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의 두개골 내부와 뇌 신경망의 3차원 영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측정한 쥐의 두개골 내부의 골세포 영상(A·B)과 두개골 밑에 존재하는 뇌 신경망 영상(C).(사진=IBS)
▲ 쥐의 두개골 내부와 뇌 신경망의 3차원 영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측정한 쥐의 두개골 내부의 골세포 영상(A·B)과 두개골 밑에 존재하는 뇌 신경망 영상(C).(사진=IBS)

빛을 모으니 두개골 밑에 감춰진 세포의 모습이 드러났다. 피부를 관통하지 않고도(비침습) 세포 단위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찾아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개발한 3차원(3D) 홀로그램 현미경에 대한 얘기다.

IBS는 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의 연구 성과를 30일 공개했다. 최원식 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부단장(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김문석 가톨릭대 교수, 최명환 서울대 교수는 공동연구를 통해 최근 살아있는 쥐의 두개골을 제거하지 않고 뇌 신경망을 3D 고해상도로 관찰했다. 이들이 개발한 시분해 홀로그램 현미경을 통해서다.

홀로그램 현미경은 2개의 레이저 빛이 서로 만나 일으키는 간섭효과를 이용, 진폭·위상 등 ‘빛의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을 말한다. 시분해 홀로그램 현미경은 이 중에서도 간섭의 길이가 10㎛ 정도로 매우 짧은 광원을 이용, 특정 깊이에서 광신호를 선택적으로 획득하는 특성을 지녔다.

공동연구팀은 시분해 홀로그램 현미경의 특성을 기반으로 물리적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도 신체 깊은 곳의 조직 따위를 관측하는 성과를 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IF 14.136)에 최근 게재됐다. 논문명은 ‘Through-skull brain imaging in vivo at visible wavelengths via dimensionality reduction adaptive-optical microscopy’이다.

공동연구팀의 성과는 자기공명 영상장치(MRI)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이미 상용화된 비침습 진단 기기와 같은 맥락에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시분해 홀로그램 현미경은 MRI·CT와 비교해 해상도가 매우 높다. 나노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해 세포에서의 변화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조용현 IBS 연구원(공동 제1저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MRI·CT와 비교해 관측할 수 있는 신체의 깊이가 얕지만 해상도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MRI·CT가 구조를 파악하는 수준이라면 이번에 개발한 현미경은 세포 단위의 변화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암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조직을 떼서 검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조직을 떼지 않아도 암과 같은 질병을 조기에 검사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진이 개발한 고심도 3차원 홀로그램 현미경 모습. 광신호 비율을 증가시키고 영상획득 속도와 깊이를 증가시켜 살아있는 생물체의 신경망까지도 관찰 가능하다.(사진=기초과학연구원)
▲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진이 개발한 고심도 3차원 홀로그램 현미경 모습. 광신호 비율을 증가시키고 영상획득 속도와 깊이를 증가시켜 살아있는 생물체의 신경망까지도 관찰 가능하다.(사진=기초과학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이 기술을 우선 동물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조 연구원은 “빛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려면 강한 에너지를 포함해야 하는데 현미경에서 사용되는 빛은 발표 등에서 사용되는 레이저 포인트 수준의 에너지라 큰 부작용은 없다고 생각된다”면서도 “동물 실험을 통해 성능을 검증한 뒤 인체 실험도 구상하고 있다. 안과 질환 진단에 해당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지 살피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연구팀은 앞서 2019년 시분해 홀로그램 현미경을 통해 절개 수술 없이 살아있는 물고기의 신경망을 관찰한 바 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물고기보다 두꺼운 두개골을 가진 쥐의 신경망을 이번에 관찰했다. 그간 쥐의 경우 두개골에서 발생하는 심한 빛의 왜곡과 다중산란으로 두개골을 제거하거나 얇게 깎아내지 않고는 뇌 신경망 영상을 얻을 수 없었다.

빛을 이용해 몸속 깊은 곳을 관찰하기 위해선 충분한 빛 에너지를 전달해 반사되는 신호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생체 조직에서 빛은 다양한 세포들에 부딪히며 생기는 다중산란 현상과 이미지가 흐릿하게 보이는 수차로 관찰이 쉽지 않다. 수차는 굴절되는 정도에 따라 빛의 도달 속도가 달라지는 현상으로, 빛이 한 점에 모이지 않게 만들어 정확한 이미지를 얻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생체 조직 같은 복잡한 구조에서 빛은 여러 번 무작위로 진행 방향을 바꾸는 다중 산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빛이 가진 영상 정보를 잃어버린다는 점도 문제였다.

▲ 입사각에 따른 반사 신호의 특성. 물체의 크기가 작거나 선형 구조일 경우, 입사각이 바뀌었을 때 측정되는 단일산란파 반사 신호의 파형은 비슷하게 유지된다(A). 하지만 다중산란파 반사 신호의 파형은 서로 유사성 없이 변화한다(B). 이러한 파면사이 특성을 이용하면 단일 산란 성분과 다중 산란 성분을 서로 분리해낼 수 있다.(자료=기초과학연구원)
▲ 입사각에 따른 반사 신호의 특성. 물체의 크기가 작거나 선형 구조일 경우, 입사각이 바뀌었을 때 측정되는 단일산란파 반사 신호의 파형은 비슷하게 유지된다(A). 하지만 다중산란파 반사 신호의 파형은 서로 유사성 없이 변화한다(B). 이러한 파면사이 특성을 이용하면 단일 산란 성분과 다중 산란 성분을 서로 분리해낼 수 있다.(자료=기초과학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정량화한다면 보다 더 깊은 곳까지 관찰 가능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보고자 하는 물체와 한번 부딪쳐 반사된 빛(단일 산란파)만 골라 수차로 인한 파면 왜곡을 보정해주면 깊은 곳까지 관찰할 수 있는 점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했다. 다중 산란파를 제거하고 단일 산란파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기술이 이번 연구 성과의 핵심이다.

공동연구팀은 다양한 각도로 빛을 넣어도 비슷한 반사파형을 가지는 단일 산란파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단일 산란파만 골라내는 방법을 고안해 뇌 신경망에 기존보다 80배 많은 빛을 모으고, 불필요한 신호를 선택적으로 제거해 단일 산란파의 비율을 수십 배 증가시켰다.

조 연구원은 “매질(파동을 전달시키는 물질)의 고유모드를 분석하는 수치 연산으로 빛의 파면 사이에 보강간섭(같은 위상의 파동이 중첩될 때 일어나는 간섭)을 극대화하는 공명 상태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기존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깊이에서도 빛의 파면 왜곡을 보정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두개골 제거 없이 쥐의 뇌 신경망 영상을 고해상도로 얻어냈다.

조 연구원은 “비표지·비침습(형광표지를 사용하지 않고, 생체조직 절개도 없이) 방식으로 얻은 쥐의 뇌 신경망 영상은 해당 기술의 응용 가능성을 증명한 성과”라며 “다양한 의·생명융합 연구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나노 단위의 측정 정확성이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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