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외고폐지 해프닝에 다시 본 ‘학벌사회’

  임주환 2009. 12. 19 (31) 삶/여가/책 |

hakbul<학벌사회> 김상봉 지음. 한길사 펴냄.

“뒤집어진 수레바퀴가 헛되이, 구르는 힘이여.”

몇 달 전 국회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외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지목하고 폐지론을 제기하고 나섰을 때, 나는 잠깐 이성복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렸던 것 같다. 내게는 외고를 없애면 사교육이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가 콘돔을 없애면 불륜을 근절할 수 있다는 주장만큼 황당하게 들렸다.

학부모들은 왜 자녀들을 외고에 보내고 싶어 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외고를 명문대 입학을 위한 베이스캠프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명문대 입학은 왜 절실한가. 한국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학벌의 중요성을 뼛속깊이 새기고 살기 때문이다. LA에 사는 동포들끼리도 연고전을 벌이는 게 바로 한국인들 아닌가.

17년 전 이맘 때, 나는 재수 끝에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날 밤 자정 무렵이었을까. 주무시는 줄 알았던 아버님이 갑자기 방문을 왈칵 밀치고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 재수 실패한 걸 평생 후회하며 살 거다.” 딱 그 말씀 한마디를 들었다. 대학생활 초기 이런저런 이유로 방황의 시간을 보냈지만, 어쨌든 나는 학벌의식 따위를 참으로 저열하게 여기는 동료들이 대부분인 ‘유별난’ 신문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번도 적극적으로 학벌문제를 입에 담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재간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채용, 승진 등 공식적인 사회활동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일까.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국사회 곳곳에서 학벌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고폐지 해프닝을 보면서 먼지 쌓인 책꽂이에서 <학벌사회>를 다시 뽑아봤다. 오랫동안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내며 한국의 대표적인 ‘재야’ 철학자로 통했던 김상봉 교수(‘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는 4년 전 전남대 철학과 부교수직에 특채로 임용됐다. 부산 출신으로 연세대 철학과를 나온 김 교수는 당시 전남대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을 뿐더러, 철학과 교수 11명 중 누구와도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없었다. 당시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아마도 한국 대학사회 초유의 일이자, 사람이 개를 문 것과 비슷한 대사건”이라고 말했다. 교수님과의 인연이라 해봤자 내가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하던 7년 전 몇 차례 뵈었던 것 정도가 고작이지만, 이글을 쓰는 지금 교수님의 유머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벌사회>는 주요내용을 짧은 글로 간단하게 담아내는 게 무리라 할 만큼 밀도가 높은 책이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책에서 인용한 2002년 11월11일 <중앙일보> 기사 하나를 살펴보자. 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아파트 베란다 가스배관에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이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가난이나 질병도, 가정의 불행도, 친구들과의 불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죽기 얼마 전에 쓴 일기에서 아이는 이렇게 되물었다.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김상봉 교수의 <학벌사회>는 절박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무엇을 위해 아이들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일까?

김상봉 교수는 그 이유가 무슨 대단한 학구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이 땅에서 아이들은 최고의 지배학벌인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 그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삶을 걸고 공부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죽음도 있었다. 2000년 12월, 4수를 하고도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한 수험생이 신림동의 한 여관방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는 그해 고려대 경영학과에 특차 합격한 상태였다. 유서에는 “아무래도 고려대에는 다니지 못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서울대와 다른 대학의 차이는 학문과 교육의 질이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 사람들은 모든 대학을 서열화 시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서열의 기준은 학문이 아니라 권력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졸 출신이었지만, 참여정부의 첫 번째 수석비서관 인사 때 문재인 민정수석을 제외한 12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민간영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월간 현대경영>이 조사한 한국 10대기업 대표들의 이력을 보면, 142명 중 62명(43.6%)이 서울대 졸업생이다. 19살 때 치른 수능시험 성적은 평생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한다.

학벌의식이라는 괴물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학벌은 같은 학벌을 보유한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하버드 출신들끼리 친한 것이나 서울대 출신들끼리 친한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흐를 때, 학벌문제는 열등한 약자들의 ‘원한(resentment)’ 표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저자는 문제의 핵심이 ‘우리 학교’라는 의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네 슈퍼마켓은 그곳에 오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을 ‘우리’로 만들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처음 만난 나와 저 사람이 ‘우리’가 된다는 것인가. 이처럼 학벌을 하나의 공동주체로 만들어 주는 ‘우리 의식’을 김 교수는 학벌의식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의 학벌의식에 대한 탐구는 철학의 근본물음이라 할 ‘주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이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내가 나를 의식할 때, 나는 나다. 그러나 누가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반성적으로 의식한다는 것은 단지 내가 나를 내 마음 속의 비인격적 거울에 비추어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 반성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밖에 존재하는 너를 의식하는 한에서만 내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설 수 있다.

김 교수는 인간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주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 만남은 가족공동체의 틀을 넘어 기업 같은 사회집단 구성원으로, 다시 한 국가의 시민으로 확장되며, 최종적으로 보편적 인류의 이상을 공유한 세계시민이 되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사회적 주체의 본래성은 이처럼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공동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정된 자기동일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학벌은 자기의 동일성을 지양하지 않고 단순히 확장하려는 의지가 만들어진 유사가족에 불과하다. 학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를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어떤 집단에 귀속하는 구성원으로서만 자각한다. ‘나는 서울대 출신이다’, ‘나는 고려대 출신이다’ 따위의 퇴행적 집단의식 속에서만 자기 존재의 안정감을 확인하는 나약한 자기의식이 바로 학벌의식이다. 이를 통해 자기보다 열등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독점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이런 학벌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기가 속한 학벌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자기의 존재 역시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아직 어떤 학벌에도 진입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배학벌 진입경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는데, 이것이 입시전쟁이라는 한국사회 특유의 계급투쟁이 가진 참모습이다. 2002년 현재 한국사회의 사교육비 지출액수는 13조6천억 원에 이른다. 사교육비를 쓰는데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작동하지 않는다. 학벌사회에서 자식을 기르는 부모는 아무리 많은 돈을 쓰더라도 자식을 위해 남보다 더 나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광풍과 교실붕괴를 해결할 진정한 해법은 무엇인가?

흔히들 사교육비를 없애기 위해 공교육을 내실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의 학급당 학생인원이 10명 이하로 줄어들고,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지더라도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서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수는 4000명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친 학벌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정당한 근거없이 권력을 독점하는 학벌의식을 물리치기 위해, 김상봉 교수는 대학의 평준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서울대 학부를 폐지할 것, 국·공립대 신입생 공동전형을 추진할 것, 연·고대가 서울대의 자리를 꿰차는 일이 없도록 서울대 대학원 입학자격을 국·공립대 출신으로 제한할 것, 공직영역에서 독점을 방지할 공직할당제를 도입할 것 등을 제안한다.

아이들이 서울대에 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회는 끔찍하다. 나도 어느덧 3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게 내 책임이 아니라고 떠밀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학벌사회가 타파될 수 있을까. 나는 김상봉 교수님의 낙관적 의지를 흠모하지만, 학벌사회의 극복이 쉬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러냐고 묻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알고 계시지 않은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임주환

중소기업, 노동, 사회적 기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직 신문기자입니다. '게으름뱅이의 전망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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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Responses to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외고폐지 해프닝에 다시 본 ‘학벌사회’”

  1. 최은미

    사회전체가 학벌 위주화 되어 참되고 광범위한 진리의 추구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인가
    오로지 썩고 냄새나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을 숨으로 들으키고 관행적인 것만을 붙잡고 학벌에 연연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학부모나 학생들…그들을 학벌체계로만 밀어가는 모든 지식인들과 관료들…..속이고 속는 세상에 만족하며 살려고 할 뿐이다.
    썩은 물과 같은…관념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진정한 민주주의 애국주의 세계화..참된 삶이 이루어 지지 않을 까… 정말 우습고 냄새난다…상쾌한 공기가 나는 곳으로 가고 싶다..앞으로는 학벌이니 뭐니 하는 소리로 없어졋으면 한다..좁은 땅에서만 잘난 체하면 뭐하는가 말이다.학벌때문에 제정신으로 순수히 살아가는 사람들 오염시키지 말란 말야..
    독버섯 들 같으니… 주제를 알아야지….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낫는데… 착각도 유분수지.. 인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 거야.. 해외에서..

    답글

    문형범 답글:
    @ 2009-12-20 08:35

    학벌사회를 다른 말로 능력중심사회라 이릅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에 맞는 직책을 가지는 것이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완전히’ 맞지는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역시 ‘완전히’ 틀리지도 않을걸요?
    학벌이 아무 쓸모 없고 관행적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학창시절을 보내셨는지 의문이 드네요.

  2. 지나가던

    저는 아직 미성숙한 외고생입니다. 외고폐지로 시작한 화두에 공감해서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제가 평소 외고폐지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제 개인적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근본 대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의 원인이 어디다, 어디다라고 주장하며 계속 교육정책을 바꾸지만 그 진정한 원인은 바로 학벌 사회라고 생각해왔기에 밑의 글에서는 더더욱 크게 공감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 학교에 온 이유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고싶어서니까요… 설사 외고가 폐지된다고 해도 제2의외고는 얼마든지 가능할뿐더러 애초에 원인이 외고가 아니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겠지요… 그런데 책의 결론이 안타깝습니다. 저도 그 분의 낙관적 의견을 존중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불가능할 것 같아요. 또 지금의 과한 경쟁은 현대 세계화 사회에서 진정 경쟁력을 갖기 위한, 인간이 자원인 이 나라에서의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 씁쓸합니다.

    답글

    나그네 답글:
    @ 2009-12-19 22:42

    외고 본래의 설립 목적에 맞는 정체성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

    박재성 답글:
    @ 2009-12-20 08:08

    저는 27살의 청년입니다. 저도 ‘지나가던’님과 비슷한 유형의 고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핀란드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생각의 한계를 좀 넓혀보면 어떨까요?
    무엇이 진정한 경쟁력일까요?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일정 수준이상의 지식을 넓히는것일까요?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더 원어민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일하고 있는 핀란드의 방식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여지는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핀란드도 인구 500만의 소국에 자원도 펄프이외에엔 딱히 없습니다. 한국보다 인적자원이 더더욱 필수적인 나라이지만 교육방식은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교육의 목적은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에 가깝지, 성적순으로 선착순시키는 한국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PISA같은 국제학력평가에서 한국을 앞서고 있습니다.

    저도 답이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기가 힘들지만 좀 더 유연하게 생각을 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지나가던’님에 대한 답글과는 별개로 제 의견을 남기자면,
    여기 소개된 책의 저자의 주장의 취지는 공감하나 그것도 전체 큰 문제에서 일부분만을 처방하는 것 같아서 동의하진 않습니다. 이유는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남을 이겨야 내가 잘 된다’라는 의식이 사회전반에 깔려있기에 일부분의 정책의 변화로는 경쟁의 또 다른 형태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형범 답글:
    @ 2009-12-20 08:33

    미성숙하셔요. 어째서, ‘특목고’폐지가 아닌 ‘외고’폐지인지 이유를 찾아보세요.

  3. 무명

    저는 S대 학부에 재학하는 한 학생입니다. 학벌의식을 집단 속에서만 자기 존재의 안정감을 확인하는 나약한 자기의식으로 보는 관점이 틀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식이 정말 비판받을만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따름이니 말입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 저는 S대의 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는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S대에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인식하는 건강한 인격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다수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무지하고 나약하고 쓰레기보다도 가치없는 자신의 자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에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비판받아야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2년 World Cup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TV 앞에서 한국팀을 열심히 응원했던 그 모든 사람들은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책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그같은 나약한 자기의식을 통해 ‘자기보다 열등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독점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면 그건 문제의식을 가질 만하지만 그 자기의식이 반드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그 주체의 문제이지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나약함의 문제는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건전한 학벌주의는 존재할 수 없을지 의문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책이 참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친구들이랑 그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해보야 할 것 같군요.

    답글

    김영욱 답글:
    @ 2009-12-20 16:17

    저는 서울 소재 하위권 대학에 다시는 학생입니다. 미욱한 소견이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다 나약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면 자존감을 갖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창시절 다른 분들보다 열심히 공부하셨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니고 계시는 학교가 자랑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라도 자랑스러웠을 겁니다.
    문제는 공동체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다른 공동체를 배격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기자님이 쓰신 내용은 여러가지 근거와 사례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문제가 되는 사안이 왜 문제가 되는지 분석하는 글에 더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학벌주의에 의한 배타성과 폐쇄성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현상입니다. 그건 무명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쓰신 말씀 중에 ‘자기보다 열등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독점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면 문제의식을 가질 만하다고 쓰셨는데 오늘날 사회를 보면 문제의식을 가질 만하지 않나요?

    유명 답글:
    @ 2009-12-20 20:51

    자기가 속한 단체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일 것입니다. ‘모교’에서 느끼는 따뜻함, 옛 추억들..그리고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반가울 수 있겠죠. 하지만 일에 있어서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 하겠죠.
    개개인은 참 나약하죠.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일하는 기계라고 느끼게 되고요. 또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은 그만큼 욕심도 많고 경쟁적이죠. 잘나가는 친구들하고 비교당하기 쉬우니까 성공에 대한 열망도 크고요.
    어려운 길이 있고 쉬운 길이 있을 때..힘들고 불확실한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아무래도 쉬운 길 쪽으로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학벌에 기대게 되는 거죠. 이런 마음 들죠..이게 나쁜 건가? 내가 가진 걸 이용하는 것 뿐인데? 그리고 알아 둬서 나쁠 거 없지 뭐..대학교 선밴데..이렇게 특정학교 출신 수만명이 행동한다고 했을 때..어떤 현상이 빚어질까요? 그리고 내가 선배한테 도움을 받은 것 만큼 후배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좋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솟죠.
    배타성과 폐쇄성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타 집단을 내놓고 무시하진 않죠..사실 사이좋게 지냅니다. 하지만 “걔 우리 학교 나왔어?” “아니. 딴데.” “아~” 이런식으로 나와 같은 소속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게 되고..저자신도 모르게..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동문 후배를 챙기게 되더라구요. 참 신기한 것 같아요. 물론 같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일하면서 정말 친해지고 서로 일에 있어서 신뢰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학벌이 하나의 큰 힘으로 작용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학벌 가족주의에 저도 모르게 젖어들게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안그랬는데..제가 상황이 어려웠을 때 선배들의 도움을 받고 나서는 저도 그만..ㅋ 저도 나약한 인간이지라

  4. 무명

    저는 S대 학부에 재학하는 한 학생입니다. 학벌의식을 집단 속에서만 자기 존재의 안정감을 확인하는 나약한 자기의식으로 보는 관점이 틀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식이 정말 비판받을만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따름이니 말입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 저는 S대의 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는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S대에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인식하는 건강한 인격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다수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무지하고 나약하고 쓰레기보다도 가치없는 자신의 자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에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비판받아야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2년 World Cup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TV 앞에서 한국팀을 열심히 응원했던 그 모든 사람들은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책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그같은 나약한 자기의식을 통해 ‘자기보다 열등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독점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면 그건 문제의식을 가질 만하지만 그 자기의식이 반드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그 주체의 문제이지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나약함의 문제는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건전한 학벌주의는 존재할 수 없을지 의문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책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친구들이랑 그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해보야 할 것 같군요.

    답글

  5. 임주환

    책의 내용을 소개하다보니 분량상 담지 못했지만,
    김상봉 교수님은 학벌사회=경쟁력 신화를 깨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한번 책을 직접 읽어보실 것을 당부드리고 싶네요.
    어떤 사회적 문제의 해법은 벼락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생각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일 테니까요.

    답글

  6. 저도 30대중반

    저는 기자님처럼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하고 지방의 모 국립대에 입학 했었던 학력고사 세대 입니다. 머리가 나빴다 아니면 공부를 해도 안되더라 라고 인정하기는 싫습니다. 솔직히 학벌이라는 간판이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작용할 줄 알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는게 제 변명입니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 제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입니다. 저는 군 제대 후에 어학 연수를 가서 현지의 대학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내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물론 있었습니다. 정말 운좋게…한국에 와서 좋은 회사도 들어가고 업무로서 인정도 받고 지냅니다만 참 놀랍게 생각되었던 점은…어느 회사 면접을 가든 어느 사람을 만나든 제가 졸업한 대학 보다는 ‘그럼 한국에서는 어느 학교를 다녔냐’는 점을 가장 궁금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입학했던 대학을 알아야 나와 당신을 비교할 수 있겠다…당신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겠다란 의미로 받아 들여지더군요. 피나게 노력하며 지내왔던 학부시절과 대학원 시절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리고 단지 16~17년 전 19살 무렵의 나와 내 성적으로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울대 출신이라면 괜히 우러러 보는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 보다 못한 대학간판을 가진 자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비웃고 OO대학 주제에…하면서요. 인간의 능력 차이가 그렇게 대단히 클까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게 좋을텐데….학교 이름으로 서열화 하고 이름으로 사람 됨됨이와 능력을 평가하고 학교 이름만으로 배타적인 네트워크를 결성하는게 이 나라 이 사회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 입니다.

    답글

  7. 임주환

    글 분량을 맞추느라 담지 못했지만,
    이 책에선 학벌사회=경쟁력 신화를 깨는 논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온전한 해법인지에 대한 판단을 떠나,
    한국사회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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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dirty-harry

    일본에선 아이가 걷고 말할 수 있을 때부터 예절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가르칩니다. 정작 사회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영어는 잘하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일까요, 아니면 좀 미숙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일까요. 정답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좀 미숙하더라도 그 사람은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은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의 현 교육체제에선 오직 ‘입시’ 하나만을 위해 초등학교 6년, 중,고 각각 3년씩 12년을 바칩니다. 그 안에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오직 ‘경쟁’입니다. 남들보다 몇점이라도 더 맞아야 한다, 남들보다 좀 더 앞서나가야 한다 만을 가르치는 현 세태에선 인간성의 결여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지식과 교육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배우는 교육이 이 세상의 전부일까요?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는 입시가 그만큼 절대적 가치가 있을까요? 정답은 ‘no’입니다. 왜냐, 지식의 바다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에도 수 많은 지식들이 쏱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즉 이제부터 필요한 ‘학생’들은 그 지식을 흡수할 ‘탐구성’과 그걸 응용할 ‘창의력’을 지닌 학생들이 필요합니다. 오직 표기된 지식의 누가누가 더 암기 잘하나 식의 교육은 더 이상 쓸모없는 구 시대의 넝마입니다.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학벌사회가 아닌 교육의 귀족화입니다. 사회의 특권계층만이 고급지식을 습득할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은 신 계급의 창출이 이루어질 조건입니다. 그건 절대로 깰 수 없는 벽으로서 절대로 생성되서는 안될 보이지 않는 벽입니다. 하지만 학벌사회의 더러운 이득자들은 이 벽을 세우려고 한시바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번 세워진 교육의 귀족화는 지위의 세습을 위해 부당한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자신의 학벌지위 세습과 학벌지위 강화를 위해 온갖 더러운 구실들과 냄새나는 손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우리 사회 구성원 각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곧 경험할 시대는 국가간의 보이지 않는 초경쟁입니다. 이제까진 사회에서 부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했다면 국경의 울타리가 무너진 지금, 세계인들과 함께 경쟁해야합니다. 하지만 이 경쟁을 위해선 우리 사회의 단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 교육체제의 우수자들이 과연 이 단합을 위해 힘쓸까요?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살아온 그들은 단합 그 자체를 모릅니다.

    학벌주의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방치할 수록 그 더러운 썩은 고름은 몸을 잠식할 것이고 최후엔 그 몸 자체의 생명을 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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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학생

    인간이 자원인 이 나라에서 경쟁이 유일한 방법이라는것, 그건 자본주의라는 경제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요. 정말 문제는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우리 사회에서 주된 경쟁은 대학입시경쟁이죠, 나머지는 다 그것에서 파생적인 것이니) 그 사람들에게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느냐 주지 않느냐 아닐까요.
    인생에서 한 번 실패했다고 그들이 두 번 세 번 실패하리란 보장도없는데 한국은 온갖 방법으로 정당화시키며 대입에 실패한 자들을 두 번 기회도없이 도태시켜버리는것, 그게 문제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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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맞는말이지만....

    이 글을 계속 공감하면서 읽어내려왔다. 나는 올해까지로 수능을 두번치른 수험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여전히 나를 충족시켜주지못하고있다. 나 역시 대학 서열화속에서 허우적거리고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이 나약한 인간은 위 글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현 제도에 순응하고말것이다. 현 사회의 흐름이 그러하니 따를수 밖에 없다는 핑계를하면서..비판은 하되 실천은 하지않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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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학벌에 연연하지 않고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사회의 벽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그깟 고등학교 3년 남은 80년 인생 중 짧디짧은 시간, 그것도 한 순간에 시험에 의해 평생을 학벌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물어뜯고 짓이기는 삶 속에 남는 것은 말라비틀어지 시체더미 뿐이겠죠. 그 위에선 승리자는 진정 행복할까요? 아마 자기가 울어야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웃고있을 겁니다. 결국 학벌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일 뿐, 실체가 아닌데, 누구나 쉽고 편한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단정짓고 평가하려고 들죠. 결국 근본적인 발전은 커녕 정신적 스트레스 시달리며 인간성은 퇴보하고,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점점 더 허상에 매달리고 난무하는 거짓 속에 진실은 묻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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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실업고출신

    지방대학에도 다녀보지못한 저로써는 이런글에 댓글을 남기는것마저도 민폐일지 모르겠습니다. 패배의식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경험한 이 사회구성원들의 관념을 외면하지 못하는 현실에대한 타협이라고 해두죠.
    이글의 주제인 학벌주의는 굉장히 오래된 민족성과 관련깊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당대명망있는 학자밑에서 수학한 사람들이 느끼던 우월한 감정,
    당파싸움이란 말로 알려진 그들간의 기득권다툼이
    지금의 학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편가르기를 좋아하고 무리를지어 기득권 행사하는것을 좋아하는 민족성이
    지금에와서 다른형태로 진화한것이 학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알아야 대책을 바로세울것인데
    그 원인마저도 의견이 분분한듯합니다.
    제가 생각한 대책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한다” 입니다.
    윗글에서처럼 호랑이굴 밖에서 왈가왈부하는사람들은 열등감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진정 의식있는 많은사람들이 직접 기득권세력의 중추에 자리잡아서
    스스로 기득권의 모순을 설득하고 그 권리를 포기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만 조금씩 변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윗기사관련내용은 아니지만 문득 얼마전 TV에서 방송된 내용이 생각납니다.
    내부비리고발에 대한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내부비리고발자를 배신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내부비리고발율도 OECD국가중 최하위더군요.
    저역시도 학벌이좋지않아서 학벌의식은 없지만 또 다른 형태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못하는
    의식의 소유자입니다. 사소한 기득권 이라해도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않더군요.
    짧은 생각이지만 이 사회에서 학벌의식을 타파하는것보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기득권세력으로 포함되는것이 훨씬 더 쉬워보이네요.
    지금 사교육에 열올리고있는 부모님들 맘이 이런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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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몰라이것아

    에혀

    한국에 대한민국 없고 조선만 있는듯.
    사농공상 그대로고 사회가 철저히 계급화 된듯. 사회가 계급화를 만들엇다기 보단
    사람들이 스스로 계급을 그은듯. 일자리 모자라 죽겟다고 88만원세대 징징대지만
    공장에 노동력 모자라서 동남아에서 인력데려오는건 뭐?

    결국 “공장싫어 – 공장은 천해 –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할래 – 사무실은 괜찮아”

    이 학벌주의는
    이런 의식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듯.(혼자생각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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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문형범

    사교육과 외고를 연관시키는 것을 틀렸습니다.
    사교육을 논하시려면 ‘특목고’를 논하셔야겠지요.
    외고폐지의 주된 논리는, 사교육에 연관되는 거라기 보다는 외고가 원래 목적인 외국어교육의 영역을 벗어나 입시기관화된다는데 있는 거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자사고, 과학고 등의 특목고들, 특수목적에 맞는 학교들에게까지 폐지논란이 번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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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의견 - 1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 분석 잘 봤습니다.
    물론 박재성님처럼 그 처방에는 동의하진 못하지만요.
    어느 하나 단편적으로 뜯어내 처방할 사회의 범위는 넘어선 거 같습니다.^^
    그래도 꾸준한 문제제기와 방법을 찾아감은 필수적이겠죠~
    인생의 가치에 대한 사회철학이 새로운 탄생을 해보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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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주부

    좀 더 깊이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가 아니라 자본 사회입니다.
    서울대학 안 나와도 일류대학 안나와도 아주 만족하며 사는 사람 제 주위에 많습니다.
    부모 잘 만나서 돈 많이 물려 받은 사람들이죠.
    그네들은 일류대학 가려고 애쓰지도 않더군요.
    일류대학 안나와도 잘먹고 잘입고 대접받으며 사는 자신의 삶을 잘 알기에
    자식들도 굳이 일류대학 보내려고 하지도 않더군요.
    단지 관심사 라면 어쩌면 세금 덜 낼까?? 그게 그들의 고민이라면 고민이랄까..

    서울대학 나와서도 반지하 방에 살며 학원 강사하는 사람도 보았구요.
    일류대 나왔어도 멀고살기 위해 장사꾼으로 회사원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일류대 나왔다고 사회에서 호락호락하게 먹고살게 해주는 사회 아닙니다.

    사는데는 뭐니뭐니 해도 머니입니다.
    돈이 최고인 사회이지요.
    공부 못한 제 친구 얼굴하나 이뻐가지고 수백억 재산가 아들한테 시집가서
    친구들 중에서 제일 잘삽니다.
    그친구 남편역시 삼류대학 나왔지만 로타리클럽인가 먼가 부회장 하면서 잘 삽니다.

    학벌사회 아니고 자본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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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수학요괴

    현 수학컨텐츠 회사의 이사이며 학원강사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용어입니다.

    평생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공,사의 구분이란 참으로 씁쓸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정책입안자들의 착각이 있습니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내실화 하면 사교육은 줄어들것이라는..

    이른바 사교육은 공교육의 문제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교육 내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지요…따라서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취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고 더불어 학벌주의는 계속되리라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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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지나다..

    그냥 “모두 평등한 곤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하자.”
    라고 말하시면 되겠네요. 괜히 길게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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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왜사는가

    기본적으로 자기가 왜사는지정도는 생각을하고 살아야합니다. 잘먹고잘사는걸 인생최대의

    목표로 삼는이들과는 기본적으로 대화가안되는겁니다. 지나가는 강아지와 대화가안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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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교사

    학벌사회.. 깊이 공감합니다. 학벌=부의 세습아닐까요?
    핵가족화 되면서 또 한자녀의 가정이 늘어갈수록 부모들은 자신들이 더 고생하더라도 소중한 자녀들만은 부모 사후에도 고생하지 않고 가능하다면 평생 편안히 살 수 있는 위치에 올려 주고 싶은게 한결같은 부모마음일겁니다. 설령 그것이 지탄받을지라도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소중한 하나뿐인 자식을 위한 일인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자식이 평생 편안한 위치.. 그것이 바로 이 사회에서는 학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부모세대는 누구나 다 아는 변하지 않는 진리인것임을요.자녀들이 많았던 과거에는 부모들이 사실 자녀들을 다 돌볼 겨를이 없어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겨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정말 능력있는 놈이 지 스스로 공부해서 일류도 가고 삼류도 갔지요. 허나 지금은 한자녀에게 두 부모가 올인하여 비싼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일류대학에 골인할때까지는 모든 것을 참는거죠. 사실 고액 사교육이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자녀 가정이 늘어날수록 일류를 위한 학벌 사회를 더 심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자녀를 위해 오히려 한자녀를 두는 부부도 많으니까요… 슬픕니다만 현실입니다.
    뾰족한 대인이 없으니 더 안타깝네요, 언제까지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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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프로메테우스

    반갑습니다.
    현 고등학교 삼학년 올라가는 학생이구요.

    글을 읽어가면서 안타까운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학벌’ 이라는건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사람하나하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버린지 오래아닌가요.

    그런지만 사회생활은 하는데 있어서 꼭 학벌이 아니고 여러가지로 평가를 받습니다.
    돈이라던지, 외모라던지, 직장이라던지, 타고다니는 차. 하다못해 옆에 끼고다니는 여자까지요.

    자. 이런 사회가 하나하나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다는 느낌을 저역시 받습니다. 본질적인 가치가 무시되어버린 사회가 되어가거든요.
    사실 그렇지않습니까. 우리나라사회에서 ‘남들보다 더’ 라는 의식만 강합니다.
    그런 요소요소중에 ‘하나’ 일 뿐입니다. 학벌은
    그 대상이 ‘청소년기’ 에 해당하는 학생이고, 또 그게 긍정적인 영향일리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제 저도 느끼게 된건.
    그 평가를 받는 요소요소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한것이 학벌이고 .
    다른 요소에 비해 ‘개개인의 노력’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는걸 느꼈습니다.
    그나마의 평등이랄까요. 서울대가는데 이새끼는 올라오지 말고 이새낀 올라오란법 없으니까요.

    몇달안되지만 공부를 하게되면서 느꼈습니다.
    딱히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한부분도 모르겠고. 그냥 본인이 인식해서 목표잡고 수능에대한 면밀한 분석과 적절한 공부량만 받쳐주면 얼마든지 혼자 할수있겠다는걸요.

    학벌이 없으면 대체할것도 솔직히 딱히없습니다. 학벌이라는게 당연히 안좋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님 말대로 외고가 없다고해서 달라질건 없겠죠.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이상… 지금의 학벌중심의 사회도 하나의 ‘현상’ 에 불과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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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조기유학생아빠

    윗분들 글 모두 공감이가는 좋은 말씀들이네요.
    전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확신합니다.

    바라건데 우리사회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하는 다양성에대한 이해와 약자에대한 배려를 늘려간다면 보다 살맛나는 세상이되지 않을까요. 경쟁에서의 승리가이 목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삶이되도록 함께 노력해봅시다. 좋은글들 잘읽고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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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이현

    문제의 핵심은 대학의 평준화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바로 사회의 문제지요.

    즉, 학력과 학벌의 사회가 아닌 능력위주의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고졸 사회’ 가 되어야 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가 나가서 당당히 취직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할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대학나와서 별 볼일 없이 사는 인생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대학들어가려고 들어간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 등 제비용, 그 동안의 시간 등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 합리적입니까

    사회의 완전한 의식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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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ㅇㅇ

    학문을 학문으로 보느냐 학문을 권력으로 보느냐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지식을 위한 학문인가 권력을 얻기 위한 학문인가…

    한국은 확실히 후자겠지요.

    후자기 때문에 일류 대학을 나오고도 자신이 뭘하는지, 뭘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라 봅니다.

    답글

  25. 구자경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과연 노력만으로 서울대학을 갈수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교육을 몇억정도 시키면 서울대학을 갈수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선천적으로 공부에 집중할수잇는 두뇌와 사고논력이 태어날때부터 형성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나라의 국민들은 노력만으로 서울대학을 갈수잇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서울대학에 들어가는 애들은 소수인데, 온통 여기에 집중을 하니, 마치 외고때문에 자기자식이 서울대학을 못갔다는 정치적 논리을 펴는것입니다.

    다만 중요한것은 이 나라가, 부의형평성을 공정하게 나누어줘야 하는데, 일류대학출신들이 이것을 많이 차지하니,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애들을 온통 서울대을 보내려고하는, 미친짓을 하는것입니다.

    결론은 서울대학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때, 진정한 학벌사회의 부작용이 사라질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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