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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풀HD’, 기준이 뭐니

2013.05.03

HDTV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해서다. 4대3 비율의 TV는 가로로 길쭉한 16대9 화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TV, 모니터, 노트북, 스마트폰까지 이 비율이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어느샌가 HD는 ‘풀HD’라는 말로 바뀌어 갔다. TV가 먼저 이 단어를 붙이더니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IPTV까지 풀HD를 언급하고 나섰다. 게다가 이 풀HD 용어를 갖다 쓰는 것도 다 제각각이다. 누구는 1366×768을 풀HD라고 부르고, 업스케일링한 영상도 풀HD라고 말한다. 대체 풀HD는 뭘까.

풀HD는 영상 규격 아냐

‘풀HD’라는 말은 사실 정확한 규격이 아니다. 애초 하드웨어의 한계를 감추기 위한 용어에 가깝다. HD라는 말은 TV에서 시작한다. TV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HDTV라는 규격을 약속했다. 이는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다시 나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화면은 1920×1080i와 1280×720p의 해상도를 일컫는다. 이 해상도의 뒤만 따서 ‘1080i’와 ‘720p’라고 흔히 부른다. 언뜻 보면 1080i가 더 높은 해상도 같지만 이는 한 번에 540줄씩 홀수 짝수로 나눠서 뿌려주는 방식이고 720p는 계속해서 720줄의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게 더 화질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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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TV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HDTV는 LCD나 PDP를 통해 구현됐는데 초기에는 패널 기술과 그 가격 때문에 TV 업계는 720p를 기준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주로 쓰였던 패널이 1366×768 해상도를 내는 것들이다. 이후 패널 기술이 좋아지면서 1920×1080 픽셀을 하나의 디스플레이에 심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이때부터 새로 나오는 TV들을 풀HDTV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존 1366×768 디스플레이보다 2배 많은 픽셀을 낼 수 있는 TV였으니 이를 HDTV라고 부르기는 억울했다. 게다가 모니터의 특성상 입력 소스만 있다면 HDTV의 규격인 비월주사방식의 1080i가 아니라 순차주사하는 1080p 해상도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TV 입장에서는 1080p까지 갖춰버린 셈이다. 풀HD라는 말이 마케팅 용어이긴 하지만 이전과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 탓할 일은 아니다. 표준 규격은 아니지만 사실상 HD는 720p, 풀HD는 1080p로 통용되게 됐다.

이 기준은 스마트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최근 풀HD라는 이름을 달고 1920×1080 해상도를 내기 시작한 것과 이어진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풀HD=1080p’라고 박혀 있으니, 이것도 문제될 것 없다.

저마다 다른 풀HD 해석, 혼선 일으켜

하지만 서비스들은 다소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우리가 풀HD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많지 않다. TV 콘텐츠는 여전히 1080i로 제작되고 전송된다. 가장 해상도가 높은 콘텐츠는 블루레이에 담긴 영화이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박스 등의 게임기도 풀HD를 낼 수 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LG유플러스는 최근 구글TV 셋톱박스 기반 IPTV 서비스인 ‘유플러스tv G’를 ‘풀HD IPTV’라고 알리고 있다. 이 서비스는 애초 1080i로 전송되는 실시간 TV의 영상 소스를 셋톱박스가 후처리해서 1080p의 해상도로 보간한다. LG유플러스는 “셋톱박스의 성능을 높이고 여러가지 필터를 넣어 화질을 높여 TV에 풀HD 화면을 내보낸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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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주 애매한 문제이다. TV 입장에서 보면 소스 포맷은 분명 1080p가 맞다. 그런데 송출하는 영상은 1080i다. 이걸 풀HD로 업스케일링하는 것인데, TV에 전송되는 영상은 분명 풀HD가 맞다. MP3 파일을 CD 포맷으로 바꿔 구운 것과 비슷하다. 이 음악을 CD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근본적으로 방송 자체가 풀HD로 제작돼야 하겠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업스케일링 영상을 풀HD라고 부르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VOD 서비스는 블루레이 기반의 소스를 전송하기 때문에 소스부터 전송, 재생까지 1080p 풀HD가 맞다.

CJ헬로비전은 최근 티빙의 화질을 끌어올렸다. 해상도와 전송률을 높이면서 실시간 방송에 ‘풀HD급’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붙였다.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태블릿PC에서 Full HD급(1280×720) 화질을, 스마트폰에서는 HD(960×540) 화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따져보면 1280×720이면 HD급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다. 960×540은 흔히 qHD로 통한다. 본래 HD 규격인 1920×1080의 4분의 1, 그러니까 ‘쿼터HD’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디스플레이가 아직 풀HD 진입 초기이고 티빙 입장에서도 기존보다 화질을 높였으니, 이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풀HD일 게다. CJ헬로비전은 5~6월 중에 이 서비스를 진짜 1920×1080 해상도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1920×1080 해상도의 풀HD지만 해상도와 전송률을 올리는 기술이 쉽지 않기 때문에, 1~2개월 정도 중간 단계의 해상도를 적용하며 화질이 향상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풀HD급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티빙은 기존 640×480 수준의 영상을 이번에 1280×720으로 올렸고 이달부터 VOD와 실시간 방송을 1920×1080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풀HD로 가는 과정에서 풀HD급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설명이다. 착시를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급’자 하나로 넘나드는 해상도를 시청자가 이해하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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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좋아졌다’는 표현 방법의 한계

이는 비단 CJ헬로비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BTV모바일, 올레TV나우, U+HDTV 등 통신사들의 N스크린 서비스에도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다. 아예 업계는 ‘모바일HDTV’라는 말로 묶고 있다. HD라는 말은 규격일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고해상도를 뜻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이나 PMP의 화질이 낮을 때는 단순히 16대9 비율을 풀HD란 말로 설명한 업체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썼는지 적어도 이용자들이 이를 헷갈리지 않도록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찌감치 TV를 통해 풀HD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삼성전자는 “풀HD라는 말 자체가 규격이나 강제성이 있지 않아 들쑥날쑥하게 쓴다고 해서 처벌이나 불이익이 있지는 않다”라면서도 “세계 시장에선 풀HD라고 하면 적어도 세로 해상도가 1000이 넘어야 하는 것이 약속이고, 이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영상을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화질이 곧 망 부담으로 이어진다. 큰 결정을 한 셈이고 더 좋은 기술, 화질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화질이 좋아졌다는 것을 간명하게 알릴 만한 마땅한 표현을 업계는 찾아내지 못했다. 가장 만만한 게 ‘풀HD’인 셈인데, 용어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는 것은 짧게는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멀리 보면 신뢰와도 연결된다. 풀HD같은 단어야 말로 업계와 소비자가 만들어낸 무언의 약속 아닌가.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