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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고 독이 되는 휴대폰 보조금

2013.05.14

#장면1. 2012년 9월, 누구랄 것도 없이 시작한 보조금 지급 경쟁은 순식간에 복마전으로 확산됐다. 기기를 미리 구입한 사람들은 땅을 쳤고, 못 산 사람들은 울상이었다. 번호이동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권고 조치를 내렸다.

#장면2. 2012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 3사에 보조금 전쟁의 책임을 물어 순차적으로 90여일간의 영업정지를 결정한다.

#장면3. 2013년 1월, 순차적 영업정지가 시작되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공짜폰과 통신사, 방통위의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보조금을 막으려던 시도는 결국 더 큰 보조금으로 돌아왔다.

휴대폰 보조금이 결국 심판대에 올랐다. 새 정부와 통신사, 시민단체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무분별한 보조금 경쟁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다. 보조금에서 무엇이 문제길래 이렇게 난리일까.

■ 보조금은 불법인가

보조금은 불법일까? 불법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불법은 아니다. 그동안 방송통신위원회는 보조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실제로 보조금 경쟁을 제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법에 ‘보조금은 불법’이라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정보통신부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옛 정보통신부는 2010년 6월 이용약관을 통해 단말기 보조금을 금지하도록 했다.

당시는 휴대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기로, 5개 통신사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막무가내로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가입자 확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보조금이었다. 그러다보니 갓 나온 휴대폰도 공짜로 풀렸다. 그 대신 통신사들은 1년 약정, 2년 약정 등으로 가입자를 묶었다. 중간에 분실이나 기기변경을 위해 해지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것이 노예 논란으로 번지면서 정부가 보조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짜폰은 줄어들지 않았다. 휴대폰에 가입하면 오히려 웃돈을 얹어주던 시절도 있었다. 결국 2003년 정보통신부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보조금 지급을 금지했다. 다만 당시 차세대 통신망으로 꼽혔던 IMT-2000이나 PDA 기반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예외로 정했다. 이 법안은 3년 한시적으로 적용됐지만, 3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보조금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2년을 더 연장해 2008년까지 보조금은 법적으로 금지됐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과도한 보조금을 주지 못하도록 ’27만원’의 가이드라인을 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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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이어진 영업정지의 명분은 ’27만원이 넘는 부당한 보조금으로 가입자에 따른 차별을 뒀다’는 것이었다.

과거엔 보조금 지급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법이 아니다. 다만 과도한 보조금을 ‘불법 보조금 지급’이라고 부르던 것이 입에 붙은 탓에, ‘보조금=불법’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는 보조금 상한선이 27만원을 넘으면 불법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법적으로 보조금을 제재할 수 있는 논리도 없진 않다. 보조금 자체는 불법으로 규정할 수 없으니 ‘이용자 차별’을 문제삼는 식이다. 기습적인 과잉 보조금이 투입되면 누군가는 제돈을 다 내고 구입하고, 누군가는 공짜로 구입할 수도 있다. 이를 가입자 차별이라는 논리로 문제삼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끼워맞추기 논리에 가깝다. 그래서 새정부는 아예 관련법을 정비할 생각이다.

■ 무엇을 법으로 정하려는 것일까

지난 5월8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사실상 보조금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에 가까웠다. 정부가 생각한 문제점과 대책은 모두 7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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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규, 번호이동 등 가입유형과 요금제에 따른 차별 금지 : 그간 보조금을 규제할 수 있는 명분이었던 ‘차별금지’ 조항을 좀 더 구체화했다. 그간 상대방 가입자를 빼오는 번호이동을 제외하고는 신규나 기기변경 등에는 보조금이 거의 지급되지 않았던 것을 지적했다. 보조금을 미끼로 더 비싼 요금제를 쓰도록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도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 보조금 공시를 통한 투명성 확보 : 보조금을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통신사가 직접 홈페이지나 문서로 단말기별 출고가와 보조금, 그리고 이를 통한 판매가를 공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대신 일정 범위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겠다는 게 방통위 쪽 입장이다.

3. 단말기 할인과 요금제 할인의 분리 : 지금 휴대폰을 구입할 때는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어렵다. 통신사들은 보조금을 단말기 할인에도 일부 제공하고, 요금제 할인으로도 제공한다. 이를 어느 한쪽으로 단일화해서 구입시 헷갈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고가 요금제 강요 금지 : 맨 처음 항목과 비슷하다. 현재 대리점과 판매점 사이에서 횡행하는 ‘72요금제, 93일 이상 유지 조건’처럼 요금제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5. 유통망 제재 및 관리감독 강화 : 대리점과 판매점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도 단속하고 과태료를 물겠다는 것이다. 특히 약정 요금 할인을 보조금인 것처럼 헷갈리게 광고하는 것을 막는다.

6. 제조사 출고가 관리 및 제조사 장려금에 자료 제출 의무 부과 : 제조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제품 공급할 때 출고가에서 일정 부분을 제하는 판매 장려금에 대해서도 정부는 지켜볼 심산이다.

7. 과열을 주도한 사업자엔 강력한 제재 : 보조금 과열은 결국 어느 한쪽에서 선을 넘었을 때 경쟁적으로 터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를 주도한 사업자를 잡아 혼쭐을 내겠다는 생각이다.

■ 순기능과 역기능, 면밀한 분석부터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 보조금을 둔 폐해가 뭔지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8일 토론회장의 분위기는 시민단체와 업계, 학계 모두 입장에는 조금씩이나마 차이가 있었지만 ‘보조금이 좋지 않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난 직후 만난 한 판매점 관계자는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과도한 보조금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는 정도일 뿐 사업자가 물건을 싸게 팔겠다는데 이를 막는 것은 반대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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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에 대한 규제가 더 큰 보조금 전쟁으로 촉발되기도 했다.

출시 직후에는 비싸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전자제품 시장에서는 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갤럭시S3’만 봐도 출시 초기에는 99만원을 주고 샀다가 3개월만에 17만원으로 떨어졌고, ‘갤럭시S4’가 나온 뒤에는 3만원까지 떨어졌다. 그 기간이 불과 10개월이 채 안 된다. 초기에 제품을 구입한 이들은 지금도 50만원에 달하는 할부금이 남아 있는 반면, 지난주에 구입한 이용자는 3만원만 내면 된다. 일찌감치 큰 관심을 모은 갤럭시S4만 해도 보조금이 꽁꽁 얼어붙은 시점에 출시돼 판매가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이 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는 보조금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조금 규제에 맞닥뜨린 통신사는 통화 무제한 요금제나 장기 가입자 보호 정책으로 이용자 붙들기에 나섰다. 제조사들도 최신 단말기 출고가를 내리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한편으론 보조금을 없앤다고 해서 통신사들이 요금을 덥썩 내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보조금 때문에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는 것이 사회적으로 낭비이기도 하지만, IT 생태계 입장에서는 새로운 플랫폼이 빨리 깔려야 새 기술들이 얹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