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게임 쿨링오프제는 유효타 없는 규제셔틀”

2012.02.08

게임을 개발하고, 즐기는 이들의 한숨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진다. 지난 2011년 11월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셧다운제’가 적용된 데 이어 게임 ‘쿨링오프제’도 고개를 들었다. 쿨링오프제는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 2시간 게임을 즐기면 10분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제도다. 게이머가 쉬는 시간을 선택할 수는 없다. 게임 시작 후 2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접속이 끊긴다.

쿨링오프제는 지난 2월6일 학교폭력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도입하겠다고 주장한 제도다. 게이머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막겠다는 취지다. 교과부가 게임을 언급하며 쿨링오프제를 주장한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교과부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학교폭력이 폭력적인 게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임을 규제해 게임 중독을 막으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과연 그럴까. 교과부의 주장대로 게임을 규제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게임이 없던 시절에는 학교폭력 문제가 없었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는 오래된 문제인 동시에 지금까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쿨링오프제에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이유다.

교과부가 쿨링오프제를 주장한 진짜 의도가 궁금하다. 교과부는 과연 게임을 규제해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소위 ‘나쁜 문화’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 왜 우리나라 정부는 게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 일시: 2012년 2월7일 오후 5시
  • 장소: 공덕동 문화연대 사무실
  • 참석자: 황승흠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 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 오원석 블로터닷넷 기자.
  • 오원석: 여성가족부(여가부)와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에 이어 교과부까지 게임 규제에 한 다리 걸치려는 것 같다. 교과부가 학교폭력을 막을 방법으로 게임 쿨링오프제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시민단체와 법학계 의견이 궁금하다.

    정소연: 최근 문화 콘텐츠를 향한 정부 규제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창작자를 규제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사용자를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트렌드는 변했지만, 방법은 달라진 게 없다. 예전에는 창작자를 규제할 때 국가보안법이나 북한에 대한 공포심을 들먹였다면, 요즘은 청소년 보호 담론을 이용하는 식이다. 청소년 보호 담론이 규제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게임이 선봉에 서서 매를 맞는 꼴이다.

    결국, 목적도 같다. 게임 규제는 정부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넌 보면 안 돼’ 라고 말하면서 정부가 엄마 아빠 노릇을 하겠다는 식이다. 규제를 이용해 권위를 갖게 되면 그에 준하는 예산이나 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선거 표도 마찬가지다.

    황승흠: 이번 교과부의 쿨링오프제 주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 정부가 써먹던 수법에서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20년 치 신문을 검색해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로 기사를 찾아보면 약 2천개 정도의 기사가 뜬다. 내용은 지금과 똑같다. ‘일진’이라는 개념도 그대로다.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규제 방법도 똑같다. 다만 규제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80년대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TV 만화영화가 원인으로 지목됐고, 97년 말에는 만화책이 주요 타깃이 됐다. 2010년은 게임이다. 세 번 모두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못 내놨다. 미디어 콘텐츠만 밟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오원석: 유서깊은 규제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은데?

    황승흠: 실제로 만화영화 ‘마징가제트’가 인기를 끌었던 당시에는 ‘마징가제트’ 방영을 금지한 적이 있다. ‘들장미 캔디’만 보라는 식이었다. 출발점은 학교 폭력이었고, 원인으로 만화영화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 국내 만화산업에 정부가 손을 대면서 사실상 국내 만화가 붕괴되지 않았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박재동 화백과 허영만 화백 만화 빼곤 전부 죽었다. 지금 다시 온라인 기반 웹툰으로 만화가 겨우 고개를 든 상황인데, 놀랍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까.

    정소연: 정보공유연대 워크숍에 참석해 80년대 컴퓨터 관련 잡지 표지를 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표지에 쓰인 기사 글귀였다. ‘전자오락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더라. 아이들이 즐길거리에 대해 규제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적절하게 먹히는 담론인 셈이다. 결국은 이게 정부의 생색내기라고 생각한다. 규제를 결정한 이후 효과에 대한 후속 연구작업이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했으니까 됐다’라는 식이다. 우리는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황승흠: 이 부분이 좀 더 부각됐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새로운 점이 없다는 것. 20년전 있던 일진은 왜 아직도 그래도 있을까(웃음). 이번 장관회의에서 나온 학교폭력 대책을 훑어보면 협의체 만든다거나 심의위원 만들고, 처벌을 강화한다는 둥 똑같은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오원석: 선거가 가까워짐에 따라 이 같은 발표가 이어진다고 봐도 의미가 있을까. 집권여당의 표몰이 같은 방식 말이다.

    황승흠: 선거 정책과 다름이 아니다. 이 같은 정책은 정통성이 약한 보수계열 정권이 정권 말기에 전형적으로 펴는 정책이다. 대만 장개석 정권이 그랬고, 천수이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쪽은 매춘을 통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책을 펼쳤다. 국민의 생활과 연관이 있는 사항에 대해 규제를 하는 거다. 이 같은 정책은 보수적인 가정주부나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면서 국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꼼수다.

    이번 쿨링오프제도 게임을 이용하는 자녀를 둔 여성과 학부모층에서 지지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정권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인데, 이번 쿨링오프제는 아마 이번 총선에서 표로 심판하면 한방에 수그러들 수도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소연: 게임을 잡는다고 해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정부쪽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이거라도 해야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정책을 펴는 거다. 학교폭력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은 온데간데없다. 집이 불이 나고 있는데, 바가지로 물을 푸면서 집이 다 타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바가지로 물을 퍼 나르며 이거라도 하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다고 안도하는 꼴이다.

    문제는 선거에서 이 같은 전략이 대중에 굉장히 쉽게 먹힌다는 데 있다. 대학생을 위한 정책에 빠지지 않은 것은 등록금과 취업 문제이듯, 학부모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으로 게임을 들먹이고 있는 모양새다. 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들먹인다.

    오원석: 정통성 약한 정부가 주장하는 쿨링오프제가 셧다운제처럼 진짜 제도화될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황승흠: 일단 쿨링오프제는 교과부뿐만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이끌고 있는 정책처럼 보인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게임에 대해 쓴소리를 한 사건도 있었고, 선거철도 가까워졌다. 물론 정황상 그렇다는 뜻이다. 쿨링오프제는 현재로서는 제도화될 동력은 약해 보인다. 하지만 일단 임시국회 안건으로 등록은 됐다. ‘초·중·고등학생의 인터넷 중독 예방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다.

    쿨링오프제는 다른 법과 충돌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날치기 통과가 아닌 이상 국회 통과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변수도 있다. 아까 얘기했지만, 임시국회는 6월인데, 그 직전인 4월에 총선이 걸려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사그라들 가능성도 있다. 선거에 관한 변수를 생각해 보자면, 쿨링오프제는 게임을 즐기는 자녀를 둔 30대에서 40대 학부모를 타깃으로 하는 정책인데, 정작 이 세대들은 현재 ‘나꼼수’에 심취해 있는 세대다. 이것도 쿨링오프제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소연: 시행 계획에 관한 어떠한 준비도 없다는 점도 문제다. 게임업체별로 쿨링오프제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플랫폼이 다를 수 있는데, 이 같은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쿨링오프제를 과연 모든 게임에 적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독성이 특출나게 높은 게임과 중독성이 전혀 없는 게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번 쿨링오프제도 교과부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하겠다는 계획이 없는 상태다.

    온라인게임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없다. 도리어 물어보고 싶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나중 문제라고 치더라도, 쿨링오프제를 도입을 할 수는 있겠는지 말이다. 규제를 법제화할 동력은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구상하는 것에서 나오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쿨링오프제는 동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원석: 정책적인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구현 동력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 교과부가 게임을 때리고 있는 건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약한 문화적 토양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묘하지만, 게임은 제대로 된 문화 콘텐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승흠: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정부의 일종의 ‘포비아’ 현상이다. 미국에서 미디어 포비아 현상은 주로 스포츠에서 나타났다. 야구나 미식축구, 농구 등이 지금 우리나라의 게임과 같은 길을 걸었다. 문제는 이 같은 포비아 현상을 해결하는 데 최소한 3대에 걸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야구가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건 3대가 함께 야구를 즐겼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함께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주류문화로 변하는 과정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만화가 주류문화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들장미 캔디’는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음악에서도 이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얼마 전 TV에서 나온 남진의 ‘님과 함께’가 좋은 사례다. 우리 집을 예로 들면, 할아버지와 손녀가 남진의 ‘님과 함께’를 함께 듣는다. 물론 손녀가 듣는 ‘님과 함께’는 가수 김범수가 리메이크 했다는 특징은 있지만.

    이 같은 사례는 문화가 대중문화로 편입할 수 있는 좋은 지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스포츠나 우리나라의 게임 등 하류문화에서 출발한 문화가 세대를 넘어 주류 문화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변동폭이 낮아야 하고, 균질적인 코드가 있어야 한다.

    정소연: 비슷한 내용인데, 문화 활동에 대한 규제 방식이 자국 문화만 죽이는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게임이 문화로 인정받는 날이 오긴 어렵겠구나 라는 걱정까지 든다. 할아버지와 함께 ‘닌텐도 위’를 즐기는 날은 언제 올까(웃음). 그렇다면, 게임을 문화로 대접해 달라는 주장은 천천히 할 테니 그 대신 게임 탓은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일진이 학교에서 왕따 학생을 ‘빵셔틀’로 괴롭힌다는데, 게임은 정부의 ‘규제셔틀’이다. 그 가운데 실제로 효력이 있는 규제는 없다. 정부가 날리는 잽만 맞다가 맷집만 약해지고 링을 떠날 것이다.

    물론 국내 게임업체도 노력을 해야한다. ‘돈을 벌겠다’가 목적이 아니라 과연 게임이 청소년 문화에서 어떻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 한 게임에 대해 여러 아류작도 나오고, 패러디도 나오고 2차, 3차로 재창조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진짜로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황승흠: 늘 있는 현상이다. 미국에서 야구가 대중문화로 인정을 받는 데 3대에 걸쳐 장장 9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번 쿨링오프 제도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문화에 대해 열등감이 없는 세대를 우리 문화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세대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일화를 소개하자면, 금발 아이가 나에게 와서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빅뱅’을 아느냐고 물어보더라. 룸메이트가 ‘빅뱅’ 팬이라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더라. 지금 우리나라 문화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수출되고 세계에서 일부 인정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예전 우리 세대는 어땠나. 뭔가 국산 노래 들으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고, 팝송을 들어야 좋은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 세대는 팝송을 거의 안 듣는다. 한국 대중가요가 더 좋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 즉 규제를 만들고 통제하는 세대가 자국 문화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갖고 있는 세대라면, 게임을 즐기는 우리 아이 세대는 자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이 전혀 없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주로 즐기는 게임도 국산이고, 듣는 노래, 패션 모든 게 다 우리나라 거다. 과연 자국 문화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우리 세대가 아이들에게 문화를 즐길 권리를 뺏을 수 있나 의문이 든다.

    정소연: 학교에서도 농구 잘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인기가 많지 않나. 농구를 잘하는 애들은 뭔가 반항의식도 있어 보이고(웃음). 농구를 잘하기 위해선 힘들다. 하지만 게임은 자유롭다. 짧은 시간과 적은 돈과 노력을 투자해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가치다. 효율성이 굉장히 높은 가치재인 셈이다.

    황승흠: 그 지점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 사이에 단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어른은 게임 문화에 대해 가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게임이 아이들에게 가치재라는 점을 인정하기만 하면, 게임을 둘러싼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끼리 게임 캐릭터 레벨을 갖고 이야기를 한다. 게임은 ‘노스페이스’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 게임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게임을 가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그 지점이다.

    오원석: 마지막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게임이 진짜 학교폭력의 원인일까. 진짜 원인이라면, 정말 칼을 빼 들고 게임 말살하면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으니, 정부가 합당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정소연: 오히려 인터넷 중독과 폭력성 성향 관계는 반비례한다.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의 폭력성이 더 낮게 나온다.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게임이나 인터넷 이외의 가치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게임 외에는 관심이 없는데 애들은 왜 때리겠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지언정 게임은 폭력과 반비례한다. 가상세계 폭력이 현실로 오는 것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쿨링오프제를 주장하는 교과부나 셧다운제를 도입한 여성부에서 게임과 폭력성 상관관계에 대한 이 같은 신뢰할 수 있는데이터가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셧다운제를 도입하는 데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렸다. 그동안 연구자료 하나 나온 게 없다. 게임중독의 위험하다는 발표만 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뇌과학 전문가의 연구 자료를 인용해 게임중독자와 마약중독자의 뇌를 비교한 기사를 실었는데, 이거 웃기는 일이다. 뇌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성향이 비슷한 건 아니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실제 연구자료를 깊이 살펴보면, 탄수화물 중독자의 뇌도 마약 중독자의 뇌와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그렇다면 쌀밥을 많이 먹는 사람과 마약 중독자와 게임 중독자는 같은 사람이라는 뜻인가. 개별적인 특성을 간과하고 모든 문제를 콘텐츠 탓으로 돌린다. 이 때문에 진짜 심각한 병리적 증상을 보이는 개인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해지고, 특수 사례를 인용해 전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황승흠: 정말 원인이냐를 따지고 본다면, 심리학이나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더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런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봐도 게임이 학교폭력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미디어가 인간의 인지 능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동의 영역에선 미디어의 영향이 크지 않다. 폭력은 명백한 행동의 영역이다. 인간에게는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게임을 폭력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건 우리 아이들을 동물로 치부하는 꼴이다. 동물도 아마 인지 능력과 행동에 거리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대법원에는 폭력적인 게임이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판례도 있다. 방금 정소연 팀장의 말처럼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병이다. 그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일이다. 미디어를 통해 성향이 변한다고 믿는다면, 예를 들어 광고 하나가 정치 판도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임의 과몰입 문제는 청소년의 수많은 조건과 얽힌 문제다. 가정의 문제나 학교생활 등 여러 가지를 통합한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싶다.

    정소연: 교과부는 너무 게으르다. 학교폭력을 게임 탓으로 돌리고, 교과부가 책임져야 하는 내용을 경찰이나 공권력에 위임했다. 학교폭력에 대해 게임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왜 학교폭력이 일어나는지, 가해 학생은 왜 게임을 하는지, 그리고 왜 게임에 과몰입되는지 등 환경분석이 먼저 돼야 할 것이다. 게임에 가해지는 불편한 담론을 언제까지 반복할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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