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개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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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외치며, 관련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나섰다. 세계 상위 SW기업 목록에 우리나라가 포함되지 않은 현실을 반성하자며, 차세대 애플과 같은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SW인재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재 육성도 중요하고, 개발자를 지원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17일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제12회 한국자바개발자 행사에서 진행된 세션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진행된 행사는 2천여명에 가까운 개발자와 예비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그들이 개발자로서 살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를 학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동시에 오늘날 개발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선배 개발자들의 노하우도 함께 나눴다. “돌잔치에 마우스 올리면 일가 친척들이 다 말려도, 내 딸은 훌륭한 개발자로 키워나가는 싶다”라거나 “나이가 먹어 50세가 되어도 끝까지 개발자로 남고 싶다”라는 젊은 개발자들 앞에 이날 어떠한 조언이 있었는지 살펴봤다.

“노동법만 지켜도 개발자 삶은 훨씬 나아질 것”

김효상 IT산업노조 정책자문위원(사진)의 말은 간결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하청 구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인 법에 충실하면 개발자 환경이 과거보다 훨씬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정책을 만들기 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 개발자들도 다른 직장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개발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화수목금금금’에 야근을 일삼는 개발자들의 생활은 거짓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개발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남들은 다 자고 있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돈을 많이 받는것도 아니다. 꼬박꼬박 야근수당이 나오는 것도, 휴가 맞춰 제대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부 기업에서는 개발자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다.

2010년 8월 서울시의회에서는 발표 문구 글꼴체가 바뀌지 않았다고 현장에서 담당 개발자를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날 개발자들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 개발자에게 야근을 하면 정말 일이 잘 되는지를 물었다. 때 되면 퇴근하는 다른 직장인들과 다르게 왜 유독 개발자들에게만큼은 야근이 빈번한지 궁금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불가능한건 해결하라고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지만서도 ‘열심히 했지만 할 수 없었다’라는 면피를 위한 야근이 일상화된다”라는 말이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이 JCO 컨퍼런스에 참석해 개발자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각 기관들과 정부가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알렸다. 인천에는 왜 SW개발자가 찾아오지 않는지,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 커뮤니티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도 있었다.

최근 정부는 ‘공생발전형 SW 생태계 구축전략’을 발표했다. 전문기업과 중소기업이 IT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대기업 위주의 참여는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리고 이를 위한 ‘SW산업 진흥법 개정안’은 현재 본 의회에서 표류중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이야기로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구성해서 아쉽다”라는 김효상 자문위원의 말이 되새김질되는 대목이다.

여성 개발자 수난시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여성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가 아닌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다. 그녀는 1815년에 Ada 언어를 개발했다. 그레이스 호퍼는 세계 최초로 ‘프로그램 버그’라는 개념을 창시했다. 역시 여자다. IT 역사에서 심심찮게 여성들이 활약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개발자 모임터가 운영자 전수현 개발자가 밝힌, 오늘날 여성개발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마치 우리나라가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자라서 취직이 취소됐다.” “한국의 여성 개발자가 극히 드물다.” “여성 개발자에게는 쉬운 일만 맡긴다.” 성 역차별이 벌어진다는 요즘 시대에 개발자들 사이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는 아직 개선되지 않은 모양이다.

올해로 여자개발자 모임터는 설립 5주년을 맞았다. 5년 전 한 IT 회사에 들어간 전수현 개발자가는 회사에서 유일한 홍일점 개발자였다. 회사도 여자 개발자를 최초로 뽑았다고 한다. 열정이 가득한 그녀는 담배를 안 피우면서도 시간만 나면 흡연실에 머물렀다. 다른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나누는 개발 노하우를 듣고싶어서였다.

그리고 6개월 뒤, 그녀와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는 벌써 프로젝트 2개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화나 유지보수 같은 일만 담당했다. 실력이 비슷함에도 자신에겐 프로젝트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이 회사를 떠났다. 당시 선배들의 “오히려 여자기 때문에, 힘든일을 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녀를 배려한 차원에서 일을 시켰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전수현 개발자는 여성 개발자를 위한 제대로 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여자개발자 모임터가 탄생했다.

개발 환경에서 소수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여성의 커뮤니티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보통 개발자 커뮤니티라고 하면 ‘남성이 많은데’라는 편견을 깨고 섬세함과 유연성, 감수성을 가진 특별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개발 업무 외 소소한 일상 고민도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막상 모임을 통해 여자개발자 모임터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한 회원은 대학 때 야심차게 프로젝트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F 학점을 받았다. 그녀는 같은 과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남자친구를 뒀다. 그녀가 준비한 프로젝트를 본 교수는 ‘남자친구가 대신 한 거 아니냐’라며 그녀에게 낙제점을 줬다. 아무리 본인이 직접 코드를 짰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여자 개발자는 남자 개발자보다 실력이 뒤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여자라서 입사 거부를 당한 회원도 있다. 교수님 추천으로 회사 면접까지 보고 입사 날짜만 잡았는데, 갑자기 해당 회사로부터 ‘사장님이 여자라서 난감해하고 있다’라는 소식이 떨어졌다. 이어 입사를 취소하겠다는 통보가 떨어졌다. 우여곡절끝에 예정대로 입사는 했지만, 불쾌함까지 떨쳐버릴 순 없었다. 지금도 비슷한 사례가 적잖이 게시판 고민글로 올라온다.

면접에서 여성 개발자에게 쏟아지는 유독 난처한 질문이 있다. “남자친구가 있나요?” “아이는 언제 가질 예정입니까?” 같은 업무 관련 부문보다는 주로 개인 생활 관련한 면접관의 질문에 난처했다는 사례가 대부문이다. 전수현 개발자는 “아무래도 사회 분위기가 남성은 결혼하면 안정적이지만 여성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쉽게 개발 업무를 맡기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여 서운하다”라고 여성 개발자를 대하는 사회 인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세션에서는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개발자로서 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오고갔다. 결혼 후에는 어떻게 개발환경으로 복귀할 것인지,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꾸리면서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 오고갔다.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개발자는 자기가 틈틈히 공부를 하면, 임신 후에도 복귀해서 안정적으로 빨리 일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요즘은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생활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여성 개발자하고는 어떻게 친해질 수 있냐는 남성 개발자의 질문도 이어졌다. 가까이 하고 싶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는 하소연도 함께였다. 이에 대해 전수현 개발자는 “여자친구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하느냐, 여성 개발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조금 더 친절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대하면, 단 들이대지 않는다면 좋은 개발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다행히도 요즘엔 일부 기업에선 오히려 여성 개발자를 우대한다고까지 한다. 여성 개발자가 들어오면 팀 분위기가 밝아지는 점도 있고, 작업이 꼼꼼해지는 면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비한 이 시작이 더 많아져서 많은 여성 개발자들이 활약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