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IT 용어, 쉬운 우리말로 못 바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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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한때 온라인에서 ‘보그병신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 있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의 ‘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시대의 패션언어를 찾아서‘란 글이 계기였다. 김홍기 큐레이터는 이 글을 통해 조사를 제외하곤 외래어 발음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긴 국내 패션 잡지 글을 지적했다. 한국어로 쓸 수 있는 대목도 무리하게 외래어를 남발해 늘어놓았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문득 정보기술(IT) 관련 용어도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받은 한 보도자료엔 “사용자의 비즈니스 요구 사항에 맞게 IT 인프라 자원을 할당하고 배치하는 서비스 프로비저닝을 네트워크 엣지 상에서만 요구함으로써…”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보그체까지는 아니지만 ‘엔터프라이즈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 스마트카까지…. IT가 사용자 삶 곳곳에 쓰이는 시대가 왔다.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IT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지만, 해외 IT 용어를 그대로 발음만 딴 채 옮겨쓰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이브리드, 에자일, 인사이트, 모듈 등 우린 이미 너무 많은 외래어를 의심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번 블로터 포럼에서는 범람하는 IT 외래어를 되도록 우리말로 순화해 쓸 수 없는지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연구원과 국내외 기업 홍보담당자가 함께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국립국어원과 손잡고 1993년부터 정보통신표준용어집 간행, 정보통신 용어 표준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기업으로는 3D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 해외업체 다쏘시스템의 안자현 다쏘시스템코리아 홍보부장과 국내 사용자 경험(UX)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투비소프트의 김정희 팀장이 함께했다. 이들은 홍보 담당자로서 현장에서 정보통신 용어를 일반 사용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운점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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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 2013년 4월25일 목요일 오후 4시30분~
  • 장소 : 블로터닷넷 사무실
  • 참석자 : 김성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표준화본부 표준협력부 부장, 김정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표준화본부 표준협력부 선임연구원, 안자현 다쏘시스템코리아 부장, 김정희 투비소프트 팀장, 이지영 블로터닷넷 기자

이지영 : 이 포럼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의 글을 보고 정보통신용어도 지나치게 많은 외래어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찰력을 얻기 위한’이라는 표현 대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이라고 쓰는 것처럼 말이다. 어떡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려고 여러분을 모시게 됐다.

게다가 섭외 과정에서 이런 작업을 실제로 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서 방송통신위원회와 손잡고 2011년부터 순화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성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부장 : 정보통신 분야는 핵심분야 전문가들이 외국 기술을 접해 국내에 소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기술을 접한 나라의 말로 해당 기술 용어가 전해지곤 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기술 용어를 쓰다보니, 나머지 사람들도 다 따라가는 데 있다. 이를 나중에 국문화한다는 건 사실 어색하다. 그래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선 국내 전문가를 모아 어떤 말로 해당 기술 용어를 통일했으면 좋겠는지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게 정보통신용어 표준화 작업의 주된 업무다.

이지영 :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이 자리에 오시게 됐는가.

안자현 다쏘시스템코리아 부장 : 다국적 IT 기업에서 근무하다보니 본사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국문화해서 국내 언론에 배포할 일이 많다. 그 때마다 기술적인 영문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으면서 우리말로 풀어 쓸 방법은 없는지,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참석했다.

김정희 투비소프트 팀장 :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이른바 ‘보그병신체’가 회자되고 있더라. 좀 더 찾아보니 ‘인문병신체’, ‘광고병신체’ 등 다양한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떴다. 그 결과 이런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많이 쓰는 편이다. 직설적인 표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나, 한국말로 풀어쓰면 여러 설명을 붙여야 하지만 영어 단어를 활용하면 상대가 바로 이해할 때 그렇다. 물론 보도자료를 쓸 땐 다르다. 보도자료를 쓸 땐 나름 규칙이 있어 최대한 영어를 줄이고 약어는 풀어 쓰면서 최대한 한국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보그병신체’ 관련 글 중에 이런 의견이 있었다. “우린 이미 생활문화 자체가 서양화돼 있으며, 그 현상이 글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일 뿐인데 ‘글 자체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건 원천적인 원인이 아닌, 원인이 드러난 현상만 지적하는 모순이 아닌가”하는 내용이었다. 그 의견을 보면서 반성이 많이 됐다. 글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자주 표현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번 포럼을 통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나눠보고자 참석했다.

모든 외래어 표현이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국립국어원에서는 하이브리드란 단어를 순화해 ‘어우름’이라고 부르고 있더라. 그렇다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우름’을 하이브리드와 같은 의미로 생각해 쓰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무조건 외래어 표기를 순 우리말로 표현하는 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정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선임연구원 : 국립국어원을 보면 ‘말터’라는 웹사이트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순화어를 선정한다. 보통 이 순화어가 말터 웹사이트나 국립국어원에 접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밖으로 널리 잘 퍼지지 않는다.

참고로 정보통신용어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순화어 작업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일반인들로부터 의견을 받아 순화어 대상 단어를 받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용어를 각 정부부처와 심의회, 분과위원에 보내 해당 순화어가 대체가 되는지를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제안된 순화어가 외래어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해 고민하는 분과위원이나 심의위원들이 많다.

예를 들어 ‘아이라이터’란 단어가 있으면 이 단어를 국민이 ‘눈조작’이라고 순화했다고 치자. 심의위원은 ‘눈조작’이 ‘아이라이터’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더 많은 뜻이 ‘아이라이터’에 내포돼 있는데, ‘눈조작’ 설명만으론 불충한다고 본다. 외래어를 순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앱도 ‘꾸러미’라는 말로 순화가 됐지만, 정작 일상에서 앱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전문가들은 ‘꾸러미’란 단어를 신선하게 바라본다. 전문가가 ‘꾸러미’란 단어를 널리 써야 사람들이 ‘앱=꾸러미’로 인식을 할 텐데, 전문가는 ‘꾸러미’가 앱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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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 맞다. ‘하이브리드’란 단어가 대표적인 것 같다. 이 단어는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쓰이지만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도 쓰인다. 각 산업별로 하이브리드의 뜻은 다르게 적용된다. 사전에서 하이브리드를 검색하면 ‘이기종 혼합’이라고 설명돼 있다. 하지만 정작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이기종 혼합’이란 뜻으로 하이브리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기종을 단일화했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이기종 혼합’이 아니라 ‘수소 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란 느낌으로 하이브리드를 사용하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하이브리드’란 단어를 ‘어우름’이란 표현 하나로 통일해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다. 앞서 김정민 선임연구원이 지적한 것처럼 앱을 꾸러미로 표현하는 데 인색하듯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순화어에 대해 혼란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성권 : 하이브리드란 단어를 보자면, 사실 설명만 잘하면 된다. 어느 분야에서 쓰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다. 참고로 골프하는 사람은 하이브리드를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한다. 골프엔 우드와 아이언의 양쪽 장점을 취해 하나로 만든 별도의 ‘하이브리드채’라는 게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하이브리드카도 전기와 기름 등의 장점을 취한 과도기 차량이 아닌가. 큰 의미에서 하이브리드 뜻은 통한다. 일반명사 중에도 단어는 하나지만 뜻이 여러가지이듯, 하이브리드 뜻도 여러가지일 수 있다. 이는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게 아닐까 싶다.

이지영 : 표준화 작업을 할 때 뜻도 표준화 작업을 하는가.

김성권 : 표제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을 한다. 이 일 자체가 영어사전과 국어사전처럼 표제어 나오고 1, 2, 3 용례가 다를 때마다 정의가 다르지 않은가. 정보통신용어도 마찬가지다. 암호와 소프트웨어 분야 쓰는 사람들이 같은 용어에 대해서 다른 접근을 하지 않는가.

김정희 :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다. 같은 단어에 대해서 쓰는 예가 다를 경우, 듣는 사람에게 알아서 취사 선택을 하라고 권하는 게 맞는 건가.

김성권 :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잘 가려 말하는 게 적절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 경우까지 고려해 표준화를 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다. 사실 일본이 그 같은 작업을 참 꼼꼼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국내 용어 중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지영 : 외래어로 미국에서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넘어와 당초 뜻과는 달라진 정보통신용어도 있나.

김성권 : 과거에는 꽤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다. 요즘은 해외에서 정보통신 관련 용어가 바로바로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해외 기술 용어를 순화하려면 초기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젠 워낙 빨리 정보가 소통돼서 한창 해당 용어가 무르익고 모두 사용할 때 ‘순화어를 쓰자’라는 움직임이 나온다. 이렇게 하면 늦는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정보통신 표준화나 순화 작업이 어렵기도 하다.

이지영 : 지금도 정보통신용어를 만든 곳이 해외가 많고, 이게 전파되기 시작하면 순화할 틈도 없이 해당 용어가 그냥 쓰이는 게 사실이다.

김성권 : 중간에 순화하면 서로 헷갈린다.

안자현 : 각종 언론매체에서 똑같은 외래어를 사용하는데, 한 곳만 순화해서 표현하면 그것 또한 어색하다.

이지영 : 예컨대 블로터닷넷에서는 SNS를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순화해서 사용한다. 정작 독자에게 물어보면 SNS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보니 이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풀어서 SNS를 전달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

김성권 :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빵을 뭐라고 순화할 것인가. 빵 자체도 외래어다. 외래어를 써서 효과가 있으면 외래어를 쓰는 게 맞다고 본다. 무조건 순화하는 게 답은 아니다.

김정희 : 빵이 포르투갈어인 ‘팡’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순우리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르투갈에서 완전히 ‘빵’이라고 발음하는 건 아니다. 이 포럼에 오기 전에 가진 궁금증이 있었다. 굳이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게 좋냐는 것이다. 우리말로 순화해서 쓰는 게 기본 원칙이긴 하나, 이미 통용해 누구나 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점에서 다시 순화해서 쓰는 데 의문이 있다. 게다가 우리말로 바꿀 때 이게 다 순 우리말인가. 한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김성권 : 거의 한자어다.

김정민 : 한자는 우리말이다. 국어를 설명할 때 국어 조합에서 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도 포함한다. 한자는 중국에서 쓰는 한자어 발음과 쓰임과 일본에서 쓰는 발음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의 테두리 안에 한자를 포함하고 있다. 순우리말이 아닐 뿐이다.

김정희 : 외래어 중에서 우리 표준어로 인정한 우리말이 있다. 무조건 우리말의 취지가 반드시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데 있는 건지 궁금증이 든다. 외래어도 표준어로 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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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 SNS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이 단어가 전파가 됐는데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태라고 치자. 누군가가 SNS는 여러 사회인맥을 연결하는 서비스니 ‘사회관계망 서비스’라고 부르자라고 했고 이 결과가 통용됐으면 문제가 없는데, 수초 안에 ‘SNS’란 단어가 퍼졌다. 이를 무조건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쓰자고 우길 순 없지 않은가. 다만 무엇을 우리말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래어를 쓰는 걸 경계하자는 취지였다.

김정민 : 그런데 당초 단어보다 순화하는 말이 더 길어지면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SNS를 표기할 때 세 글자 영어를 쓴다. 이게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음절이 길어지다보니 사람들이 잘 안쓰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쓸 때 이득이 있어야 하는 데 이건 이득이 없지 않은가. SNS는 사실상 줄임말이다. 이를 길게 풀어쓰다 보니 사람들이 ‘사회관계망 서비스’란 단어를 쓸 때 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언론의 언론 순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자현 : IT 용어 순화 대상을 나누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엔지니어, 개발자 등이 많이 쓰는 B2B 업계의 전문 용어는 잘못 순화해서 쓰면 상호 의사소통에 혼선이 올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어들 중 외국어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을 넓혀가는 게 좋겠다. ‘다운로드’를 ‘내려받기’로 ‘UX나 ‘유저 익스피리언스’를 ‘사용자 경험’으로 쓰는 등, 굳이 외국어를 쓰지 않아도 원래 단어의 의미 전달이 가능한 용어들이 중심이 되겠다.

김정희 : 최근에 책을 번역했다. 책에서 ‘크라우드소싱’이란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고민했다. 우리말로 ‘집단지성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고 쓰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집단지성이란 말도 쉽게 와닿지 않는 상황 아닌가. 마케팅론에서 크라우드소싱은 그 자체로 쓰인다. 고민 끝에 그냥 ‘크라우드소싱’으로 설명하고 주석을 달았다. 태권도 국제경기를 보자.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태권도 심판은 한국어 ‘차렷’을 사용한다. 정보통신 용어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어떤 기업에서 뭔가 최초로 만들어 의미를 만들고 해당 의미와 관련된 특허를 내면, 그게 영어든 독일어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게 문제다. 커피가 외래어라고 해서 ‘달달한 갈색 액체’라고 말할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북한에서 쓰는 말을 다 가지고 내려와야 할 상황이다.

안자현 : 컴퓨터를 슬기틀로 부르자고 한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어 그대로 사용해서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단어들은 인위적으로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신조어 가운데 외국어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은 대체할 수 있는 적합한 우리말 표현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크라우드소싱’의 경우, 아직 많은 대중들은 이 단어를 모르거나 언론에서 접했을 때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민 :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만든 게 30~40년 됐다. 그러나 누구도 비행기를 두고 날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까도 이 말이 나왔지만, 성숙단계 이전에 순화어가 통용되면 일부 사람이 영어를 썼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순화가 돼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중간에 따라가는 사람도 다 쓰는 상황에서 순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SNS도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라. 다 SNS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와서 바꿔쓰자고 하면 누가 바꿔 쓰겠는가. 사실 순화어를 배포할 때 가장 노력을 해야 할 곳이 언론사다. 언론사만 통일해서 쓰기 시작해도 순화어 도입이 지금보다 빨리지지 않을까.

안자현 : 소비자 접점에 있는 IT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영체제, 웹브라우저 등을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경우에도 용어를 최대한 현지화하기 위해 국가별로 전담 조직을 두고 있다. 게임 회사나 온라인 서비스 회사들도 소비자들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용어 한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권 : 무조건적인 순화어는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다. 외국과도 업무 때문에 수시로 전화한다. 그 쪽하고 무슨 업무를 봐야 하는데 저쪽에서는 ‘트위터’란 말을 쓰고 우린 ‘하나의 모임’이라고 하면 의사소통이 되겠는가.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단어에 대해서 순화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보통명사는 얼마든지 한국어로 순화할 수 있다. 프로세스 같은 말은 회사 문화나 습관에 따라서 얼마든지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고유명사는 참 손 쓰기 힘든 분야다.

김정민 : 굉장히 복잡하긴 하지만, 순화를 한다면 한가지 뜻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해당 단어가 뜻하는 여러 의미도 함께 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하이브리드를 어우름이라고 대표적으로 부르지만, 그 밑에 세부 뜻을 다른 순화어로 부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김정희 : 다들 비슷한 의견인 것 같다. 무분별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건가. 지금 정보통신 용어 중 기술과 관련 용어는 거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말이 가장 적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히 고유명사는 고유명사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빅데이터를 큰데이터로 불러야 할 것인가. 이미 기술이나 개념 관련 명사들은 고유명사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맞다.

그러나 언급된 것처럼 보통명사, 일반명사를 영어로 쓰는 게 문제다. 그런데 이 또한 생각해 보면 교육과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영어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게 어색해지지 않게 되면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가에서도 글로벌화라고 얘기하는데, ‘글로벌’에 영어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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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 : 80년대 중·후반 정부에서 외래어를 너무 많이 쓴다며 우선적으로 간판을 다 한국어로 바꾸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자 갑자기 수많은 ‘베이커리’들이 ‘빵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한참 강제성이 작동하다가 민주화 대통령이 나오면서 풀어졌다. 또 다시 간판들이 외국어가 돼 가고 있다. 브랜드네임 같은 게 다 영어로 가고 있다.

김정민 : 보그병신체 나오기 전에 ‘보그허세체’란 말이 있었다. 패션잡지 특성상 일반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보다 더 멋져 보이고, 더 최신으로 보이기 위해서 이런 단어를 나열하다 보니, 이를 보는 사람들도 뭔가 멋있는 말처럼 받아들이게 된 거다.

안자현 : 있어 보이고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있다. 혹시 잡지사에서도 자신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저도 모르게 익숙해 진 게 아닐까.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본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 컴플리트하고, 그 스테이터스 내게 알려주고, 다른 부서와 코웍해서 내게 클로즈 해” 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지영 : 모두 외래어를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은 아닐 테다. 그만큼 해당 외래어가 자신의 삶에 익숙해졌다는 뜻일 게다. 나 조차도 1년전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같은 단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모두 설명을 붙였다. 지금은 다르다. 태연스럽게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같은 단어를 기사에 담고 있다. 그러니 정보통신용어 중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는 스마트카, 스마트오피스는 순화하기가 힘들 듯하다. 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 순화 또는 표준화 작업을 하는 데 고민이 많을 듯하다.

김정민 : 순화어를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도 중요하다. 정보통신 용어 순화어를 열심히 만들었는데 정작 그 분야 전문가는 그 순화어를 쓰지 않는다면 어떨까. 해당 순화어가 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차라리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라도 표준을 정해 사용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우리가 하는 업무 중에 단체 표준이라는 업무가 있다. 특정 기술을 사용하는 단체들이 표준을 만들어서 따르게 하는 일이다. 이 업무를 하다 보면, 단어를 외국에서 쓰는 대로 바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경우 외래어 표기를 각자 다르게 해서 서로 뜻은 같지만 사용하는 용어 맞춤법이 다른 경우가 생긴다. 그 결과 일부 연구원은 번역된 표준을 보기보다는 번역되기 전 표준 원본을 보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정보통신 용어를 순화한다고 해도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실제로 사용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일반 사용자가 ACIS란 단어를 얼마나 쓰겠는가. 이는 사용 빈도가 낮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정보통신 고유 용어를 순화하기보다는 대중들이 많이 접하는 단어를 순화하는 게 우선 목표다.

김성권 : 문제는, 정보통신 용어는 일반 국민이 많이 쓰지 않는 용어라는 데 있다. 그러니 순화를 한다 해도 효과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차라리 특정 용어가 나오고 여기에 대한 해설을 다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신문을 보면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밑에 해설이 덧붙는다. 독자들도 그 뜻을 보고 이거구나 생각한다. 언어 순화는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이런 작업이 언론계에서 선행되면 순화어 작업이 보다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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