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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삼성 ‘스마트TV 전쟁’, 사건의 재구성

2012.02.14

KT가 2월10일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접속 제한했다.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스마트TV의 망 이용대가 지불과 관련된 협의를 하려고 하는데 삼성전자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즉각 서울중앙지방법원에 KT의 차단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손해배상 청구 등 추가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 조치는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의 여지가 있다며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망 이용대가 문제는 이달부터 열리는 방통위의 망 중립성 정책자문기구에서 주요 논의 사항으로 다뤄질 예정이었다.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KT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제한한 것은 석연찮다. ‘6자회담’을 코앞에 두고 ‘양자회담’ 안 해 준다고 해당 국가에 대한 제재를 결행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TV 서비스를 급작스럽게 차단하면 방통위가 제재를 검토하고 삼성전자가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KT는 삼성전자 스마트TV 서비스를 전격 제한하는 무리수를 강행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이들의 석연찮은 다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복기해보자.

먼저 KT가 공식적으로 밝힌 접속제한 이유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KT는 스마트TV가 IPTV 대비 5~15배, 실시간 방송 중계시 수백배 이상의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고, 현재와 같은 속도로 스마트TV가 확대된다면 머지 않아 통신망 블랙아웃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발생할 네트워크 문제에 대비해 ‘예방주사’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KT는 차단 근거로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 제1항을 들었으며, 특정 가입자가 다량의 트래픽을 발생시킬 경우 주변 가입자에게 속도 저하 문제가 발생한다는 실측 자료도 제시했다.

제79조(전기통신설비의 보호) ①누구든지 전기통신설비를 파손하여서는 아니 되며, 전기통신설비에 물건을 접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기능에 장해를 주어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KT가 근거로 제시한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는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한 것이지, 향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위법 행위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KT의 주장은 ‘향후 차량이 늘어나면 고속도로가 막힐 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량을 통제하겠다’는 억지 논리다.

KT가 제시한 실측 자료도 문제가 있다. 실제 소비자에게 속도 저하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상황을 가정해 시뮬레이션 한 결과다. 실제로 전기통신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는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설령 삼성전자가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통신사업자인 KT가 직접 나서서 서비스를 제한할 권리는 법률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접속 제한 조치는 결국 방통위가 제재를 검토하고 삼성전자가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대체 KT는 무엇을 노리고 빈약한 논리로 초강수를 둔 것일까.

양사가 번갈아 가며 기자회견을 열고 핏대를 세우고 있지만, 양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뻔한’ 공방 밖에 없어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이른바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할 뿐이다. 양사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을 정도의 사건임에도, 그 ‘진짜’ 내막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양사 고위 관계자를 만나 갈등의 본질을 속시원히 들어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준호 삼성전자 전무도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 근거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 ‘의도’를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제껏 보도되지 않은 시선으로 사건을 새롭게 구성해보기로 했다. ‘가설’의 상당 부분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증언과 업계 관계자의 분석, 그리고 양사 관계자의 발언에 기초했다.

문제는 ‘망 중립성’이나 ‘인터넷 종량제’가 아냐!

우선 KT 관계자의 발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가 단순히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는 ‘힌트’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김태환 KT 스마트 네트워크 정책TF 상무는 13일 삼성전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슬쩍 흘렸다. “삼성전자가 구글과 손잡고 구글TV 같은 제품을 만드는데, 국내 업체와도 손을 잡고 글로벌 시장에서 윈윈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지 않느냐.” 표현명 KT 사장도 이번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삼성과 동반성장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기대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스마트TV의 망 이용대가 논쟁은 KT의 네트워크가 깔려 있는 국내 시장에 국한된 얘기다. KT가 망 이용대가를 받는 것과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KT가 해외 통신 인프라 시장에 직접 진출해 글로벌 통신사로 자리매김을 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국내 통신사가 해외에 직접 진출해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KT는 망 이용대가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어떤 협력을 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흥미로운 얘기가 돌고 있다. KT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를 접속 제한한 것은 단순히 망 이용대가를 받아내려는 조치가 아니라, KT 내부의 IPTV 및 네트워크 산업 부문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감이 표출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두 차례에 걸친 KT의 기자간담회 자리엔 표면적으로 이번 양쪽 갈등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IPTV 및 네트워크 부문 고위 임원이 여럿 얼굴을 비췄다.

방통위는 올 초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망 이용대가와 mVoIP, 스마트TV 등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항에 대해서는 “논의를 지속하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그 결과 지난 1년 간 진행된 망중립성 포럼도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는 탁상공론의 장으로 전락했다. 결국 통신사와 포털, 제조사들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제각기 ‘양자 회담’에 나선 상황이다. KT와 삼성전자의 갈등도 결국 망중립성 포럼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양자 회담도 무산됐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다.

그런데 업계에 따르면 이 ‘양자 회담’에서는 망 이용대가 산정 문제 뿐만 아니라 통신사의 IPTV 콘텐츠를 제조사의 스마트TV에 탑재해 서비스하는 방안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이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들이 셋톱박스와 자사의 전용회선이 필수적인 IPTV의 사업모델이 점진적으로 스마트TV에 잠식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스마트TV는 별도로 정액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셋톱박스를 구입할 필요 없이 최신 TV만 구입하면 곧바로 다양한 인터넷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IPTV의 가입자 유치 증가세가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최신 TV 판매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제조사들은 최신 TV를 대부분 스마트TV로 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TV에 고품질의 콘텐츠가 더 많이 탑재될수록 IPTV에 가입하는 이용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신사들은 콘텐츠 사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확보한 콘텐츠를 스마트TV를 통해 판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CES 2012에서는 LG전자가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손잡고, 버라이즌의 FiOS TV 서비스를 LG전자의 스마트TV 플랫폼에 탑재하는 협약을 맺었다. LG전자는 앞서 2010년 KT와 협력해 KT의 IPTV 서비스를 내장한 셋톱박스 일체형 TV를 국내에 출시한 적도 있다.

국내 통신사는 IPTV와 통신 인프라를 모두 손에 쥔 유리한 입장이지만 종국에는 스마트TV에 시장을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에서는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윈윈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KT 관계자들의 잇따른 발언은 단순히 망 이용대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IPTV 콘텐츠를 스마트TV에 담아달라는 제안이 협상 항목에 올라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전세계에 스마트TV를 공급하는 제조사를 통해 국내 콘텐츠를 해외에 판매하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그림을 그리는 모양새다.

스마트TV에 업혀 IPTV 콘텐츠 해외로

그러나 통신사와의 협력에 비교적 우호적인 LG전자와 달리 삼성전자는 드림웍스, 버진미디어그룹, ESPN 등 콘텐츠 사업자와 훌루, 넷플릭스, 블록버스터 등 인터넷 동영상(Over-the-Top, OTT) 사업자와 우선적으로 협력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호주 최대 통신사인 텔스트라의 IPTV 콘텐츠를 스마트TV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TV 시장에서도 통신사와 협력하는 모델을 택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텔스트라는 호주의 방송 및 통신 양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사업자로, 호주에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런데 왜 삼성전자는 KT가 접속제한이라는 초강수를 둘 때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만나서 협의는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줄기차게 망 이용대가 부담을 주장하는 국내 통신사들의 입장이 부담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KT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IPTV 콘텐츠 공급 뿐만 아니라 망 이용대가 문제가 함께 거론될 것이고, 이러한 소식이 해외에 알려지면 지금껏 망 이용대가를 주장하지 않았던 해외 통신사들도 삼성전자에 비슷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로선 걱정스런 대목이다.

국내 TV 시장은 전세계 TV 시장의 1% 안팎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국내 통신사와 망 이용대가 부담을 논의해 해외 사업자에게도 논쟁의 여지를 열어줄 필요가 없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LG전자-버라이즌 사례에서 보듯 해외 통신사업자가 스마트TV 제조업체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버라이즌은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기는 커녕 LG전자 스마트TV를 통해 유치된 신규 회원 1명당 일정 액수를 지불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 통신사들과 양자 회담에 소극적인 이유다.

여기까지가 KT가 방통위의 제제와 삼성전자의 법적 조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스마트TV 접속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상황에 대한 새 시나리오다. KT와 삼성전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어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지만 정작 민감한 내심은 밝히지 않고 있다. 시나리오가 아닌 ‘사실’을 두 기업이 밝혀주길 기대한다.

뒷짐 진 방통위 탓, 사태 악화일로

마지막으로, KT와 삼성전자의 이전투구에 묻혀 드러나지 않은 방통위의 ‘직무유기’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방통위는 9일 KT의 접속제한 행위에 대해 “망 중립성의 기본 정신을 위배한 것은 물론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이익 침해 등을 검토할 것”이라며 “법 위반으로 판단될 경우 시정명령, 사업 정지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조치 수단을 검토해 즉각적이고 엄중한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견 발 빠르게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방통위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올해부터 시행된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망 이용대가와 스마트TV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갈등의 불씨를 남겨둔 장본인이다. 그 결과 가이드라인은 대체 무엇을 가이드 했는지 알 수 없는 ‘거룩한 담론’에 그쳤다. 당시 방통위는 “시장의 흐름을 지켜본 후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방통위가 뒷짐 지고 시장 흐름을 지켜보는 사이에 국내 최대 TV 제조사와 최대 유선인터넷 사업자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양사가 여론 공방을 하는 사이에 20~30만명에 달하는 국내 삼성전자 스마트TV 가입자들만 불편을 겪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9일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은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은 물론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한 행위”라며 “돈벌이를 위해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을 철회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유가 무엇이든 소비자를 협상의 카드로 삼는 행위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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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닷넷 기자. 모바일의 시대에 모두 다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모바일, 스마트폰, 통신, 소통 / 따뜻한 시선으로 IT 세상의 곳곳을 '줌~인'하겠습니다. ezoomin@bloter.net / 트위터 @ezo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