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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과 열린 문화, CCL, 인터넷과 웹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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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

정통부 부활론 유감

진나라 말, 천하의 패자의 자리를 두고 승부를 겨루었던 항우와 유방,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초한지'는 '삼국지'와 함께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항우는 명가의 후손으로 무거운 솥을 혼자 들 수 있을 만큼 괴력과 패기가 있었다. 반대로 유방은 상대적으로 혼미한 가문에 벼슬도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기 수하의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래서 유방은 벽지에 몰렸지만 사람들이 몰려 왔기 때문에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반대로 항우는 자신만 내세우다 보니 백성과 신하에게 모두 신망을 잃었다. 이 대조적인 두 인물의 싸움의 결과는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로 남아 있다. 항우의 비참한 최후다. 역설이다. 결과적으로 항우의 재주가 유방보다...

던칸 와츠

인터넷 시대의 사회적 상상력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던칸 와츠의 '상식의 배반'(Everything Is Obvious)을 읽고 든 생각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의외였기 때문이다. 저자 던칸 와츠는 물리학 학사, 코넬대 공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본래 콜럼비아대 사회학 교수로 있다가 야후의 수석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혁신적 사회학자다. 그러나 그가 복잡성의 시대에 사회과학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이 정도로 깊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좀 더 깊은 감동의 원인은 보다 개인적인 것이다. 그 '의외'라고 생각한 사실 자체가 나의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자연계 배경만 가지고 그의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를 가늠하는 오류를 보였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의 무지를 넘는다. 그것은 그 무지의 뿌리인 '상식'이라는...

CCL

디지털 시대, 창조는 누구의 권리인가

지난 2월22일, 서울역 인근 저작권교육원에서 개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저작권 정책 분야 대국민 현장 업무 보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에 참석하는 정책 고객은 나를 포함해 모두 22명이었다. 대부분 정책 고객의 소속이 이런저런 산업 협회의 장이었다. 나는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생이다. 나 같은 학생이 뭔가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분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내가 활동해온 부분은 있다. 그 동안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는 사회에 이용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해왔다. 외부 필진으로 블로터닷넷에 100편 넘는 글을 썼다. 소셜웹의 시대적 변화를 이윤 뿐 아니라 개인의 권리, 사회적 발전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지난해 4월에는 '소셜 웹이다'라는 책을 써서 종이책으로 출간했고, 7월에 전자책으로 웹에서 무료 배포했다....

냅스터

파일 공유에서 소셜 미디어까지, '디지털 네이티브' 반란사

1980년 메사추세츠주 브록톤에서 숀 패닝이 태어났다. 이 사람이 20세기 최대 비즈니스 중 하나인 거대 음반산업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집안이나 학벌, 그의 어떤 '스펙'도 그것을 증명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MIT 미디어랩을 설립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1995년작 ‘디지털이다’의 결론에서 디지털 혁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디지털의 자유는 원자의 제도에 묶이지 않기 때문에 초국가적인 사회, 개인이 중심이 된 시대를 만들 것이라고. 숀 패닝은 그 예언을 믿었다. 1999년초, 그는 18살에 대학 중퇴생 신분으로 체스넷(Chess.net)이라는 삼촌 회사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그 해 그는 최초의 파일 공유 사이트(P2P)인 ‘냅스터’를 만들었다. 냅스터는 그의...

멈포드

눈에 안보이는 스마트 혁명

1966년, MIT의 컴퓨터 공학자 조셉 와이젠바움은 자연 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를 수행하는 일라이자(ELIZA)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름은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이라는 극의 주인공에게서 땄다. 닥터(DOCTOR)라는 스크립트에 따라 움직이는 일라이자는 지금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남친, 여친, 부장님 봇(bot) 등처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채터봇(chatterbots)이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GNU_Emacs_ELIZA_example.png 이 일라이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조셉 와이젠바움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 것은 사람들이 이 컴퓨터를 ‘단순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이 일라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눴다. 조셉 와이젠바움의 MIT 동료이자 심리학자였던 쉐리 터클은 전부터 인간과 도구의 상호 심리 작용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에게 도구가 ‘어떻게 도구 이상’의 것으로 인식되고, 영향을 주느냐에 흥미가...

검열

웹 1.0이 더 나을 때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부가 후원한 '알파넷'(ARPAnet) 개발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후원자인 국방부의 눈에는 '아무도 소유하고 통제하지 않는' 통신 네트워크라는 비전은 그다지 현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부의 손을 떠나 연구자와 활동가의 몫으로 남겨졌고 덕분에 '정치적', '상업적' 목적과는 무관한 '순수한 소통'이 주가 될 수 있었다. 아파넷이 탄생한 지 4년 후인 1973년, 알파넷 전체에서 차지하는 트래픽의 75%가 이메일이었다. 이 같은 역사는 '인터넷 혁명 제2기'인 '월드 와이드 웹'(WWW)의 탄생에서도 반복된다. 1990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일하던 팀 버너스 리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상호 연결이 되는 문서를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월드 와이드 웹'이란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그리고 웹을 인터넷에 무상으로 공개한다. 이 웹에 기반해, 1995년부터 홈페이지가 유행했고 1997년부터는 블로그(weblog)가...

검열

트위터가 바꾸지 못할 세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된 두 세계의 경계에 'PC'(개인용 컴퓨터)가 있다. PC가 비트(bit)와 원자(atom)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인 이유는 단순하다. PC가 원자의 세계에서 비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문'이 '한 명의 사용자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문’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것이 문자적으로 정의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정체다. 나아가, 온오프라인 경계를 이루는 PC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한 명의 사용자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무효함을 뜻한다. 현재 웹 생태계에 불고 있는 가장 큰 바람인 '클라우드 컴퓨팅'과 '휴대용 디지털 기기 혁명'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무엇인가? 개인이나 기업이 발전소를 갖고 전기를...

개방성

인터넷 프라이버시, 구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최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단연 한 중학교 여교사가 자신의 제자와 상습적으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다. G20 정상회의 등 굵직한 각종 시사에 묻혀 잠길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은 소위 '누리꾼'들이 해당 여교사와 학생, 그리고 여교사 남편의 신상정보까지 무단 공개함으로써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올 한해만해도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해서 개인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거나 명예가 훼손되는 사건이 끓이지 않고 있다. 가장 유명했던 건 가수 타블로의 학력 시비를 가리는 타블로와 네티즌 간의 공방이었다. 다음 카페 '타진요'를 주축으로 한 누리꾼 왓비닷컴과 타블로의 싸움은 매스미디어의 특집 다큐멘터리 보도와 법정 판결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 '타블로 사건'과 '여교사 사건' 그리고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여중생이 설전과 몸싸움까진 벌였다해서 화제가...

모바일 웹

스타벅스에서 소셜 웹까지

MIT 교수를 지냈던 엘팅 E. 모리슨은 그의 역저 <인간, 기계, 그리고 현대 사회>(Men, Machines, and Modern Times)에서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지만 그 기계에 의해서 또 다른 제한된 현실을 갖게 됨'을 지적했다. 동시에 그는 책의 결론부에서, 그 제한된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기계적 현실을 포괄할 수 있는 '문화의 중요성'을 말했다. 즉, 과거 시대의 문화 유산만으로는 급격한 물질 문명의 발전 가능성과 한계를 포괄하기 어려우므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관점, 시각, 사고의 틀을 가지고 변화하는 과학, 기술 문명이 인간, 사회와 어떻게 조우하는 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 고전이 MIT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1966년이었다. 그리고 42년이 지났다....

IT

"IT는 온라인이 아니다"...'밋업'이 던져준 교훈

PC 이후 시대가 왔다. 이 것은 우리 가정이나 사무실 책상 위의 컴퓨터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지하고 복잡한 작업을 위해 데스크톱의 필요성은 향후 잔재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PC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인 PC, 즉 컴퓨팅을 '사용'하기 위해서 개인이 '소유'해야만 하는 PC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최근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스마트폰(아이폰), 태블릿(아이패드) 열풍은 그 같은 'PC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경이적일 정도로 슬림한 디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출 것은 다 갖춘 스펙. 이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답은 그 '안'에 있다. 미국의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가 그의 역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