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길의책] 깨어나라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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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 해가 가는 즈음에 터진 한 중학생의 자살소식은 우리 교육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머니로부터 시험 성적 압박을 계속 받아 온 학생은 어머니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과 교사간 실랑이는 휴대폰으로 고스란히 학생들에 의해 촬영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다. IT 발전은 ‘좋은 뉴스’를 빠르게 접하며 기뻐할 수 있지만 불편한 소식들도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대학등록금 인상이 매년 이어지면서 가계살림에 경제적 부담을 안겨준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마련을 한다고 나서지만 해결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몰린다. 지난해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촛불시위는 대학 등록금의 현주소를 우리 사회에 알려주었다. 정치권이나 교육행정 당국이 대비책을 발표하고 나섰지만 학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눈치만 살핀다.

대학별 2012년 등록금 수준을 예년에 맞추거나 낮춰 책정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별반 차이 없는 정책으로 ‘불씨’를 안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은 등록금 인하에 대한 총학생회 요구에 대해 교재 지원비 형식으로 한 학기 4만원의 도서상품권을 전체 학생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의 대학에 고3 학생은 그 문을 들어서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 2012년 수능은 끝났고 수능 정책은 또 바뀌었다. 왜 이런 일들은 매년 되풀이되는 걸까.

지난해 국내에 출판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저항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강조하고 불의에 대한 분노 표출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주목을 끌었다. 참고 견디라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사회의 불균형을 깨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만큼 그 힘은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 왜 이런 한계를 계속 안고 사는 걸까.

정치 사회적으로 2012년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을 총선을 통해 변화하고자 너도 나도  말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에서도 몸을 빼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지역구 의원의 의정보고 문자메시지도 지난 마지막 날에 한 통 들어왔다. 이런 현실을 바꾸자고 하지만 정작 투표소 안에 들어가서는 마음에 달라지는 걸까. 생각하는 것과 투표결과는 다르다. 무엇을 보고 투표를 하는 걸까. 불편한 것들을 고치겠다고 나서지만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무기력 때문이다.

이에 그 변화를 위한 속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명 엘리트주의, ‘반대편의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앞선다. 더 앞서서 나가려면 해결될 수 있을텐데 왜 그렇지 못한 걸까. 그것은 비판적 사고가 주는 힘을 안 엘리트 사회가 원천적으로 그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정보를 차단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이끌어낸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한다. 최근 언론사들에게 종편을 허용해 그 길을 더 크게 내주었다.

“텔레비전은 고독과 감각 상실을 유발해서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두뇌 상태에 영향을 미쳐 비판적 사고를 어렵게 한다. 텔레비전은 대중을 조용하고 유순하게 만든다. 자유 시간의 대부분을 고독 속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보내는 사람은 자신의 인간성이나 자아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사회와 삶에 대해 권위주의 체제가 주입하는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디어의 발달은 소통의 속도를 빠르게 한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문제점들도 끊이지 않고 노출되고 있다. 소통이 너무 잘 돼 오히려 ‘불통’을 만들고 있다. 텔레비전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 수록 소득수준의 차이도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시청률 조사기관은 지난 2011년 한 해 가구당 하루평균 시청시간이 7시간48분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텔레비전은 생각의 기회도 주지만 일방적인 전달로 생각을 방해하고 경제적인 차이까지 만든다.

왜 불편한 현실은 반복되는가

이 책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한다. 미디어들이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사람들에게 시청에 대한 통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그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힘’을 왜 끌어다 써야 하는지를 말한다. 엘리트주의가 팽배한 기업의 구조, 사회 현상에 대해서, 미디어의 변화에 대해서,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와 등록금의 현실 등 교육현장을 짚어보고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상황에 빠져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미국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놓고 있지만 장소를 우리가 사는 곳으로옮겨와 대치하고 봐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상황임을 느낀다. 교육현장에 대한 부분은 더욱 와 닿는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으로 인해 빚을 지고 살고, 그 빚을 안고 사회로 나오면서 빚쟁이로 살아간다. 경쟁사회를 뚫고 들어온 대학이지만 또 다시 경쟁을 한다. 이같은 무한 반복의 ‘트랙’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 중퇴를 선언한 학생도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계약 노예들처럼 날마다 신체적 모욕을 감내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오늘날 미국의 학자금 대출은 식민지 시대의 노예계약보다 더 오랫동안 채무자에게 짐을 지운다.”

교육현장의 불편한 이야기들은 사회로까지 이어져 사람들을 더욱 힘겨운 삶으로 몰아간다. 살아가려 몸부림 치지만 더 좋아지기보다 나뻐지는 현실을 사람들은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학교의 교육은 위계질서를 가르치는 데 집중한다. 그 사이에 학생들의 흥미는 사라진다. 체제순응적인 학생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만들언진 것을 저자는 ‘학습된 무력감’으로 표현한다.

엘리트층은 기업이익을 우선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반대하는 세력들을 망가뜨리는 전략들을 펼치는데 그것이 IT의 기술과 텔레비전 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방안들이 동원된다. 광고와 선전을 통한 소비전략도 그 일환이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을 파편화한다. 에너지를 빼내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밀리지 않기 위해 노조의 활동을 막고 저지하려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임상심리 전문가로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살펴보고 사람들이 왜 저항하지 못하는지 짚어본다. 저항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위치를 개선시킨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그러한 행동이 무기력감만 더 들게 만들고 그러한 시위를 한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든다. 더 물러서지 않기위한 방안들은 무엇인지, 왜 그러해야 하는가를 사례와 상황들을 갖고 전한다.

자존감을 회복하자

결국은 에너지를 되찾는 것이다. 전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기이다. 경기에 나온 선수들에게도 팀 분위기만큼 승리를 좌우하는 것이 없다. 팀의 사기는 경기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지는 경기라도 다음 경기를 약속할 수 있다.

다른 것을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것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이다. 그럼에도 세세한 부분의 차이로 갈라서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어쩔 수 없다’라든가 ‘뭐가 되겠나’ 하는 식으로 물러선다면 기회는 더 멀어진다. 저자는 이를 두고 ‘숙명론으로부터의 해방’이라 일컫는다.

학교는 좋은 스승이 있어야 하며,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가 아이들의 인성을 길러줘야 하는데, 이같은 것들이 무너졌다. 쉽게 풀어 쓸 것들도 어렵게 표현함으로 해서 사람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주눅들게 한다. 그럴수록 차이로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통점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의 무력감이 어디서 오는가를 짚어보면서 사회 전반의 일들을 따져봤다. 잃어버린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는 것에서 그 길을 찾는다. 또 하나는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적 발전을 이루어낼 때나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술을 익힐 때 자존감과 활력을 얻는다. 가치 있는 기술을 익히거나 개인적 영역에서 발전하려면 자기규율이 필요하다. 자기규율이란 자기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일시적인 기분을 이겨내는 것이다.”

원하는 삶을 영위하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통이 없다면 기쁨도 알 수 없다. 삶의 크고작은 고난은 즐거움을 알게 해준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활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이 필요한 때이다. 그로 인해 교사를 존경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면 그들도 가르치는 사람을 더 존경하게 된다. 교사가 존경을 받으려면 학생들의 고유한 흥미를 존중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넓혀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 자신이 무언가를 배우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소비중심주의 사회 속 현실을 바라보자. 어떤가. 돈이 모든 현실을 고쳐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노동자나 경영자나 서로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해 다툰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우리에게 잃어버린 10년, 이제 깨어나 일어나야 할 때라고 외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새해를 시작하며, 2012년 무엇을 해야 할지 염려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읽어보며 삶의 방향을 조정해 볼 일이다.

깨어나라 일어나라
브루스 레빈
베이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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