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요금제, 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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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쓰는 청각장애인이 매달 ‘고객님의 음성통화 잔여량은 300분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대학생 5명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요금제가 필요하다며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 다니는 문현기(08학번 전기전자통신공학부), 임현수(03 전기전자통신공학부), 박예나(09 컴퓨터공학부), 장선영(09 컴퓨터공학부), 임현정(07 신소재공학부) 등이다.

문현기 씨를 비롯한 5명은 다음 아고라와 학내, 천안 시내뿐 아니라 주말이면 각자 지인 집에 머물며 서울 시내에서도 서명운동을 벌인다. 마침 서울에 올라온 문현기 씨와 박예나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요금제 만들어주세요’ 서명운동하는 문현기 씨와 박예나 씨

“장애인을 위한 요금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가 2G 휴대폰 요금제예요. 언제까지 청각장애인이 2G 휴대폰만 써야 한다는 걸까요. 요즘은 2G 쓰는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인데다 2G는 올해 서비스가 끝나는데 말예요.” 박예나 씨는 스마트폰이 국내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장애인을 위한 요금제는 없다고 꼬집었다.

2G 요금제에는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해 문자를 다량 제공하는 손말 요금제, 선사랑요금제, 손문자요금제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150, 복지22000 요금제, 시각장애인에는 음성변환 문자서비스, 소리사랑요금제 등이 있다. 여기에 기본료와 이용요금은 35% 복지 할인을 받는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요금제는 박예나 씨 말대로 아직 장애인을 대상으로 나온 게 없다.

현재 스마트폰 요금제는 통신사마다 비율은 다르지만 음성, 문자, 데이터통화료가 패키지로 묶여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3가지 통화료를 다양하게 결합한 요금제 중 필요한 걸 고르면 된다. 이 가운데 음성통화는 청각장애인에 그리 쓸모가 있지 않은데도 어느 요금제에든 반드시 포함돼 있다. 청각장애인에겐 음성통화료를 문자와 영상통화처럼 청각장애인이 자주 쓰는 기능으로 돌려야 한다는 게 5명의 주장이다.

문현기 씨는 지금의 요금제가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두 푼도 아니고, 내지 않아도 되는 요금을 내야 하는 지금의 스마트폰 요금제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기기값까지 포함하면 요금 부담이 너무 커요. 저희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특권을 주자고 요구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스마트폰 요금제가 효율적으로 바뀌길 바라요.” 5명이 만든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요금제 이름은 ‘i-아름손짓’이다.

5명은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을 받아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를 주장하고 활동하지만, 5명은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두 비청각장애인으로 귀가 들리는 사람(청인)들이다. 어떻게 서명운동을 벌이기까지 한 걸까.

▲박예나, 임현정, 임현수, 문현기, 장선영(왼쪽부터)

문현기 씨를 비롯한 대학생 5명은 KT의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인 ‘모바일 퓨처리스트’에서 만나 한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월초에 제출할 봉사활동 과제 아이템을 고민하다 문현기 씨가 평소 관심이 있던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에 대한 생각을 털어왔다.

“1년에 걸쳐 3개의 과제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 봉사활동 과제로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를 고민했지요. 올 3월 다음 아고라에서 ‘청각장애인도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는 서명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기사로도 소개되면서 곧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아직 안 나왔죠. 나머지 4명에게 ‘지금 만들고 있다면 더 빨리 나오게 하고, 만약 아직 검토 작업 중이라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어요.”

5명은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가 있어야 하는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방도까지 마련하고 이 일을 벌인 눈치는 아니다. 이동통신사의 요금제를 개선해달라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다고 했지만, SK텔레콤을 뺀 나머지 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인가 없어도 요금제를 만들 수 있다.

“요금제를 만드는 절차가 복잡한 걸 알아요. 우리가 세부적인 내용까지 만들면 좋겠지만, 힘든 일이겠지요. 그보단 사람들에게 청각장애인과 다른 장애인이 차별받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 시대라고 하지만, 요금제에서 차별받는 사람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만 성공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외부 동아리 활동 때문에 벌인 일이지만, 5명은 꽤 열심이다. 틈날 때마다 교수, 학교 친구, 학내 수화 동아리를 찾아가 서명에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하도 홍보하고 다니다 보니 ‘스패머’라는 별명도 생겼다고 한다.

장애인 요금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알리는 과정은 어땠을까. “처음 아이디어를 내면서도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실수할까 봐 불안해요. 저희 때문에 기업이나 장애인 등 누군가의 이미지가 안 좋아질까 봐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있어요.” 자신 없이 시작했지만, 5명은 똘똘 뭉쳤다. 서명운동할 때 들고 있을 피켓을 밤새 만들고, 천안 외곽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천안 시내까지 무거운 책상을 들고 나가 반나절 꼬박 서명운동을 벌였다.

아고라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로 사람들에게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요금제가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5명은 힘을 얻어가는 모양이다. 문현기 씨는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아요”라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놀이를 진행하는 ‘라이크(좋아요) 놀이’ 페이지 운영자를 찾아가 좋아요 카드를 협찬해달라고 했는데, 선뜻 200장을 무료로 받기도 했다. 서명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세계 농인의 날’ 행사가 있어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도 얻었다. 얼마 전에는 장애인방송 ‘제이넷티비’에서 5명의 활동 소식이 보도되면서 더욱 고무된 눈치였다.

“돈을 얼마 모금하고 기부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트위터에서 리트윗 한 번,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단추 누르기, 아고라에서 댓글 쓰기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 스마트폰 요금제에 대해 알릴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이 퍼지고 사람들이 공감하면 좋은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10월 초, 5명의 서명운동 활동이 영상으로 정리되고 나면 5명이 모여 활동하는 것도 끝이 난다. 하지만 서명운동하며 만난 사람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인터넷에서 SNS와 게시판을 타고 퍼지길 기대한다. 문현기 씨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자기의 트위터로 홍보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