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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경계를 지우다”…디지털 북 페스티벌

2011.09.28

종이책의 출판과 유통에서 뚜렷이 구분되던 역할들이 전자책으로 넘어오며 희미해지고 있다. 전자출판에서 저술, 기획, 번역,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인쇄, 제본, 유통과 판매 등으로 나뉜 기존 종이책 출판의 영역을 융합한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전자출판에서는 저자와 출판사, 플랫폼의 경계를 나누기 어렵다. 저작도구 개발사가 전자책 유통 플랫폼을 서비스하고 출판사가 직접 전자책을 ‘제작’해 인쇄소 노릇을 맡는다. 저자가 책을 내고 출판사를 차려 저술과 저자 발굴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디지털 북 페스티벌 2011’은 이런 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리였다. 9월27일 시작된 이 행사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전자출판협회가 공동주최하고 교보문고, 유페이퍼, 예스24, OPMS, 시공미디어 등 40개 전자책 기업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로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융합’을 들었다. “전자출판에 경계를 나누는 게 무의미합니다. 저작도구와 플랫폼, 콘텐츠 기획과 개발, 작가와 출판사 등 기존 종이 출판에서 나뉜 영역을 깨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판계에서 전자출판을 소개한 자리는 올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먼저 마련됐다. 코엑스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는 ePUB기반 전자책과 ePUB 저작도구, 앱북 등이 소개됐다. 3개월만에 비슷한 행사를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전자출판협회가 개최한 이유는 전자출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참가 업체는 대체로 앱으로 제작된 도서를 전시했다. 컨퍼런스로 가는 행사장에는 앱북 저작도구를 서비스하는 회사의 부스가 있었다.

디지털 북 페스티벌 행사장에 가니 전자출판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전자책 출판사인 ‘아이이펍’는 저자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데서 나아가, 저작도구 없이 전자책을 만들어 전시했다. 만족스러운 ePUB 저작도구를 찾지 못해 사내 디자이너가 직접 코딩 작업을 맡았다. 출판사와 개발사의 영역이 깨진 사례다.

도서출판 안북의 안근찬 대표는 저자에서 출발해 전자책을 내다 출판사를 차리고 신규 작가를 발굴해, 저자와 출판사의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안근찬 대표는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 중 직접 출판을 하려는 사람과 전자출판을 하려는 저자가 많았다”라며 “최근엔 번역가들이 책을 저술하는 데 관심을 보여 번역가를 대상으로 출판 강연을 한다”라고 말했다.

저작도구 개발사와 플랫폼 사업자의 영역이 융합한 모습은 모글루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글루는 앱을 제작하는 PC용 저작도구를 개발해 무료로 보급하고 자체 스토어에서 콘텐츠를 판매하는 곳이다. 김태우 모글루 대표는 “앱북을 만드는 저작도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나오는 추세”라며 앱북에 대한 관심이 국내 시장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이이펍은 ePUB 3.0을 적용한 책을 전시했다. 왼쪽이 ePUB 2.0으로 제작된 책이고 오른쪽에 전시된 책이 ePUB 3.0을 적용한 책이다.

▲PC에서 코드를 몰라도 앱북을 만드는 모글루의 저작도구.

전자출판에서는 출판을 위한 저작도구와 앱 개발도구를 나누는 것도 모호하다. 책을 앱 형태로 내려는 관심이 높아지며 앱 개발도구가 저작도구로 소개되기도 한다. 아이패드에서 앱을 만드는 앱크래프트가 디지털 북 페스티벌에 참가한 점이 최근 앱과 도서의 경계가 모호한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 직접 인쇄에 뛰어든 모습도 보였다. 전자책 유통사가 종이책에서 서점이라면, 뷰어는 인쇄소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전자책 오픈마켓인 유페이퍼는 직접 ePUB 저작도구를 개발해 무료로 보급하고 뷰어도 개발했다. 유페이퍼는 10월 중 선보이는 교보문고의 1인 출판 저작도구 ‘퍼플’ 개발에 참여한 곳이기도 하다.

서점은 도서관 역할도 맡는다. 전문 사서를 두고 개인에 맞게 책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업이나 공공도서관과 제휴를 맺고 도서 대여 서비스도 제공한다. 디지털 북 페스티벌에 참여한 메키아, 예스24, 북큐브, 교보문고 등은 각기 전자도서관 이용자에게 책을 빌려주고 뷰어도 제공하고 있다.

이번 디지털 북 페스티벌엔 참가 업체들 예상보다 많은 방문자가 몰렸다. 출판 저작도구의 전통적인 강자인 ‘쿽익스프레스 9K’를 전시한 인큐브테크의 권석호 대리는 “예상보다 디지털 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라며 “종이로 인쇄했을 제품 설명서를 앱 형태로 제작한 사례를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오는 분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규모 편집∙디자인 회사가 사보나 전단지, 팜플릿 제작을 의뢰받아 쿽 프로그램과 인디자인 또는 앱북 저작도구를 이용해 앱을 만드는 모습을 곧 만나볼지도 모를 일이다.

▲인큐브테크가 전시한 ‘쿽9K’

전자출판하는 콘텐츠는 글 위주의 성인도서 외에 그림책, 영상 등으로 다양해 ‘책’에 대한 경계마저 흐릿하다. 텍스트 위주의 성인도서를 앱으로 만드는 북잼, 아동용 그램책에 인터랙티브 기능을 넣어 앱으로 출시한 시공미디어, 동영상을 기반으로 잡지를 만드는 넷앤티비 등 다양한 출판 콘텐츠도 행사장에 등장했다.

▲시공미디어가 전시한 유아용 앱. 테이블에 설치한 스크린으로 확대해 보여줬다.

디지털 북 페스티벌은 국립중앙도서관의 국립디지털도서관에서 9월29일까지 열리며,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ePUB 전자책을 즉석에서 만드는 ‘전자책 제작 체험’과 개발 회사가 전시하는 앱 저작도구 등이 볼 만하다. 그 외 전자출판에 대한 11개 주제로 이루어진 ‘스마트 퍼블리싱 컨퍼런스’와 ‘글로벌 플랫폼 패러다임 변화와 콘텐츠 생태계 구축 전략 좌담회’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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