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혁신 기업에 직접 투자 하는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에 단순 대출 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처럼 지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주요 금융사 수장마다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라는 특명을 내리면서 모험자본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블로터>가 금융감독원 분기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주요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올해 1분기까지 4차 산업 관련 스타트업, 벤처 기업 105곳에 총 913억9100만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조사된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해외 기업을 제외한 실적이다.
우리은행이 496억3400만원, 신한은행 323억9800만원, 하나은행 76억7400만원, KB국민은행은 16억8500만원을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와 자율주행, 블록체인 기술 기업에 출자했다.
여기에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독려가 모멘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손 회장은 지주사 출범 전부터 유니콘 기업 발굴에 앞장설 것을 선언해왔다. 직원들에 혁신 기업 투자를 당부하고,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되던 징계 프로세스도 변경했다. 투자 손실 발생 시 고의나 과실이 아닌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재정비하고 혁신 센터를 개설하는 노력을 펼쳤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018년 하반기부터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를 집행해왔다"며 "금융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중심으로 창립 멤버의 역량과 시장 성장 가능성 등을 면밀히 따져본 뒤 투자 결정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초 중기 전략으로 '디지털 생태계 구현(Eco-system)'을 내세운 뒤 "핀테크, 빅테크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자"는 포부를 전한 바 있다.
은행권은 최근 정부의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정책에 화답하고자 경쟁하듯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벤처캐피탈(VC) 설립과 정책펀드 참여로 간접 투자하던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자체 스타트업 발굴·협업·육성 프로그램인 '하나1Q 애자일랩'을 통해 발굴한 기업에 직접 투자했다. AI 플랫폼 기업 크라우드웍스, 마인즈랩 등에 대해 각각 10억원 규모로 출자를 진행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 기업 중 일부는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을 준비 중이어서 성장에 따른 과실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