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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북스 저작도구: 통제는 혁신의 담보물인가

2012.01.26

애플이 최근 새로운 교육플랫폼을 공개했다. 전자책 및 문서뷰어인 아이북스(iBooks)를 업그레이드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종전의 아이튠즈 U(iTunes U)를 교육콘텐츠의 유통 허브로 확대하는 작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아이북스 저작도구(iBooks Author)이다.

아이북스 저작도구는 일종의 문서작성 및 편집 프로그램이자 출판도구로, 무료로 제공된다. 기존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페이지'(Page)나 프리젠테이션 저작도구인 ‘키노트'(Keynote)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전자책 제작에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미리 제공되는 템플릿을 이용해 쉽게 전자책을 만들 수 있고 이를 바로 아이패드로 보내 아이북스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아이튠스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아이북스 스토어로 발행해 판매가 가능하다. 마치 개발자들이 애플이 제공하는 iOS 개발도구(SDK)를 이용해 앱을 만든 다음 앱스토어를 통해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북스 저작도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교육 콘텐츠의 유용한 저작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제작과 발간, 판매까지 일련의 과정을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1인 출판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이 선보인 다른 프로젝트들과 마찬가지로 시장과 문화를 선도하는 혁신성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우려되는 바도 있으니, 애플의 폐쇄적인 수직 결합의 지향은 이번 경우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교육콘텐츠나 책의 저작을 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부터 유통채널, 이를 소비하는 최종 단말기까지 모두 자신들의 폐쇄적인 생태계로 포섭하려는 의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아이북스 저작도구는 오로지 맥 PC에서만 돌아가고, 유통은 아이튠즈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최종 소비도 아이패드가 주 타깃이며, 유료 배급은 애플이 통제한다. 앱스토어처럼 다른 개별 창작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있으나, 이 또한 냉정하게 말하면 외부의 역량을 끌어들여 자신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수입을 얻고자 하는 의도다. 애플은 홀로서기하다 윈도우와의 경쟁에서 밀렸던 과거의 교훈을 일부 응용(물론 이러한 사업모델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했고, 여전히 통제권은 확실히 행사한다.

앱스토어처럼 잘 튜닝된 일관된 프로세스와 관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매끄러움과 안정성은 이용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폐쇄적 수직결합이 초래할 수밖에 없는 지배력의 남용과 경직성은 오히려 미래의 혁신성을 제한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상이 교육 콘텐츠라면 더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다른 기업들의 반격이 이어지고 새로운 시도가 선보이겠지만 표준성, 호환성, 보편성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교육콘텐츠 분야에서는 애플과 같이 전세계적인 콘텐츠 생태계의 수직결합을 실현하고 있는 지배적인 글로벌 기업의 선점은 그 위력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아이북스 저작도구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가 어떤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살 때 흔히 소프트웨어 자체를 매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실질 내용은 라이선스, 즉 일정한 조건과 범위 내애서 이용허락을 얻는 것에 불과하다. 즉 소프트웨어가 수록된 CD를 사든 온라인에서 내려받든간에, 구입자가 취득하게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라는 저작물을 일정 범위내에서 사용할 수있는 라이선스이지 소프트웨어 자체에 대한 권리는 없다. 물론 CD에 수록된 제품을 사는 경우 그 CD라는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얻게 되지만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저작권자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주고 사더라도 설치할 수 있는 컴퓨터가 제한되기도 하고 가정용에 한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원리는 공짜로 풀린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권리자가 무형물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무한 복제 판매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이번 아이북스 저작도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료로 풀리긴 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은 여전히 애플에 있으므로, 이용자는 애플로부터 이용허락을 받아 사용하게 된다. 이를 위해 애플은 사용권 계약서를 사전에 작성해서 제시하고 위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이용하는 경우 그러한 사용권 계약에 동의한 것으로 의제하고 있다. (이 부분도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실제 프로그램 설치시에는 그러한 동의를 요구하는 절차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용권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들어가 있다.

우선 모두에 중요사항이라 하여

귀하가 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만든 어떤 책이나 기타 작품(이하 “작품”)과 관련하여 귀하가 요금을 청구하는 경우, 귀하는 그러한 작품을 Apple(예를 들어 iBookstore)을 통하여서만 판매하 거나 배포할 수 있고, 그러한 배포는 Apple과의 별도의 계약에 따르게 됩니다.

라는 문장이 강조되어 있고, 그 밑에 일반 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조항이 들어가 있다

B.귀하의 작품 배포.

본 사용권의 조건에 따라, 그리고 귀하가 본 사용권의 조건을 준수한다면, 귀하의 작품은 다음에 따라 배포될 수 있습니다. (i) 귀하의 작품이 무료로 제공되는 경우, 귀하는 모든 이용 가능한 수단으로 배포할 수 있습니다. (ii) 귀하의 작품이 유료로(어떤 유료화 제품이나 서비스의 부분으로서 제공되는 경우 포함) 제공 되는 경우, 귀하는 오직 Apple을 통하여서만 배포할 수 있고 그러한 배포는 다음의 제한과 조건에 따르게 됩니다. (a) 귀하는 귀하의 상업적 배포 전에 Apple(또는 Apple 계열사나 자회사)과 별도의 서면 계약을 체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b) Apple은 Apple의 재량으로 어떠한 이유로든 귀하의 작품을 배포하지 않을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Apple은 Apple이 귀하의 작품을 배포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포함하나 이에 제한 되지 않는 귀하가 귀하의 본 Apple 소프트웨어의 사용으로 인하여 발생시킬 수 있는 어떠한 경비, 비용, 손해, 손실(영업기회 상실이나 이익 상실을 포함하나 이에 제한되지 않음) 또는 기타 책임이 나 채무에 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이북스 저작도구로 만든 작품은 무료로 배포할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유료로 배포할 경우에는 반드시 애플을 통해서만 배포가 가능하다는 취지이다. 다시 말해 애플이 저작권을 갖는 프로그램 자체의 이용에 어떤 제한이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만든 저작물, 즉 이용자가 저작권을 갖는 결과물의 이용에 법률적 제한이 붙어 있는 셈이다. 비유하자면 파워 포인트로 만든 PPT 파일을 유상으로 배포할 수 없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이는 아주 이례적인 조항이다. 실제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라이선스에서 이러한 조항을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는 iOS 앱을 만들기 위한 Xcode의 경우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지만 Xcode로 만든 파일에 대해 이용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그 결과물을 iOS 기기에서 돌리거나 앱스토어에서 유통시키려면 애플이 제공하는 개발자 프로그램에 가입해 별개의 계약을 체결하고 기술적인 지원을 받아야 할 뿐이다.

이 이례적인 라이선스 조항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대략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우선, 이 라이선스 조항은 바람직하지 않은 법적 문제점 내지 관행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의 저작권법 법률관계에서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계약으로 법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계약을 통해 법에서 인정하는 저작권 제한 사항을 부인, 축소하거나 법이 인정하지 않는 권리를 확보하고자 한다. 이번 사안도 저작물에 대한 이용이 아니라 저작물을 도구로 해서 만든 결과물에 대한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작권자는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은 바 없음에도,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이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른 계약의 효력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기타 법률의 강행규정에 위반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효력이 있으나, 그 판단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이 건처럼 당사자 사이의 개별적인 법적 교섭에 따른 계약이 아니라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 조항에 대해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아용함으로써 동의한 것으로 의제되는 클릭형 라이선스의 경우는 더 어려운 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법적 유효성을 떠나서 이런 식의 계약 관계로 법이 규정하고 있는 틀을 넘어 당사자 사이의 법률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작권법이 유형적 재화와 본질을 달리하는 무형적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발전이라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논쟁 끝에 신중하게 설정해 놓은 권리 범위를 계약의 이름으로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주체가 자타가 공인하는 혁신의 선도자이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무료로 제공된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창작하고 법률에 의하더라도 자신만이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 저작물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없게 규정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둘째, 라이선스 조항 자체를 보더라도 제한되는 대상이 너무 넓다. 영리적인 배포가 제한되는 것은 아이북스 고유 포맷이고 PDF의 경우에는 해당 안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위 사용권 계약서는 제한 대상이 되는 작품을 “귀하가 본 소트프웨어를 사용하여 만든 어떤 책이나 기타 작품”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공식적인 법적 효력을 갖는 영어버전에 의하면 “for any book or other work you generate using this software”로 돼 있다. 아이북스의 고유 포맷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위 프로그램의 도움말 항목으로 가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즉 아이북스 저작도구는 작성된 작품을 아이북스 고유 포맷으로 발행하는 것 외에 이를 프린트로 출력하거나 PDF 또는 텍스트 파일로 보낼 수 있는데, 이처럼 책을 프린트하는 등 직접 배포하는 방법을 선택한 경우에도 반드시 사용권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북스 저작도구로 작성한 레이아웃이나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PDF는 물론 텍스트 파일까지 제한 대상에 들어간다고 해석된다. 사실 텍스트의 경우는 좀 애매하다. 콘텐츠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용자가 저작권을 가지므로 그 내용을 다른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자유일텐데, 모든 레이아웃이나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없어지고 텍스트 내용만 추출되는 경우에도 그러한 제한이 적용될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사용권 계약서는 의도적으로 제한 대상을 책으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작품을 포괄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문제이다. 아이북스 저작도구에 의한 저작은 다른 곳에서 내용을 작성한 후 이를 가져다 편집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페이지나 키노트 등에 뒤지지 않는 저작도구로서의 기능도 좋아서 그 안에서 바로 작성이 가능하고 많은 부분 그렇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직접 작성한 경우 실질적으로 구별이 가능한지를 떠나서 ‘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만든 기타 작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아이북스 고유 포맷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를 제한해야 할 논리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아이북스 자체가 일종의 출판사 내지 퍼블리셔의 기능을 하므로 그러한 배타적인 권한 행사가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 경우는 소프트웨어라는 도구에 대한 문제인데다가 설사 출판사로 비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개별적인 계약관계를 거쳐 출판사의 인력이 편집과 내용 수정, 디자인 등 모든 것을 담당해서 이루어지는 역할을 단지 소프트웨어 하나 던져준 걸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차피 아이북스 저작도구를 이용해서 작업을 해서 배포하는 경우 맥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또 아이패드 등의 단말기도 있어야 하므로 애플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의 앱스토어처럼 애플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경우 수익을 얻으려는 저작자 입장에서는 오지 말라고 해도 애플의 마켓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무료로 아이북스 저작도구를 푼 것도 결국 생태계를 조성해 선점하려는 취지라는 점도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정도까지 법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전자책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PDF의 경우까지 제한을 확대하는 것은 정당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게다가 위에서 본 것처럼 그보다 더 넓게 해석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셋째, 이 약정은 실효성 면에서도 부정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계약관계는 당사자 사이의 약정이기 때문에 당사자 아닌 제3자에는 효력이 없다. 내가 아이북스 저작도구로 만든 PDF를 제3자가 유상으로 배포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저작권자인 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는 유효하게 배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애플과의 계약상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라이선스 조항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내 작품에 ‘저작자표시’의 CCL(CC-BY)을 적용해 무료로 배포한 후 제3자가 이를 유료로 배포하면 어떻게 될까. CC-BY 라이선스는 유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럼 CC-BY를 적용한 나는 계약위반이 될까. 위 라이선스 조항 때문에 나의 저작물을 무상으로 배포하면서도 영리이용을 허락하는 옵션을 택할 수 없을까.

이처럼 실효성이 의심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자신이 대세적인 권리를 갖는 저작물 자체가 아닌 타인이 대세적인 권리를 갖는 결과물에 대한 법적 구속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저작권과 같이 콘텐츠 자체에 법적으로 인정되는 배타적 권리가 붙어다니지 않는 한 이를 쫓아다니면서 모든 이의 행위를 통제하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실효성에 있어 문제가 있는 계약은 괜한 ‘꼼수’만 유발하고 서로 불편한 상황만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제출된 작품의 배포 여부가 애플의 재량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앱스토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당하거나 애플의 이해관계 때문에 거절당했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사례 뿐만 아니라 앱의 유해성이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을 애플이 자의적으로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는 사례도 있다. 아이북스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앱에 비해 기술적인 문제나 시스템상의 문제보다는 표현이나 내용 규제의 면에서 거절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문제의 소지가 많다.

만약 국가가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만들고 사실상 그 시스템이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었을 때 그 위에서 배포되는 교육 콘텐츠에 대해 아무런 사전 기준도 없이 배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면 아마도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엄청났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도 국가에 비해 사기업의 개입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애플이 이러한 자의에 가까운 재량권을 갖는다고 천명하는데도 생각보다 그에 대한 반발이 적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마음에 안들면 애플이 아닌 다른 곳을 이용하거나 유료가 아닌 무료로 배포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 계속 강조하다시피, 시장을 선점하는 애플의 위력과 교육 콘텐츠의 표준성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유료 배포를 전제로 제작한 콘텐츠를 무료로 전환한다는 것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어차피 결과물에 대해서만 유료 배포가 제한되고 그 안에 담긴 콘텐츠에 대해서는 효력이 미치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 제작해서 판매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생각해볼 일이다. 앞서 본 바대로 어느 부분까지 이 라이선스 조항이 미치는지 애매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작성된 콘텐츠를 가져와 배열한 것이라 하더라도 몇백 페이지에 걸친 1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손을 봐야 하는 레이아웃, 디자인, 편집 등의 수고와 비용을 그냥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경제적, 실질적 문제를 떠나서 사회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교육 콘텐츠에 대한 실질적인 검열권을 어느 사기업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소홀히 넘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작성하고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진 듯하다. 애플 제품의 애용자이자 새로운 교육 플랫폼에 관심이 많은 개인으로서 작성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법적 문제를 건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 글은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인데다가 아직 완전하게 법적 검토가 끝나지 않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하지만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이와 비슷한 소감을 트윗에 올렸을 때의 반응, 또 비슷한 게시물이 올라간 외국의 글에 달린 댓글들에서 볼 수 있는 반응이 생각보다 이 문제를 별거 아닌 것, 심지어는 애플의 처사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들이 많았던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부분은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수도 있고 나의 법률적 의문이 큰 문제가 아닐수도 있지만 분명히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 글을 썼다.

나는 혁신과 창의적인 기업을 사랑한다. 그러기 때문에 애플의 팬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사업모델보다는 비록 실질적인 경쟁이 쉽지 않더라도 개방이 기본으로 되어 있는 사업모델, 수직결합보다는 한 주체가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없는 분산시스템을 선호하기 때문에 애플의 비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사랑을 받든 비판을 받든 그건 애플 몫이며, 사실 애플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일일 테다.

문제는 우리들이다. 무엇이 우리들의 권리이고, 무엇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1차적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혁신적인 제품이 공짜로 제공되는 혜택을 받더라도 부적법하고 염치없는 것이 아닌 한 우리의 권리는 보호돼야 하고 다른 사회적 가치는 보호돼야 한다. 만약 그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실질적인 시정 노력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1984년 애플이 전복하고자 했던 빅브라더에 의해 지배되는 영혼이 없는 듯한 군중들, 바로 그 모습일 것이다.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austenhufford/6750690667. CC BY.)

iwillbe99@gmail.com

거버먼트2.0 협업 프로젝트 활동가이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 twitter : @iwillbe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