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인 그라운드X가 한국은행(이하 한은)의 중앙은행 CBDC(디지털 법정화폐) 모의실험 연구 파트너로 결정됐다. 이번 계약은 최근 세계적 금융 트렌드로 떠오른 CBDC 연구와 관련해 한은이 발주한 첫 시범 프로젝트란 상징성과 더불어 카카오, 네이버, SK 등 대기업 계열이 입찰에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특히 최종 승자인 그라운드X의 경우 블록체인 개발, 은행, 결제 프로세스 전반을 아우르는 호화 협력사들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그 면면에 이목이 집중된다.

▲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사진=그라운드X)
▲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사진=그라운드X)

기술, 가격 점수 모두 그라운드X 완승
이번 결과 발표 후 공개된 그라운드X의 협력사는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를 비롯해 KPMG, 컨센시스, 온더, 코나아이, 에스코어 등 각 분야별로 특색을 갖춘 기업들이다. 당초 3사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술'과 '입찰가격' 항목 모두에서 그라운드X는 라인, SK㈜ C&C를 앞섰다. 그중 평가 배점의 90%를 차지한 기술평가 점수에서 그라운드X는 85.4점을 기록해 84.62점의 라인을 간발의 차로 따돌렸다. 라인도 풍부한 블록체인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라운드X와 협력사 라인업이 이번 사업이 요구한 주요 평가 기준 항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업 공고상 기술 항목의 세부 평가 기준과 단계별 사업 시행 계획을 살펴보면 △CBDC 활용 시나리오 △관련 분야(금융, 분산원장 등) 전문성 △상호 협력체계의 적정성 △성능 및 품질 등의 기본 항목과 더불어 CBDC 업무 확장성 △최신 블록체인 기술 도입 등에 평가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CBDC 핵심 요구사항들을 충족하는 협력사 라인업
먼저 대표 참여사인 그라운드X는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중 가장 높은 시가총액을 기록 중인 클레이(Klay) 기반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 개발사로 잘 알려져 있다. 클레이튼은 탄탄한 기반 생태계가 강점이다. 현재 클레이튼 운영을 주도하는 거버넌스 카운슬(GC)에는 카카오, LG전자, 넷마블, 위메이드, 안랩, GS샵, 셀트리온, 신한은행 등 유수의 분야별 기업 30여개가 참여 중이다.

공개된 CBDC 설계 방안 예시에 따르면 한은은 CBDC의 발행·환수를 담당하며 유통은 금융기관, 핀테크, 빅테크 기업 등 민간의 몫이다. 특히 CBDC는 실제 법정화폐(원화)와 완전히 동일한 가치와 사용처를 지닌 디지털 화폐인 만큼 도입 후 원활한 유통 환경 구축은 필수다. 이런 측면에서 그라운드X의 또 다른 협력사 집단으로 볼 수 있는 클레이튼 GC는 유통, 결제, 금융, 게임, 전자기기, 모바일 등 다양한 소비자 서비스 기업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는 것은 충분한 강점으로 꼽힌다.

▲ 클레이튼 거버넌스 카운슬 (자료=그라운드X)
▲ 클레이튼 거버넌스 카운슬 (자료=그라운드X)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와 간편결제 플랫폼 카카오페이도 CBDC 송금, 교환, 결제 등 핵심 기능 분야에서 풍부한 기술력과 시스템 구축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이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경우 올해 기준 이용자 수 1615만명, 2000만명 수준으로 사용자 인지도와 접근성 또한 우수한 편이다.

이번 CBDC 모의실험은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 기반으로 구축된다. 향후 전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법정화폐 시스템을 차질 없이 운영해야 하므로 고도의 블록체인 개발 기술력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협력사는 컨센시스다.

일반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컨센시스는 비트코인과 더불어 양대 가상자산으로 불리는 '이더리움'의 핵심 개발사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컨센시스의 최고경영자(CEO) 조셉 루빈도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을 공동 창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컨센시스는 블록체인과 각종 산업을 연결하는 수십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전세계 정부기관들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을 만큼 폭넓은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게다가 CBDC 분야에선 이미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한 경력을 갖고 있다. 시스템 안정성이 최우선인 금융 프로젝트의 경우 첫 CBDC 실험을 앞두고 풍부한 개발 경험을 보유한 컨센시스의 협력 또한 평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 온더는 높은 수준의 확장성(사용자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척도)을 보유한 블록체인 플랫폼 '토카막 네트워크' 개발사다. CBDC가 비트코인 등 일부 결제용 가상자산이 겪는 결제 처리 지연 문제 등을 겪지 않으려면 사용자 규모에 따라 능동적인 확장성 제공이 필수다. CBDC는 전국민 대상 서비스이므로 카드사 수준의 결제 처리 속도와 안정성을 구현하지 못하면 실제 운영에 치명적 오점을 남을 수 있다. 스타트업으로서 온더가 이번 프로젝트에 협력사로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코나아이는 경기도, 부산시 등 국내 여러 지역에서 디지털 지역화폐 서비스를 제공 중인 핀테크 기업이다. 올해 2월 1조원대 시장 규모를 지닌 부산시 지역화폐 '동백전' 운영대행사로 선정돼 이목을 끌었다. 코나아이가 이번 사업에 힘을 보태는 영역은 지역화폐 서비스 노하우를 녹인 '오프라인 CBDC 카드'다. 이는 디지털 기반 화폐의 취약점으로 온라인 접속이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서의 CBDC 사용이 가능해지는 솔루션으로, 오프라인에서도 NFC, 블루투스를 통해 CBDC 잔액 송금 및 결제가 가능해져 CBDC의 단점을 상쇄할 것으로 기대된다.

▲ 오프라인 CBDC 카드 샘플 이미지 (자료=코나아이)
▲ 오프라인 CBDC 카드 샘플 이미지 (자료=코나아이)

이와 함께 KPMG 및 삼성SDS 자회사인 에스코어는 이번 사업에서 자문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두 회사 모두 기업 컨설팅 분야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노하우를 지닌 기업이다. 이처럼 이번 그라운드X와 협력사는 한은의 CBDC 모의실험 사업이 요구하는 다양한 기술, 시스템적 요구사항을 충족한 '드림팀'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이들은 향후 CBDC 본사업이 진행될 때도 적잖은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형 CBDC 상용화 여부, 이번 실험에 달렸다
한편 이번 사업에서는 CBDC의 발행, 유통, 환수, 폐기 등 생애주기별 업무를 포함해 송금이나 결제 같은 실제 기능 서비스까지 실험될 예정으로 한국형 CBDC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한은은 이번 실험 결과에 따라 상용화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CBDC 실험 관련 가장 앞선 국가는 중국이다. 18일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국 내 CBDC 시범 테스트가 이뤄진 유통 거점은 132만개에 이르며 결제 대금은 한화 6조원 수준이다. 미국은 올해 연방준비제도(FEB) 차원에서 CBDC 개발에 큰 관심을 드러냈지만 지난달 말 랜달 퀄스 연준 부의장은 "CBDC가 이미 디지털로 거래되는 달러 대비 큰 차이가 없다"며 "현재 개발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은 역시 이번 사업에서 CBDC의 안정성과 더불어 실제 유통상 이점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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