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모르는 공무원, 믿지 못할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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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끄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름하여 “100인의 공무원에게 ‘참여와 소통의 정부 2.0’ 선물하기”이다. ‘참여와 소통의 정부 2.0’은 호주의 정부2.0 태스크포스가 2010년에 호주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번역한 책이다.

정부 2.0(Government 2.0)에 관심이 많은 CC코리아의 자원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20여명이 번역에 참여해 책으로 정식 출판됐고, 동시에 온라인에도 공개됐다. 물론 저작자 표시의 CCL이 적용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정부2.0을 꾸준히 추진해온 호주의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출간이 반갑지만, 더 의미있는 건 참여와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참여라는 정부2.0의 이념이 작게나마 실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100인의 공무원에게 선물하기 캠페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이 책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무원들에게 책을 선물로 보내자는 취지이다. 필요한 사람은 직접 사보거나 온라인에서 내려받아 볼 수 있지만, 참여와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전달하자는 의미에서 기획됐다. 더 나아가 좀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위해 책을 보내기 위한 비용을 소셜 펀딩으로 조달하고자 했다. 소설 펀딩 서비스에 캠페인 내용을 소개하고 공감하는 분들의 소중한 기부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마감기한 내에 목표 금액을 달성해서 100인의 공무원에게 배송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캠페인을 진행하던 중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반 국민들에게서 나온 반응이었는데, 공무원이 원하면 자신들이 알아서 책을 구해보면 되지 왜 우리들이 비용을 들여 책을 보내냐는 것이다. 요컨대,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드는데 뭐 이쁘다고 선물을 하냐는 거다. 캠페인이 너무 착해 보인다는 평도 나왔다. 좀 더 신랄하게 공무원들의 무지와 무능을 비꼬면서 책을 보내자고 했으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다른 반응은 공무원 쪽에서 나왔다. 이 캠페인에 쓰인 소개글을 본 몇몇 공무원들은 거부감을 표시했다. 공무원의 입장에서 ‘공무원을 가르치자’라는 논조가 거슬린다면서 홍보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실 내용을 보면 공무원을 가르치자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고 정말 ‘착하게’ 작성됐는데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안 그랬던 것 같다.

이 두가지 상반된 반응은 캠페인을 홍보하던 자원활동가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과 국민 양쪽에 걸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반응이었다. 여태껏 들어본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중 대부분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공무원들은 뭘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고, 꽉 막히고,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공무원들의 일반 국민에 대한 불만은 이렇게 정리된다. “국민들은 못 믿겠다.” 어떤 사고를 칠 지 모르고, 이기적이고, 계도와 규제가 필요하고, 무책임하다는 거다. 좀 과장한다면 이 두 가지 관념이 국민과 공무원이 서로 상대방에 갖고 있는 보통의 시각이다.

캠페인 중에 나타난 두 가지 반응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생각된다. 세상물정 모르고 꽉 막힌 공무원들에게 뭐 하려고 애써 돈 들여가며 책을 보내느냐는 얘기와, 계도와 규제가 필요한 국민들이 어떻게 공무원들을 가르친다고 책을 보내냐는 반응이니까.

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진정한 참여와 소통을 위한 정부2.0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시각이 개선되지 않는 한 참여와 소통은 요원할 것이고 정부2.0은 실천돼봤자 형식적이고 공허한 마케팅 구호에 그칠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공무원들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멍청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지 않다. 물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고민이나 공부도 많이 하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속해 있는 국가조직의 태생적인 완고함과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정책방향, 공무원으로서의 처신의 제약으로 인해 유연한 반응이 어렵고 다소 보수적으로 되는 경향은 있지만, 많은 공무원들의 기본적 자질은 그렇지 않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불안한 사고뭉치들이 아니다. 각자 분야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역할과 행동의 룰을 알고 있고 계도나 규제 없이도 창의적인 발상과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진정한 사고뭉치와 사회체제를 불안하게 하는 문제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엄청난 잠재력과 사회 및 국가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서로의 신뢰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그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러한 잠재력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그건 국민들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못 만들어준 탓이다. 그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정부2.0이다. 국민들이 단지 규제나 계도의 대상 또는 잘 차려진 서비스로부터 혜택을 누리다가 가끔 불만을 터뜨리는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정부가 믿고 기회를 주면 참여와 소통의 능력을 발휘해서 창의적인 기여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들을 믿고 그러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꾸준한 신뢰를 갖고 국가를 위해 직접 봉사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고 그들이 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보를 제공하고 아이디어를 주며 그들이 마음껏 열린 정부를 시도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힘이 돼줘야 한다. 답답할지라도 질타가 아니라 격려를 보내야 하는 것이 정부2.0의 출발이다.

“100인의 공무원에게 ‘참여와 소통의 정부2.0’ 선물하기” 캠페인은 바로 그 점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라고 여겨진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책을 받는 공무원들이 함께 신뢰의 단서를 얻었으면 하는게 그 캠페인의 기획의도라고 나는 이해했다.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부는 제대로 전달이 안되거나 구석에 처박힐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공무원도 피드백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도 좀 아쉽기는 하겠지만 의미가 없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신뢰는 그렇게 금방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꾸준히 서로의 벽을 허물기 위해 애쓰다 보면 조금씩 변화는 있을 것이다.

서로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정부2.0이 추구하는 혁신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거창한 어젠다의 채택, 일부 공공정보의 개방, 법적·제도적 개선 , 화려한 컨퍼런스, 떠들썩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이 박쥐처럼 양쪽을 오가며 지켜볼 수 있었던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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