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게임 다운로드 서비스에 국내 규제 ‘무장해제’

2011.10.09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서비스를 요청하는 사용자는 진화하는데, 업체와 사용자를 통제하는 법안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다. 시대에 뒤처진 규제 때문에 업계가 몸살을 앓는가 하면, 정부의 규제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게임업계에선 이 같은 정부 당국의 늑장 대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 사전등급심의제도가 대표적이다.

게임을 싼값에 사기 위해 용산 골목을 헤매던 시절은 옛말이다.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입하고, 구매한 게임을 내려받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덕분이다. 게임전문 시장조사기관 DFC 인텔리전스 자료를 보면, 게임 내려받기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08년에 이미 오프라인 패키지 게임 시장 규모를 뛰어넘었다. 2015년엔 전체 230억달러 규모의 게임 시장에서 패키지 판매 시장은 25억달러 미만에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온라인 내려받기 서비스가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온라인 게임 내려받기 플랫폼은 밸브가 서비스하고 있는 ‘스팀’이 대표적이다. 스팀은 2001년 처음 등장했다. 게임 참가자끼리 스팀을 통해 음성채팅을 하거나 최신 판올림 게임을 스팀을 통해 바로 판올림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을 보강했다. 스팀은 이 같은 장점 덕분에 전세계 게임업체의 게임을 판매하는 유통상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한국형 부분유료화 방식을 스팀에 도입하기도 했다. 국내 온라인게임 서비스 지역을 해외로 넓히는 교량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팀뿐이랴. EA 스튜디오는 2011년 6월, 스팀과 비슷한 온라인게임 내려받기 플랫폼 ‘EA 오리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EA 오리진도 스팀과 마찬가지로 EA의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게임 업체의 게임을 유통하는 통로로 성장하고 있다. 1인칭슈팅게임(FPS) ‘배틀필드3’를 EA 오리진으로 독점 유통하는가 하면, PC용 게임뿐만 아니라 X박스 360이나 플레이스테이션 등 다양한 콘솔 게임의 판로가 됐다.

에릭 브라운 EA 대표가 지난 9월9일, 투자자 발표에서 EA 오리진 사용자가 390만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세계 3천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스팀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EA 오리진 서비스는 출범 3개월만에 390만명의 회원을 끌어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리진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다.

밸브의 ‘스팀’

EA의 ‘오리진’

해외 게임 서비스 양상은 이같이 빠르게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데, 국내 규정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가 게임에 대해 일일이 사전에 심의할 수 없게 됐다. 스팀이나 오리진과 같은 서비스는 한국만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전세계에 동시에 똑같은 콘텐츠를 배포한다는 점도 문제다. 해외 사업자에 대해 쉽사리 국내법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국내 사용자는 이 같은 온라인게임 내려받기 플랫폼을 통해 국내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고, 게임위의 사전 심의 규정은 유명무실해졌다. 분명히 국내 사용자가 구입해 즐기는 게임이긴 하지만, 기존처럼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하는 방식과는 모양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위는 모니터링을 통해 국내에 서비스되는 게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사용자를 위한 결제 페이지를 따로 마련하거나게임을 한글화해서 서비스하는 경우 등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국내법이 국외까지 실효성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서비스가 과연 국내에 서비스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한 후 문제가 되는 서비스에 대해 조처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위의 방어가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스팀 접속 지역을 미국 등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해외 거주자 계정으로 게임을 구입해 국내 사용자에게 선물해주는 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A 오리진은 사용자가 직접 게임 접속 지역을 선택할 순 없다. 접속한 지역의 IP를 분석해 나라를 판별한다. 하지만 프록시 서버를 해외로 우회하는 방법 등도 자주 이용되는 편법 중 하나다.

게임위 관계자는 “사용자가 편법을 이용한다면 게임위의 사전 등급 심의 절차는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위는 손을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임위가 시행하고 있는 게임 사전등급심의제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제에 허점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우리는 우리대로 규제를 적용할 테니 이를 피해 게임을 즐기려는 사용자는 그렇게 하라’라는 식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현실에 맞도록 규제를 보강하든지, 규제를 완화해 해외와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sideway@bloter.net

기술을 이야기하지만, 사람을 생각합니다. [트위터] @Sideway_s, [페이스북] facebook.com/sideways86, [구글+] gplus.to/sideway [e메일] sidewa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