기지국 들어서고 버시는 수입이 짭짤하시답니다. 밭 농사 지으시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시네요.

다들 건강하고 무사하게.. 설 보내시기 바랍니다.

조카들이 세뱃돈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이 준비해 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갑 더 든든해지시고, 설 후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이번 설은 저에게 엄청난 위기의 해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턱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콧수염은 면도하고 그냥 턱수염만 길러보고 있는데 장모님과 아내의 반대가 실로 엄청납니다. 얼마전 학교 동아리 선후배들을 만났는데 “이건 또 뭐야?”라는 말과 함께 “라이터 가져와 확 지져버리게”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반대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9살)이 되는 큰 아이와 5살 난 둘째 아이는 집에 들어가면 아빠의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하고 절대 깎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 재밌다고 하면서요.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계속 기르라고 합니다.

문제는 바로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죠. 그리고 수많은 일가친천 어른들. 그 분들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할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멋진 수염은 아니지만 그냥 마흔살이 되기 전에 머리를 길러보고 수염을 길러보고 싶었습니다. 머리 기르는 것은 좀 어려워서 수염을 길러보고 있습니다.

매세운 바람이 불 때 시렸던 턱이 더 이상 시리지 않지만, 많은 분들의 눈빛엔 ‘추운 때 실업자로 고생한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저 턱수염만 길렀을 뿐인데요. 좀 멋지게 관리하고 옷도 더 신경써서 입어야 겠습니다.

자가용 이야기하다가 턱수염까지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고, 서울에 계시는 분들도 서울 잘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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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닷넷 미디어랩장. 블로터TV와 소셜 분석, 전자책 등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원피스'의 해적들처럼 새로운 모험을 향해 출항했다. [트위터] @eyeball, [이메일] : eyebal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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