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우주산업, 5월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선 어떤 과제를 수행할지 관련 정책은 무엇인지를 진단합니다.
▲ 한국천문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오는 2029년 4월14일 지구와 3만160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가는 소행성 ‘아포피스’를 탐사할 계획을 세웠으나, 1분기 예타 조사 심사 대상에서 해당 사업이 탈락했다. 사진은 아포피스 탐사선 형상.(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한국천문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오는 2029년 4월14일 지구와 3만160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가는 소행성 ‘아포피스’를 탐사할 계획을 세웠으나, 1분기 예타 조사 심사 대상에서 해당 사업이 탈락했다. 사진은 아포피스 탐사선 형상.(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2만년에 한 번꼴로 이뤄진다는 소행성의 지구 초근접 현상. 우리나라 위성을 통해 이를 근거리에서 살필 수 있는 ‘아포피스 계획’이 좌초될 위기다. 해당 사업이 예비타당성(예타)조사 심사 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다음 예타 조사 심사 대상 접수는 6월이다. 자연스럽게 공은 지난 10일 취임한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로 돌아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024년부터 2030년까지 3873억원을 투입해 우리나라 최초의 소행성 탐사 임무인 ‘아포피스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1분기 예타 조사 심사 대상으로 해당 사업을 올렸으나, 지난 4월 평가에서 ‘추진 불가’ 판정받았다. 과기정통부 내에서 연구개발타당성 심사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점 △중장기 우주 개발 계획에 해당 탐사가 포함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계 인사는 “과기정통부는 4000억원을 썼는데도 아포피스 탐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책임 소재’를 걱정 하는 것 같다”며 “분명 실패 위험(리스크)이 많은 탐사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4000억원은 소행성 초근접이란 기회에서 결코 아깝지 않은 비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실패를 상정하고 추진해선 안 되겠지만 만약 개발이 좌초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쌓을 수 있는 과학계의 경험을 생각하면 비용은 충분히 투입할만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바뀐 ‘정치적 상황’도 아포피스 탐사의 변수로 봤다. 그는 “향후 진행 상황을 봐야겠지만 아포피스 탐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정책 책임자들도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관점에 따라 아포피스 탐사의 가치가 리스크를 감내할 수준으로 재평가된다면 사업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단 설명이다.

▲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제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제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

시기 정해진 개발 사업…1분기 탈락 ‘치명적’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 국고 지원이 300억원이 넘는 경우 예타 조사를 통과해야 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 예타 조사 대상으로 사업을 올릴 기회는 일 년에 총 4번, 각 분기에 한 번씩 주어진다. 올 1분기 평가에선 아포피스 탐사가 예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다음 분기 평가가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는 만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주산업 진흥은 지난 3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는 ‘우주강국 도약 및 대한민국 우주시대 개막’을 79번째로 국정과제로 선정하며 “미래 우주분야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고 민간 중심 우주산업 활성화를 통해 사회 및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우주개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당 내용에 ‘아포피스 탐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경남 사천 항공우주청 신설 추진 △달탐사선 발사 △달착륙선 개발 △아르테미스 계획 참여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 등 비교적 구체적으로 과제들이 명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포피스 탐사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다음 분기 평가에서 아포피스 탐사가 예타 조사 대상 사업으로 오를지도 미지수다. 과기정통부 내에서 아포피스 탐사를 추진하는 부서가 현재 기조를 ‘검토’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1분기 평가에서 지적된 사안들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2분기 예타 조사 대상에 아포피스 탐사를 올릴지는 미지수”라며 “현재 관련 연구 기관들과 검토를 하는 과정에 있다. 이에 따라 아포피스 탐사 계획을 보완할지, 다른 소행성을 탐사하는 것으로 정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도 문제다. 소행성 아포피스의 지구 초근접은 여타 다른 우주 탐사 계획과 달리 연구개발(R&D) 일정이 정해져 있다. 개발 수준이 미흡하다면 기간을 더 길게 잡아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식의 사업 진행이 불가능하단 의미다.

과학계에선 이 때문에 사실상 ‘우리나라 발사체로 쏘아 올린 우리나라 위성으로’ 지구 초근접 소행성 관측이 불가능해졌다고 본다. 1분기 예타 심사 대상으로 올라온 사업 계획상으로도 개발이 빠듯한데, 향후 예타 심사로 이 일정이 더 늦춰진다면 사업 자체가 불확실해질 수 있단 지적이다. 원활한 아포피스 탐사를 위해선 적어도 2027년에는 발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시기에 맞춰 R&D가 완료될지 불확실하단 점은 예타 대상 심사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최환석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부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결국 장비를 완성도 있게 개발해야 탐사가 진행될 수 있는데, 이런 기기들은 모두 단계별로 R&D 절차가 정해져 있다”며 “발사 시점이 정해져 있는 아포피스 탐사는 R&D 개발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실패로 직결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1분기 예타 평가에서 산업 진행이 결정돼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예산 집행이 됐다면 탐사선(위성)을 빠듯하지만 개발했을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이번 기회를 놓쳐 더욱 상황이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행성 이해 높일 천재일우인데…과학계 “아쉽다”
370m 크기로 추정되는 소행성 아포피스는 오는 2029년 4월14일 지구와 3만160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간다. 달과 지구와의 거리(약 39만km)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는 소행성인 셈이다. 심지어 인공위성보다 더 가깝게 지구를 스쳐 지나간다. 천리안위성과 같은 정지위성은 지상으로부터 약 3만6500km 상공에 있다.

300m급 천체가 정지위성보다 가까이 지나가는 사건은 2만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아포피스 탐사가 소행성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여겨지는 이유다.

국내에선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이 주도적으로 아포피스 탐사 계획을 세웠다. 지난 2월에는 항우연·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와 연구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기도 했다.

천문연은 사업을 총괄하는 동시에 △과학탑재체 제작 △과학 임무 연구를, 항우연은 △발사체와 탐사선 개발 △지상국 업무를, 국과연은 아포피스 궤도에 탐사선을 직접 투입하게 될 4단 킥모터 개발 등을 담당한다는 골자였다. 천문연은 발사 시점도 2027년 10월 중순으로 제시했다. 탐사선이 12.5개월 동안 항행해 아포피스에 10km까지 접근한 이후 동행비행을 수행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도 마련해놨다.

▲ 한국천문연구원이 계획한 우리나라 첫 소행성 탐사 임무인 ‘아포피스 탐사’ 계획.(자료=한국천문연구원)
▲ 한국천문연구원이 계획한 우리나라 첫 소행성 탐사 임무인 ‘아포피스 탐사’ 계획.(자료=한국천문연구원)

만약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됐다면 국내 최초 소행성 탐사 임무가 수행될 수 있었다. 근지구 소행성은 대부분 소행성대에서 유입돼 태양계의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학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또 아포피스 크기의 소행성은 지구 충돌 시 대륙 하나를 초토화할 수준의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국내 연구진은 이러한 천체를 현장에서 관측, 분석해 행성방위(planetary defense)에 필요한 자료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이 계획들이 예타 통과를 전제로 세워졌단 점이다. 약 4000억원의 예산 투입이 없어 2만년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경우 미국 애리조나대가 주도한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의 임무를 연장해 아포피스를 18개월간 탐사하기로 최근 정했다. 아포피스 탐사란 기회를 잡기 위해 당초 계획을 수정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5년마다 세우는 ‘우주개발기본진흥계획’에 아포피스 탐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예타 심사 대상에서 탈락시킨 우리 정부 결정과 사뭇 대조된다.

항공·우주 관련 기업 관계자는 “우주산업 발전을 진흥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경직된 정부 문화 때문에 사업적 기회를 잡기 힘든 경우도 있다”며 “비단 아포피스 탐사뿐 아니라 이번 정부에선 이 같은 기조가 전반적으로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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