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가 화제다. 가장 큰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아버지의 패도정치를 넘어 왕도정치를 펼치고자 고뇌하는, 대왕이기 이전의 인간 이도로서 세종의 모습을 부각시킨 한석규의 호연이다. 여기에 조선 건국의 실질적 아버지인 삼봉 정도전의 재상 중심 국가 제도를 지지하는 가공의 결사 조직 밀본과 ‘훈민정음 창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종의 정치적 개혁이 맞부딪치는 장면이 매회 대두되며 드라마의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물론, 이처럼 극적인 요소들로만 인해서 드라마 인기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요인도 있다. 돌아온 세종의 뿌리 깊은 인기는 세종의 고담준론에 그치지 않고 민생의 발전을 위해 언행일치로 헌신하는 모습이 각종 국정 현안을 두고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 의회 정치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건국초 대국인 명의 지지가 필요한 줄 알면서도 백성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정치적 모험까지 감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도 위대한 지도자를 가졌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세종에게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표면적 카리스마만이 아니다. 과거를 살려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드라마의 감동을 넘어서 그의 철학, 내적인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비록 시민이 다스린다는 ‘민치’의 개념은 없었으나, 세종은 권력의 근본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본’은 잘 이해했다. 백성의 삶이 나아지고 백성이 현명해야 나라가 부강해질 뿐 아니라, 덕과 질서가 바로 잡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가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바로 훈민정음이다. 국민의 ‘보편적’ 앎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문자인 한글을 만드는 것,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깨달은 바의 현실적 적용점을 찾기 위해 다음 질문을 생각해보자. 이 성군이 보았다면 21세기의 한국은 어떻게 비칠까. 예를 들어 FTA 괴담론, 한미 FTA에 관련된 공공요금, 의료비용 등에 관한 사항이 본래 협정문에서 결정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SNS를 통해 왜곡되어 전달되고 확대되고 있다는 설은 어떻게 평가될까.
이 같은 소위 트위터 여론의 문제에 대해 세종은 먼저 그들이 왜 그와 같은 의견을 분출하는지,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평소 매사 백성의 입장에 서서 사물의 이치를 따지고자 하는 성품을 생각할 때, 이 같은 사유의 궤적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는 흔히 괴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역설하는 것처럼 그는 국민들이 ‘감성적이다’라는 것을 ‘비이성적이다’라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적이라 판정한다 할지라도, 그처럼 감성적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무엇인지를 헤아려보려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종은 평균적인 국민의 이해력과 관련 문서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감안할 때, 정부에서 공개한 FTA 협정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수고를 할 사람이 국민 중 과연 몇 %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세종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현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네르바를 구금하고 SNS를 심의한다고 해서 공론이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뜻한다. 괴담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그것은 순전히 국민들이 감성적이어서 괴담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이 너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난해하고 방대한 자료를 손수 찾고, 보고, 알기엔 그들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분주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FTA 괴담 논의에서 과연 FTA 괴담인 존재하느냐, 거기에 SNS가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느냐만 핵심은 아니다. 그 같은 2차 정보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원자료가 얼마나 친절한지, 불친절한지가 중요하다. 만약 그 자료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은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에 가깝다면 그들은 그 원자료의 정당한 해석이라 주장하는 각종 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정보들이 편향되어 있다면 여론은 엄정한 사실을 떠나 산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 부처 중에 홈페이지 없는 곳은 거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SNS, 블로그 기자단까지 운영하는 곳도 많다. 소통의 시도는 좋다. 그러나 그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정부 홈페이지가 장관 인사와 그의 일정을 공시하기 위한 공간만은 아니란 점이다. 국민이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한 눈에, 쉽게 알기 위한 곳이 되어야지, 그런 의지를 처음부터 꺾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종이 한자가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던 것처럼,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도 쉽게 국가 정보를 알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정보 접근성’이라는 첫 단추부터 이제 제대로 달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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