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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크레디트와 IT기업의 사회적 책임

2006.10.25

무하마드 유누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니 사회책임투자(SRI)니 하는 말들이 유행입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도 같은 선상에서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겠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기존 제도권 금융권에서 대출이나 자금지원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적은 돈이지만 담보 없이 대출해 주는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입니다. 말하자면 ‘금융의 사회적 책임’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곳은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입니다. 제가 앞서 몸담았던 매체이기도 합니다.

<이코노미21>은 ‘2005 UN이 정한 세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를 앞두고 2004년 11월, 마이크로크레디트 특집호(225호)를 냈습니다. 주간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크로크레디트 관련 기사로 채운 것인데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개념조차 생소하던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알리고 관련 사례를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 최우성 편집장(현 한겨레 기자)과 이경숙 기자(현 머니투데이 기자)가 주축이 돼 몇 달 전부터 야심찬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가난한 회사인지라 취재비를 감당하기가 만만찮았는데요. 다행히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취지와 가능성에 공감한 국내의 한 금융기관이 후원을 해준 덕분에 해외 취재가 가능했습니다. 저도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운 좋게(!) 도우미로 끼었는데요. 그 덕분에 좋은 일에 쓰이는 돈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정의롭게 돈을 쓰고도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배웠습니다.

이런 착한 일을 하는 기관은 전세계 곳곳에 꽤 퍼져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비롯해 벨기에의 크레달, 이탈리아의 윤리은행, 미국의 ACCION과 프랑스의 ADIE 등이 대표적입니다. 국제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연대인 INAISE와 전문가 집단인 SOFI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도 2003년 2월 사회연대은행의 발족을 시작으로 신나는조합, 아름다운 기금, 창원지역 사회복지은행 등의 마이크로크레디크 기관이 적게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도 없이 돈을 주면 망하지 않겠냐고요?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대표적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그라민은행의 대출 회수율은 무려 99%에 이릅니다. 국내 일반 은행의 영세 자영업자 대출 채권 회수율이 50%대인 점을 고려하면 실로 대단한 수준입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사람들은 자립을 위해 이를 악물고 일을 하고 돈을 갚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마이크로크레디트가 금융권의 ‘블루오션’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마이크로크레디트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얘기죠. 대출관리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씨티은행은 지난 2004년 8월 마이크로크레디트 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부문을 출범시켰습니다. 도이치방크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과 손잡고 기술지원과 금융상품 제공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돈을 내주는 것도 아닙니다. 대출을 결정하기 이전에 창업 계획을 준비 단계부터 꼼꼼히 심사하는 것은 물론, 대출 이후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줍니다. 주변 기관과 연계해 기술교육이나 컨설팅도 병행합니다. 소액 대출자의 성공적인 자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죠.

이처럼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목적은 일회적인 ‘적선’이 아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있습니다. 생선 대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죠. 이를 이경숙 기자는 “빵 대신 빵틀을!”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하더군요.

IT기업의 사회적 책임(IT-CSR)에 대해 새삼 생각해봅니다. IT기업들이 이 사회에서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의탁 노인들에게 쌀을 배달하는 일 아니면 정기적으로 한강을 청소하는 일? 아니면 현찰이 두둑한 대기업처럼 거액을 선심쓰듯 내놓는 것일까요? 물론 모두가 훌륭하고 유용한 사회공헌활동입니다. 이런 행위들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IT기업이라면 좀더 ‘옷걸이에 맞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네 IT기업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보다 나은 상태로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 말입니다. 말하자면 빵을 던져주는 대신 빵틀을 만들도록 제 위치에서 손을 거드는 것이죠. 블로터닷넷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볼 작정입니다.

이와 별도로 마이크로크레디트에 관해 좀더 상세히 알고픈 독자는 이경숙 기자의 블로그 深謀遠慮(blog.naver.com/nwijo)를 방문하셔도 좋겠습니다. 이경숙 기자는 국내 기자들 중 적어도 마이크로크레디트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쿨머니’ 시리즈도 그의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방문했더니, 지금도 미국과 유럽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해외 마이크로크레디트 관련 취재에 열중하고 있군요. 자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열정과 뚝심이 부럽고도 존경스럽습니다.

asadal@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