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4월 국회에 발의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하 게임 중독법)’은 마약이나 술, 도박 등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나 행위를 나라가 나서서 관리하겠다는 취지를 담은 법안이다. 도박이나 마약을 나라가 관리하겠다는 것에 누가 쉽게 이견을 낼 수 있으랴. 문제는 여기에 ‘게임’이 포함됐다는 데 있다. 게임을 즐기는 누리꾼은 물론 게임 업계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 중독법은 게임을 둘러싼 사회와 업계의 3라운드 싸움판이다. 지난 2011년 4월 게임업계는 ‘셧다운제’라는 강펀치를 얻어맞은 바 있다. 학교폭력 논란이 뜨거웠던 2012년 초에는 ‘게임 쿨링오프’ 제도도 고개를 들었다. 원투펀치 이후 이어지는 어퍼컷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국내에서 게임은 천덕꾸러기요, 동네북이다.

헌데, 게임 이전에 사회악 탈을 써야만 했던 선배가 있었으니, 바로 ‘영화’와 ‘만화’다. 1990년대 한국에서 영화와 만화는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다. 영화와 만화가 국민 정서를 해쳐 사회에 악행이 끊이지 않는다는 식의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게임을 사회 ‘4대 악’으로 몰아가는 지금과 놀랍도록 똑같다.

영화와 만화, 게임으로 이어지는 국내 문화 콘텐츠 규제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2013년 현재 게임을 둘러싼 폭력과 중독 논란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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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2.6%가 폭력∙섹스물” – 경향신문, 1989년 11월1일

1989년 경향신문에는 당시 서울에서 상영된 영화 72.6%가 지나친 폭력과 성적 내용을 포함했다고 지적하는 기사가 실렸다. 자료는 당시 서울 YMCA가 조사한 통계를 썼다. 내용인즉슨, 1989년 10월 서울에서 상영된 영화 106편을 조사해 봤더니 그 중 상당수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더라는 것이다.

기사를 보면, 당시 서울서 상영된 영화 106편 중 해외 영화는 80편, 국산은 26편이었다. 경향신문은 그 중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의 경우 10편 중 8편이 애정물이었다고 전했다. 중·고등학생 관람가 영화도 절반 정도가 폭력적인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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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9년 11월1일

“소년만화 폭력 판쳐, 검열∙규제 강화해야” – 한겨레, 1990년 5월7일

이 기사는 당시 한겨레의 ‘국민기자석’에 실린 기사다. 일종의 독자 투고 코너다.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신영희 한겨레 독자는 1990년 봄 한겨레에 “어린이 만화 중에는 폭력을 무비판적으로 미화하거나 심지어는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정부도 청소년 만화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열과 규제를 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담은 의견을 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엄격한 검열과 규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반발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검열과 규제가 문화의 자유를 막고,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사실은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게임 중독법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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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0년 5월7일

“만화 섹스 폭력 위험수위” – 동아일보, 1990년 5월28일

199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 중 하나로 ‘일본문화 개방’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만화와 일부 영화 등 일본 문화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한국은 1999년과 2000년 이후 일본 문화를 전면 수용하기 시작한다. 1990년 5월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인 한국이 한창 새로운 문화에 홍역을 앓던 시기다.

동아일보는 당시 기사에서 “양적 팽창에 따른 수준 향상이 시급”하다며 “일본만화 수입 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만화가 가진 폭력성과 성적인 표현, 소재, 주제 등이 한국 청소년의 정해를 해친다는 주장이다.

1990년 동아일보의 주장과 ‘GTA5’를 나쁜 게임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다른 점이 뭘까.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쁜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1990년이나 2013년이나 똑같다. 1990년대에는 일본 만화가 새로운 문화 콘텐츠였고, 지금은 게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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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90년 5월28일

“폭력∙자극적 영상, 어린이 정서 해친다” – 경향신문, 1993년 2월22일

“일본만화인 ‘피구왕 통키’는 피구경기의 귀재인 통키를 주인공으로 그가 속해 있는 피구팀 친구들과의 우정과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주제곡이 애창되고 있는가 하면 골목마다 피구경기를 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등 그 여파가 대단. 특히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이 만화영화가 가진 폭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상황.”

1980년대 태어난 이들은 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닐 당시 ‘피구왕 통키’가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를. 평범한 배구공에 빨간색 매직펜으로 ‘불꽃마크’를 그려 넣었는가 하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아예 만화에 등장한 것과 똑같은 노란색 피구공을 팔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평범함 배구공을 노랗게 만든 것 뿐이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

헌데, 경향신문은 93년 2월 기사에서 만화 ‘피구왕 통키’가 가진 폭력성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공으로 친구를 맞춰 기절시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게 그 까닭이다.

편집증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만화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편집증 말이다. 세상에 공으로 사람 때리는 장면이 등장해 어린이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라니. 물론, 게임 속에서 칼을 휘두르느라 친구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금의 주장과 크게 다를 것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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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3년 2월22일

“‘라이온 킹’ 폭력장면 유해시비” – 한겨레, 1994년 7월15일

1994년 국내 극장가를 술렁이게 한 만화영화 ‘라이온 킹’을 기억하는가. 월트디즈니가 제작한 작품으로 삼촌 사자 ‘스카’와 아빠 사자 ‘무파사’, 아들 사자 ‘심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물 왕국의 왕 자리를 둘러싼 액션과 감동적인 내용이 일품이어서 이후 디즈니의 작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한겨레가 1994년 ‘라이온 킹’의 폭력장면을 지적했다. 음모와 배신, 살인이 난무하는 성인영화에 가깝다는 게 당시 한겨레의 주장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카가 아빠 사자 ‘무파사’를 죽이는 장면은 ‘존속살인’이잖은가! 아들 사자 ‘심바’가 삼촌을 죽이고, 왕권을 탈환하는 장면까지 더하면 존속살인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셈이다. 게다가 왕권을 둘러싼 주도면밀한 살인계획까지 등장하니 과연 청소년의 정서를 해치는 나쁜 작품이라는 한겨레의 꼼꼼한 지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가만, 당시 ‘라이온 킹’을 단체 관람하는 것이 국민학교 교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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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4년 7월15일

“TV만화 ‘보고 배울게 없네’” – 한겨레, 1997년 4월2일

당시는 영화나 TV만화 등 문화 콘텐츠에서 뭔가 ‘보고 배울 것’을 찾던 시대였다. 음악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해야 좋은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만화는 어린이의 꿈과 모험심을 길러줘야 했다. 영화에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멋진 경찰이 악당을 때려잡았다.

나라에 국민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었고, 국민에 나라는 복종해야 할 어버이였으니까.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한몫을 했으리라. 문화 콘텐츠는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그 때는 희박했다.

한겨레는 1997년 기사에서 “지능보다 심성을 중시하는 감성지수(EQ)라는 개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요즘 감성지수가 높은 어린이가 되려면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결코 봐서는 안 될 듯하다”라며 “만화영화를 보는 시청자는 평균 2분30초당 1번의 폭력장면을 목격하는 등 정서적 해악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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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7년 4월2일

“만화가 폭력조장 인식 안타까워” – 경향신문, 1997년 7월20일

박재동 작가는 1997년 ‘우리만화살리기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만화가 폭력사건을 조장한다거나 학교폭력을 유발한다는 당시 사회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박재동 작가는 16년이 지난 2013년 지금도 문화 콘텐츠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박재동 작가는 게임 중독법에 반대하는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위원장이다. 공대위는 지난 11월21일 공식 출범했다.

박재동 작가의 검은 머리는 16년이 지나 하얗게 셌다. 만화도 게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가 청소년 정서를 갉아먹는다는 정부와 사회의 그릇된 인식만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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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7년 7월20일

“이현세씨 오늘 소환” – 동아일보, 1997년 7월23일

1997년 7월23일은 서울지방검찰청 형사 1부가 이현세 작가를 소환 조사한 날이다. 당시는 이현세 작가가 그린 ‘천국의 신화’가 폭력과 성적 표현으로 유해 시비에 휘말렸던 때였다. 1997년 논의되기 시작한 ‘청소년 보호법’ 때문이다.

이현세 작가는 이후 2005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청소년 보호법은 아직도 남아 청소년의 권리와 문화 콘텐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1997년 이현세 작가를 시작으로 국내 만화 산업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웹툰’ 형식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지만, 2012년 웹툰에도 폭력성을 이유로 들어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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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97년 7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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