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로 그린 장애 없는 동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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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공간에선 대개 ‘김탕’ 또는 ‘김탕샘’으로 불린다. 사람들은 이따금 김태황(43)씨에게 묻는다. ‘정체가 무엇인가요?’ 대개는 ‘문화기획자’라고 대답한다. 사실, 이 단어를 썩 내켜하지는 않는다.

김태황씨가 홀트일산복지타운과 인연을 맺은 건 2008년께다. 국내 아무개 포털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던 무렵이었다. 우연찮게 연락이 닿은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연락이 왔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재활 프로그램을 맡아주면 어떻겠냐.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랬다.

“마침 경기도에서 제공하는 교육 지원 프로그램에도 선정됐어요. 홀트타운에 거주하는 장애인 12명을 대상으로 처음엔 사진 수업부터 했어요. 1년 정도 함께 공부하면서 사진도 찍고 단편영화까지 만들었죠. 참가하는 장애인분들도 굉장히 만족하고, 외부 평가도 꽤 괜찮았어요.”

김태황씨가 진행한 사진 강좌는 2010년 경기도 전체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진행한 평가에서 대상을 탔다. 경기도청은 프로그램을 1년 더 연장할 것을 권유했지만, 김태황씨는 생각을 바꿨다. “비슷한 강좌를 1년 더 연장하는 건 저나 수업받는 학생분들 모두에게 의미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동화책 e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새 프로그램으로 지원 신청을 했는데, 안 되더라도 그냥 우리끼리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선정됐어요. 운이 좋았나봐요, 하하.”

처음엔 드로잉 강좌부터 시작했다. 조그만 드로잉북을 사서 돌렸다. 노트값을 아낄 생각은 없었다. 종이 질감이 좋으면, 아무래도 첫 만남부터 그림 수업에 흥미를 좀 더 느끼지 않을까. 그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수업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진행하는 수업은 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후딱 지나갔다. 그렇게 6개월여 흘렀을 무렵이었다.

“당시 제가 애플 아이패드를 쓰고 있었는데요. 수업시간에 몇 번 가져간 적이 있는데, 마우스를 잘 못 다루는 분들이 아이패드 같은 터치 기반 태블릿을 능숙하게 다루시는 거에요. 그래서 아이패드에 그림 그리는 앱을 깔아드렸는데, 너무 훌륭하게 그림을 그리시더군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굳이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었다. 12명 학생을 2개 팀으로 나누고 아이패드2를 팀마다 1대씩 샀다. 레이어를 나눠 캐릭터를 넣고 색상을 바로 입히는 일이 태블릿 한 대로 손쉽게 해결됐다. 작업은 본격 속도를 냈다.

달콤한 목욕‘과 ‘행복한 우산마을‘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장애인 학생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조금씩 보태 음성을 넣었다. 무엇보다 스토리를 입히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인지장애인들은 대개 판타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들은 특정 대상이 실재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법을 평생 배우며 살아갑니다. 사실과 허위를 엄격히 구분하는 게 이 분들에겐 중요하죠. 그러니 메타포나 판타지가 들어간 줄거리에 대해선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곧바로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 학생분들의 실제 생활을 적절히 스토리에 녹여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달콤한 목욕’은 이런 어려움을 넘어 탄생한 동화다.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마을에 가뭄이 들었어요. 아이들 셋은 물 대신 사이다로 목욕을 했습니다. 몸이 끈적거리겠죠.” 여기부터는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이 홀트타운 안에서 겪은 개인 체험들을 녹였다. “개를 10마리 가량 키웠던 분은 ‘사이다가 달콤하니, 개가 핥아먹을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는 두루마리 휴지로 몸을 닦아보지만, 되레 휴지가 달라붙어 미이라처럼 되고 말았죠. 하지만 해가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고, 그날 밤 긴 가뭄을 보내는 시원한 비가 내립니다.”

‘행복한 우산마을’도 ‘달콤한 목욕’ 못지않게 기발하고 유쾌하면서 따뜻한 감성이 녹아들어 있다. 주인공은 ‘복실이’다. 동화책 제작 수업 때 실제로 늘 함께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우산마을에서 복실이는 우산을 전달해주는 배달부다. 이 마을 주민들은 우산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휠체어를 탄 행주는 우산을 짚어야 일어날 수 있다. 높은 언덕에 사는 복남이는 우산을 타고 날아 내려와야 한다.

“어느 날 복실이가 많이 아파 우산을 가져다주지 못하게 됐어요. 주민들은 당황했죠. 그래서 평소 복실이가 가져다주는 우산을 집에 쌓아두고 있는 동현이네에 매일밤 모여 우산을 가져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밤에 모이다보니 배가 고팠어요. 함께 모여 음식을 해먹었죠. 그러다보니 매일매일 잔치가 열렸고, 우산마을 주민들 모두가 우산 없이도 행복해졌습니다.”

김태황씨와 홀트타운 장애인 학생 12명은 이렇게 만든 동화책 e북을 지난 10월초 일산 정글북아트갤러리에 전시했다. 내친김에 애플 앱스토어에도 등록했다. 책 두 권 모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저작자 표시(BY) 조건만 지키면 누구나 자유롭게 쓰거나 널리 돌려볼 수 있게 했다. 아이패드가 없는 이용자라도 책 읽는 데는 문제 없다. PC에서 디지털 퍼블리싱 플랫폼 ‘이슈‘로 접속해 ‘행복한 우산마을‘과 ‘달콤한 목욕‘을 만나볼 수 있으니까.

김태황씨와 함게 교육을 진행한 씽크(27)는 완성된 동화책보다 제작 과정이 ‘진짜 수업’이라고 말한다. “수업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학생분들께는 즐거운 일처럼 보였어요. 3년째 진행하다보니, 학생분들 각자 역할도 자연스레 나뉘더군요. 수업 시간에 지각한 학생들만 야단치는 분이 따로 계실 정도에요. 정식 강좌는 주1회 15주였지만, 실제 작업하고 전시하는 기간까지 합하면 훨씬 긴 시간이었습니다.”

김태황씨와 씽크는 2012년, 또 다른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팟캐스팅’에 도전할 생각이다. “홀트타운 안에는 수많은 얘기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삶이 들어 있어요. 그 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음성으로 기록해보려 합니다. 말하자면 홀트타운의 일상을 팟캐스팅으로 제작하는 것이죠. 팟캐스팅은 소통 범위가 넓고, 한 번 남겨두면 오래 보존되잖아요. 지원 사업에 선정 안 되면 어떡하냐고요? 그냥 우리끼리 해보려고요, 하하.”

▲홀트일산복지타운 장애인 동화책 e북 수업을 진행한 김태황(왼쪽)씨와 씽크.

▲학생 12명이 2개팀으로 나뉘어 팀별로 아이패드2와 ‘브러쉬’ 앱으로 작업을 했다.

▲수업시간. 책상 위에 앉은 강아지는 ‘행복한 우산마을’에 등장하는 ‘복실이’다.

▲10월초 일산 정글북아트갤러리에서 열린 동화책 제작발표회.

▲사진전시회.

▲’달콤한 목욕’

▲’행복한 우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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