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강요하는 사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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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역사상 최강의 콤비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처음부터 창업을 시도하진 않았다. 1970년대, 게임 회사 아타리에 취직 중이던 잡스는 아타리에, ICT 업계의 전설인 HP에 취직 중이던 워즈니악은 HP에 최초의 상용화된 개인용 컴퓨터를 팔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애플을 창업하게 된다. 현재 전세계 ICT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회사인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애초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1990년대, 그들은 자신들이 스탠포드 대학원 재학 당시 만든 페이지랭크 검색 알고리즘을 야후 등 유력한 인터넷 기업에 팔고자 했는데 이 역시 잘 풀리지 않았다. 창업이 이들에게 첫 번째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다.

ICT 산업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구조를 뒤흔든 디지털 혁명의 주인공들마저 창업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건 그만큼 기업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선택임을 보여준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직접 기업을 만들어 시장에 뛰어드는 순간 많은 위험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그 상품을 마케팅하고 실제 판매를 하고, 사람을 고용하고, 교육하고, 관리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 모든 행위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새롭고, 어렵고, 힘들다. 노력 못지 않게 운도 중요하다. 애플과 구글의 창업자들처럼 정말 자신들이 확신할 만한 기술이 있는 경우 혹은 남이 없는 뭔가가 확실히 있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위험 요소에 대한 부담이 잠재적 기대 가치보다 훨씬 더 크다. 따라서 그들이 합리적이라면 창업을 택하지 않는 것이 낫고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후 사업의 실제 진행에 있어서도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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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 구글 트렌드 검색 결과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회 내에서 특별히 지난 2010년 아이폰 쇼크 이래 청년 창업에 대한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위 표는 구글 트렌드에서 ‘청년 창업’을 키워드로 검색해본 결과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거의 부재하던 청년 창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2010년 3월 한순간 높아진다. 이런 트렌드는 각종 정부 정책 발표 등과 함께 높낮이를 겪다가 2012년 1월 새정부 취임과 함께 한폭 더 상승한다. 위 데이터는 한국 사회에서 창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가중되는 데에는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한몫했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전혀 나쁠 것이 없다. 재벌 기업 외에도 지난 세기에 NHN·다음처럼, 그리고 이번 세기초의 카카오처럼 국내 경제에 새 피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의 등장이 필요한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년층에게도 좀더 다양한 자기 미래를 탐색하는 차원에서 창업이란 새로운 선택지가 매력적일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부터 3D프린터까지 최근의 제3차 혁명으로까지 거론되는 디지털 혁명이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사업 기회들을 제공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언론의 관심이 얼마나 밑바닥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서두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처럼 애초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창업이란 경력 선택이 필요한 것일까.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1천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에는 2012년 말 173조5천억원으로 집계된 자영업자들의 부채가 포함된다. 이런 반면 지난 8분기 동안 한국 경제는 0%대 GDP 성장률을 답보했다. 그간 삼성전자 등이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걸 감안하면 나머지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걸 의미한다. 부채는 늘고 시장은 줄어들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기존 시장에서 파이를 나눠먹는 식의 창업은 네거티브섬 게임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마진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소한다.

쉽게 말해 창업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유리하다. 유명한 벤처 투자가인 폴 그레이엄이 정의한 것처럼 ‘단기간에 고성장’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만 적절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머지 사람들은 끼어들지 않는 게 유리한 게임이고, 이런 데 정부 예산이 지출되는 것도 예산 낭비에 가깝다. 단기적으로는 일시적 고용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그런 정책 자금이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걸 고려하면 비효율적 투자다. 전쟁터에서 용맹을 발휘하는 건 명예로운 행위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병사를 전장에 내보내는 건 살인 행위다. 창업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도 엄격한 기준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한정해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단순한 정책 자금 지원보다는 경쟁법 등 관련 제도 정비와 감독 질서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2013년 7월에 실시된 국가 9급공무원 시험에 역대 최대인 20만4600여명의 응시자가 지원했다. 선발되는 인원은 27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약 1%의 합격률이다. 국가가 9급공무원 시험에 대대적인 정책 자금을 지원한 적은 없다. 공무원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거국적인 홍보를 한 적도 없다. 오히려 이런 공무원 선호에 관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언론지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우호적인 견해보다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신호는 우리 청년들에게 공무원을 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경력 선택이란 것을 가르쳐준다. 적어도 이 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서 줄어든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길 일도 없다.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경쟁구도에 더 익숙한 청년들이 이 선택지를 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시장의 신호와 교육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9급공무원 시험률에 당황하고 청년들의 박약한 도전정신을 비판하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그들의 양심과 이성에 대해 묻고 싶다. 이것은 당신들이 만든 대한민국이다. 청년들은 단지 바보가 아닐 뿐이다.

창업은 강요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흔히들 대만은 중소기업 강국, 한국은 대기업 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소기업중앙회의 해외비교통계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고용 인구 비율만 놓고 보면 한국 86.7%대 대만 77.1%로 한국이 더 높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더 많이 고용하고, 더 적게 나눠갖고 있다. 이런 시장 구조속에서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대기업, 정부를 선호하는 건 시장의 결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반대로 실리콘밸리를 비롯해서 미국의 창업 열기가 높은 건 앞서 소개한 애플, 구글 등 새로운 기업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창업을 택하거나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걸 때로는 전통적 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선호하는 건 적어도 일면에서는 그럴 경우 자신들에게 오는 경제적 혜택이 더 크다는 걸 계산하기 때문이다. 즉, 이 역시 애꿎은 창업정신 등 문화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시장의 결과다.

고부채 저성장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선택이 중요한 때, 기획재정부는 작년보다 1600억원을 증원해 4980억원을 청년 창업 지원에 쓰고 있고 중소기업청은 작년대비 2.6배를 증원해 1조6천억원을 같은 목적에 지출할 예정이다.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 곳에 가격만 인위적으로 올리는 걸 버블(거품)이라 한다. 창업을 강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창업할 사람들만 창업해야 할 곳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그들이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돕는 정책 차원의 선택과 집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