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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바칼럼] 한 벤처기업의 채용공고 독해하기

2011.10.03

채용공고를 보고 가슴 짠해보기는 또 처음이다. 한 벤처기업이 새로 직원을 뽑는다며 올린 이 글을 만난 건 페이스북에서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돌려가며 소개하고 있길래, 무심코 클릭해 들어갔다가 몇번을 다시 읽어내렸다.

‘B2C 하려고 모였는데, 대체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입사전형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나오는 장문의 글은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시작한다. 회사의 대표가 직접 쓴 일종의 회사 소개글인데, 2006년 설립이후 지금까지 회사가 걸어 온 길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그 안에는 한 IT 벤처기업의 고단한 성장사가 녹아있다. 아니, 한 벤처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IT 벤처기업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서글픈 현주소가 고스란히 읽힌다. 소셜미디어와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트렌드 앞에서도 결코 변함이 없는 우리네 벤처 생태계가 말이다.

긴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겠다고 의욕에 넘쳐 출발했고, 초기 반응도 꽤 좋았다. 하지만 서비스만으로는 생각처럼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먹고살기위해 용역 개발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애초 해보겠다는 사업과는 전혀 다른 용역전문업체가 돼 버렸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대체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라는 자문과 함께 초기 사업모델로 되돌아가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하게된다. 그리고 새출발을 함께 할 인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번 읽어보시라. 위자드웍스라는 벤처기업이 올린 채용공고 공지다. ‘B2C 하려고 모였는데, 대체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웹2.0이다, 소셜이다해서 뭔가 새로운 흐름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지만, 2011년 우리네 벤처기업들의 모습은 10년, 20년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소프트웨어든 서비스든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하지만 결국 대기업의 용역회사로 생명을 이어갈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생명줄이 본업이 되고 마는 주객전도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용역업체의 개발자로서 대접못받는 열악한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싫어, ‘나만의 솔루션’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용기있게 박차고 벤처기업을 시작했지만, 어느새 용역전문업체를 꾸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씁쓸함. 위자드웍스의 채용공고를 읽어내려가다보면, 그 서글픈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대한민국 벤처기업 CEO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나, 벗어나야 하나. 대부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쉽지가 않다. 벗어나기 힘든 악순환의 고리가 어떤지 채용공고는 설명한다.

“더 많은 광고 위젯 개발 문의가 들어오면서 우리는 멤버를 더 많이 뽑아야 했어요. 그 다음 달에는 많이 뽑아 놓은 멤버들에게 급여를 지급해야 했기에 더 많은 광고 위젯을 수주해야 했지요. 그렇게 6개월, 1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우리는 완전히 광고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혀 원치 않았는데도 말이죠.”

서비스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버티려니 용역개발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용역 의뢰가 많아지면 인력이 더 필요해지고, 그래서 인력을 충원하면 늘어난 인력만큼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돈이 들어오는 곳은 또 용역개발 뿐이다. 그래서 다시 용역을 더 받아야 하고 그만큼 인력이 더 필요해진다.

그나마 위자드웍스는 용역 의뢰가 많은 사례다. 대부분은 용역 프로젝트 수주도 넉넉하지 않다. 충분히 받고 싶지만, 많이 받는다고 좋은 건 아니다. 위 사례처럼 될 테니 말이다. 아마, 그렇게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벤처기업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자드웍스같은 고민은 계속 될 지도 모른다.

“웹서비스를 만들어 런칭하고 이와 관련된 기술을 축적하며 점차 이용자를 모아 매출을 만들어 가는 B2C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지향해 왔던 우리는, 생존을 꽤하다보니 어느새 업무의 8할이 광고주 미팅이나 아이디어 회의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회사에는 AE라는 생소한 직군도 생겼고, 이제는 그 많은 멤버들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영업도 뛰기 시작했지요. 기업부설연구소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질만큼 연구보다는 생산에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고객을 만나고 위젯을 만들다 또 스마트폰이 뜬다 하여 앱도 만들고 하다보니 어느새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용역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업종전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기회가 나타날 수도 있고, 몰랐던 곳이 기회의 땅이 되어 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용역개발이란 우리 현실에서 돈되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결코 제대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겨우겨우 근근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정도다. 대기업과 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작은 벤터기업들에게 처음부터 제대로 돈주고 서비스를 의뢰하지 않는다. “이제 막 시작한 회사인데, 우리도 위험부담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일단 넣어봐라. 혹시 잘 되면, 너희도 우리를 레퍼런스로 앞세울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 대개는 이런 식이다.

그렇게 해놓고 아이디어만 쏙 빼서 자기들이 직접 개발해버리는 사례도 부지기수이니,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은 건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지도 모른다.

위자드웍스는 어찌보면 행복한 편이다. 그나마 앞서 출발한 덕분에 중간에 투자도 받고 이름도 알렸고, 용역개발을 포기하자고 마음먹을 만큼 여유(?)도 있으니 말이다. 기왕 새출발을 다짐했다니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다른 벤처기업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소셜시대에도 어김없는 우리 벤처기업들의 서글픈 현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 한 벤처기업의 진솔한 채용공고를 곱씹게 된 배경이자 결론이다. 이는 채용공고에 실린 글이 너무도 진솔했기에 가능한 결론이었다. 진솔한 감동이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이 채용공고에서 읽을 수 있는 진짜 결론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설득하는 최고의 무기는 솔직함이다.’

ssanba@bloter.net

대표블로터. 장래희망 촌놈. ssanba@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