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②] ‘미키마우스 보호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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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전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표적인 만화주인공이자 미국 캐릭터산업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닮은점은 또 있다. 자칫 공동재산이 될 뻔한 ‘위기’를 8년전에 극적으로 넘겼다는 점이다.

1998년은 미국의 저작권 보호법안인 ‘소니 보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이 통과된 해다. 미국 하원의원 소니 보노가 1995년 처음 발의한 이 법안의 핵심은 자국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시킨 데 있다. 이전까지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저작자 사후 50년’이었지만, 소니 보노 법안이 통과되면서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늘어났다.

미국이 소니 보노 법안을 통과시키며 내세운 명분은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에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입법하도록 하는 지침을 1993년 통과시켰다. 미국은 눈이 번쩍 뜨였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게 되면 해당국들과 교역시 자국이 불이익을 본다는 명분을 앞세워 유럽연합 수준인 ‘사후 70년’으로 법안을 개정하는 움직임에 들어갔고, 이것이 5년 뒤 소니 보노 법안으로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미국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국 디즈니의 초기 미키마우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기존 저작권법에 따르면 2004년 이후 단계적으로 저작권이 소멸될 예정이었다. 말하자면 2004년 이후로는 디즈니에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상품이나 캐릭터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니 보노 법안 통과로 미키마우스 캐릭터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2024년까지 늘어났다. 소니 보노 법안을 가리켜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문학작품으로 눈을 돌리면 법안의 효력은 더욱 커진다.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곰돌이 푸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인 밀른이 1956년 사망하면서 그의 저서들 또한 50년 뒤인 2006년 자유롭게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이 법안으로 2026년까지 저작권이 연장됐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로 유명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저작권도 2010년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2030년으로 수명을 연장했다.

이와 달리 국내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사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협약에 따른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저작권 관련 국제협정은 베른조약이다. 1886년 스위스 베른에서 국제적인 저작권 상호 보호를 위해 체결된 이 협약의 핵심은 ‘보호기간 상호주의’다. 즉 상대국 보호기간이 자기 나라 기간보다 짧을 경우 짧은 쪽의 기간만큼만 보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적용하면 저작권 보호기간이 70년인 미국의 저작물이라 할 지라도 한국에서는 50년만 보호된다.

베른조약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사후 50년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영화·사진·응용미술에 관해서는 각국의 자유결정에 맡기도록 했다. 현재 베른조약에는 한국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스웨덴, 한국 등 150여개국이 가입해 있다.

미국은 베른조약에 가입해 있지 않다가 자국 문화수출상품이 늘어나자 얼굴을 바꾼다. 베른조약을 기초로 삼고 특허나 상표 등 다른 지적재산권을 포괄한 ‘지적재산권보호협정’(TRIPS)을 꺼내들고 다른 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베른조약을 바꿔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못박으면 되지만, 국제협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FTA를 통해 각개격파에 나서는 것”이라고 미국의 의도를 꼬집었다.

미국은 이미 싱가포르나 호주 등과 FTA 협상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요구해 관철시킨 바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 정책보고서’도 한국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미국 수준으로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에서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국내 창작물도 똑같이 보호기간이 20년 연장되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의 수치를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올해 5월 발간한 ‘문화산업백서 2005’를 보자. 이에 따르면, 전세계 문화콘텐츠산업의 40%는 미국 차지다. 미국 문화콘텐츠 기업이 보유한 캐릭터 라이선스 수입은 상위 10개만 따져도 연간 252억달러로, 우리 돈으로 24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1, 2위가 바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우다. 디즈니는 2004년 미키마우스와 그 형제들의 캐릭터를 전세계에 팔아 1년에 58억달러, 당시 환율로 6조900억원을 챙겼다. 2위인 곰돌이 푸우는 이보다 조금 적은 58억달러(5조8800억원)을 전세계에서 거둬들였다. 같은 해 한국영화 전체 매출액은 2850여억원.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한국영화시장의 20배와 맞먹는 셈이다.

세계은행은 2002년 내놓은 ‘지적재산권협정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보고서에서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완전히 이행했을 때 미국은 해마다 191억달러의 이득을 보지만, 한국은 153억달러의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26개 비교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큰 손실액으로 멕시코의 6배, 중국의 3배 규모다. 해마다 SK텔레콤같은 기업을 미국에 하나씩 넘겨주는 꼴이다. 한미 FAT의 지적재산권 협상은 외교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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