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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뚱그려 욕 말고, 게임 이름을 밝혀주오”

2013.12.22

우선 반가웠다. 이미 한 차례 만남 요청을 거절당한 터였다. 지난 여름, 만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그는 “이런 일로 어디에 나올만 한 인물이 못 된다”라며 물리쳤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우연히 기회를 얻었다. 지난 12월11일 열린 ‘게임은 문화다’ 토론회에서 그와 마주쳤다. 기회를 틈타 재차 부탁을 넣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오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홀로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을 진행 중인 그의 얘기다.

“게임은 ‘폴더’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 많은 게임이 있죠. 만약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생기면, 문제가 된 ‘파일’을 치료해야지 폴더 전체를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폴더와 파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익명을 요청했으니 계속 ‘그’라고만 부르도록 하자. ‘묻는 남자’, ‘애스크(Ask)’ 등 뭐라고 불러도 좋다. 다만 그는 게임이 나쁘다는 이들에게 다가가 게임 제목이 뭐냐고 묻는 보통 게임 개발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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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제목 묻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익명 개발자와 페이스북 페이지

사람들은 모든 ‘과자’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과자가 무슨 재료를 썼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이때 과자 이름을 빠뜨려선 안 된다. 비난의 화살은 과자 전체가 아니라 건강에 안 좋은 성분을 함유한 제품에만 날아가 꽂힌다. 과자를 만든 회사는 성분을 바꾸거나 과자 생산을 중단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소비자도 불매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의 의사를 밝힌다.

게임은 다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게임이 ‘나쁜 녀석들’이다. ‘어디’에서 개발한 ‘어떤’ 게임이 ‘무슨’ 콘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게임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게임이라는 범주만 두드러진다. 칼 들고 싸움을 벌이는 MMORPG도, 스마트폰용 동물 달리기 게임도 모두 게임일 뿐이다. ‘착한 게임’이니 ‘교육용 게임’이니 하는 식으로 근본을 알 수 없는 사생아가 만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각종 게임 규제법이 나오고, 시도 때도 없이 게임만 두들기는 상황이 답답했다”라며 “대체 나쁘다는 그 게임이 무슨 게임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더라”라고 얘기했다.

게임은 우리 사회에서 ‘악마’ 혹은 ‘마녀’가 아닐까. 실체는 없지만, 무조건 나쁜 것 취급받아야 하는 운명이 얄궂다. 나쁜 악마가 누군지 악마의 이름을 불러달라. 그 나쁜 게임이 뭔지 알아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은 십자가에 매달린 마녀의 발치에 불을 놓는 이들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인 셈이다.

그가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자기반성 덕분이었다. 그는 게임이 좋아 게임 개발학과에 진학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게임 개발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꽤 큰 게임 개발업체에 적잖은 시간을 몸담았다. 하지만 물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만들고 있는, 만들고 싶은 게임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더라”라고 털어놨다.

“게임회사에서 게임을 만들 때 과연 게이머에서 어떤 경험을 줄지 고민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나는 어떤 게임을 만들어 무슨 즐거움을 줄 것인가를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게임이란 게 과연 몇 가지 장르로 묶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게임을 “게임은 목적성을 가지는 대화형 엔터테인먼트”라고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만약 TV 드라마 화면에 대화형 선택지를 넣어 시청자가 드라마의 흐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것도 게임이 된다. 장기나 체스도 게임이고, 하물며 가위바위보도 게임이 아닌가. 게임이라는 말은 특정 장르에 구속할 수 없고,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추상적인 말이며, 막대한 매체의 총칭이다.

그는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어떤 게임을 지목하고 하는 말인지 궁금해졌다. 2013년 6월, 그는 게임 제목 묻기 운동 트위터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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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고, 공감하는 댓글이 달릴 때 뿌듯하더라고요. ‘그러게요. 나쁘다는 그 게임 제목이 뭘까요?’란 식이었죠. 사람들이 다양성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응원의 파도는 비교적 빨리 일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운영 중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따금 들어가 흔적을 남길 뿐인 트위터에서도 공감을 샀다. 더 많은 이들의 손길이 운동에 참여할 때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은 운동을 넘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될 게다.

혹시 주변에 게임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붙잡고 물어보자. 그 게임 이름이 무엇인지. 게임 제목 묻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도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이 마치 머리에 띠 두르고 사람을 모아 힘을 쓰는 ‘시위’로 비치는 것을 경계한다.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은 ‘운동’이라기 보다는 게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게임이 나쁘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과 대면했을 때 게임 이름을 묻는 식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일깨워주는 셈이다. 그는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을 ‘리빙 포인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떤 신문에 실리는 작은 생활 속 팁 말이다.

나쁜 게임이 뭔지 정확한 이름을 집어낼 수 있을 때, 그래서 모든 게임이 나쁜 게임이라는 오명을 벗을 때, 우리 사회에서 게임이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모든 음악과 모든 영화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국회에서 게임 중독법 등 게임 규제 논란이 한창인 지금, 다행히 법안이 저지되더라도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결정한 까닭이다.

“비폭력 대화와 상통해요. 상대방이 감정적인 말로 목소리를 높일 때, 그냥 물어보는 거에요. 생각해서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죠. 게임이 나빠? 그 게임이 뭔지 알려줄래?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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