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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 침해”

2011.09.21

인터넷의 핵심 가치는 ‘개방성’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고,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할 자유를 가진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부 연령대 사용자를 특정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행위는 인터넷 개방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오는 11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셧다운제’ 얘기다.

한국언론법학회는 9월20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한계’를 주제로 국내에서 적용되는 인터넷 규제법안의 문제점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주요 문제로 다뤄졌다.

그동안 셧다운제를 둘러싸고 청소년 행복추구권이나 인권침해에 대해선 많은 토론이 이어졌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셧다운제가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가정의 기본적인 기능을 해치는 법안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종현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청소년 보호라는 이유로 규제가 진행될 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셧다운제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밤 12시 이후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이다. 게임이나 영상물의 이용 연령을 제한하는 식으로 그동안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등급별 규제 성격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까지 접속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등급별 규제를 무시하는 셈이다. 셧다운제에 대해 과잉규제,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다수의 참여자가 이용하기 때문에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게임이라는 광장을 통해 의사 표현과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표현 행위가 특정시간대에 문을 걸어잠금으로써 청소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셧다운제의 총구는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건 청소년뿐만이 아니다. 게임을 만드는 성인까지 영향을 끼친다.

박종현 교수는 “게임이라는 표현물이 기존 세대의 통념과 가치관에 반하는 것인지 게임 개발자는 스스로 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라며 “청소년 보호라는 그럴듯한 목적으로 문화 발전 가능성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셧다운제는 그동안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던 규제를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점에서도 살펴볼 의미가 있다.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이용 시간을 규제하는 법안인 만큼, 현재 시행되고 있는 밤 10시 이후 노래방 및 PC방 출입 제한 조치나 방송영역에서 청소년 TV 시청 보호시간대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공적 영역에서의 규제지만 셧다운제는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작동한다. 가정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의 행동도 정부가 개입해 통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사적 영역의 규제라는 점 때문에 부모와 청소년의 관계를 무시한 조치라는 의견도 나왔다. 박종현 교수는 “밤 10시 이후 가정에서 청소년의 행동을 제한할 권리는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다”라며 “강제적 셧다운제는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셧다운제가 가정 내에서 작동하게 됨에 따라 청소년과 부모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게임문제를 다룰 가능성을 부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조연하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도 셧다운제가 가정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조연하 박사는 “과도한 게임 이용이 문제라고 판단하면, 부모가 청소년을 교육하는 기능에 먼저 접근해야 한다”라며 “타율적 규제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교육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실현한다면 게임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셧다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꼭 두 달째인 6월27일, 미국에서 의미 있는 판례가 나왔다.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폭력적인 비디오를 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법을 미국 연방대법원이 7대 2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사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폭력적인 게임이 청소년의 폭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자료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어떤 행위가 또 다른 해악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매우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법의 기초적인 원칙을 지킨 동시에 게임이 과연 저급한 문화인가를 고민하는 미국사회의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독이든 사과를 먹는다는 끔찍한 내용의 동화(백설공주)를 읽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듯, 폭력적인 영상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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