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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원년, “IT도 안녕 못합니다”

2013.12.23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25일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한 연설의 일부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경제가치다. 연설문에도 나와 있듯 과학과 문화, 산업을 연계해 창조의 꽃을 피우겠다는 게 창조경제다.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이 부르짖은 창조경제의 원년이었다. 헌데, ‘창조’도 ‘경제’도 온데간데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IT 업계는 그리 ‘안녕’하지 못했다. ‘안녕’이 저만치 내팽개쳐진 탓이다.

2013년의 끝자락을 일주일 정도 남긴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자.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공약도 간데없는데, 하물며 창조경제라니. 알이 꽉 찬 물고기가 들어있어도 모자랄 매운탕 솥에 돌멩이만 시끄럽게 끓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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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사진: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스마트폰 보조금 마찰에서 ‘단통법’까지

시작부터 안 좋았다. 먼저 국내 이동통신시장 얘기부터 하자. 올해 1월부터 국내 이동통신업체 세 곳이 돌아가며 영업정지를 당했다. 스마트폰을 팔 때 과도한 보조금을 줬기 때문이란다. 1월7일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SK텔레콤과 KT를 거치는 장장 66일의 정지기간. 누리꾼은 보조금 사그라드는 이 기간을 이른바 ‘빙하기’로 부른다. 2002년 이후 세 번째 단행된 조치였다.

이동통신업체의 보조금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 문제는 연말까지 이어진다. 5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하 단통법)’이 국회 발의된 이후 삼성전자의 반발로 마찰을 빚었다. 단통법은 제조업체가 단말기 판매량과 장려금 규모, 매출액, 출고가 등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게 돼 있는데, 이를 알리면, 해외 사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주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단통법에서 제조업체의 자료제출 부분을 수정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대로 해를 넘기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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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마약이라굽쇼?”…게임 중독법

가슴에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쪽은 다름 아닌 게임업계다. 게임업계는 2013년을 오롯이 ‘중독∙예방 및 치유에 관한 법률’ 이른바 ‘게임 중독법’과 다투는 데 받쳐야 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4월 국회에 발의한 법안 ‘게임 중독법’이 시작이었다. 법안을 보면, 게임은 마약과 술, 도박과 함께 엮인다.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나 행위를 나라가 관리하겠다는 게 법안의 취지다. 게임 개발자가 부지불식간에 마약 제조업자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한술 더 떴다.

황우여 대표는 지난 10월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하여야 한다”라며 “중독은 개인건강 문제뿐 아니라 자살이나 각종 범죄, 생산성 저하로 중독자 가족과 사회 전반에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우여 대표는 구체적으로 게임을 지목하며 “최근 게임에서처럼 그냥 죽여보고 싶었다는 ‘묻지마 호기심 살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심지어 한 중학생은 컴퓨터게임 하는 것을 나무란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임중독의 비극”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여당의 게임 때리기에 게임업계는 조직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10월 게임개발자연대가 출범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등 문화계 전반이 연대한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조직됐다. 게임 중독은 불충분한 자료가 만든 허상이며, 아이를 게임 과몰입으로 내모는 것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 게임 중독법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진짜 ‘사회의 악’이 게임일까. 규제 중독에 걸린 국회의원과 과도한 학업, 경쟁 스트레스가 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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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툭튀’ 샵메일

한국의, 한국을 위한, 한국만의 서비스는 이제 옛말인 줄로만 알았다. 국제 표준 기술이 도입되길 바라는 범사회적 의식이 뿌리를 내린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한국정보인증이 공인전자주소 ‘샵메일’을 추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국제 표준은 국내에서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샵메일은 e메일 주소 구분점에 골벵이(@) 대신 샵(#)을 쓰는 주소 체계를 말한다. 쉽게, ‘sideway#bloter.net’과 같은 e메일 주소를 쓰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샵메일은 공인전자주소 웹사이트에서 공인인증서로 본인확인을 거친 뒤 서비스를 신청하면 쓸 수 있다. 법인 사용자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 샵메일을 보낼 때 내는 수수료고, 받을 때는 수수료가 없다.

샵메일을 왜 만든 것일까. 공인인증서로 기업과 개인을 인증하기 위함이다. 전자문서를 개인이나 기업이 보내고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보장하겠다는 게 샵메일 도입 배경이다. 문서의 부정을 막고 내용증명 기능을 추가한 등기우편의 온라인판인 셈이다.

한국정보인증은 2013년 11월부터 샵메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홍보대사로 인기 개그맨을 섭외했고, 서대문구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전자문서유통센터 등 기관에서 우선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샵메일을 둘러싼 잡음, 전부 무시하고 돌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국제 표준이 아니다”, “기존 e메일(@) 인프라를 무시하는 서비스다”, “전세계 e메일 시장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수많은 반발이 무색해졌다. 게임 중독법을 정부의 ‘규제 강박’이 낳은 사생아라고 본다면, 샵메일은 그들의 ‘인증 강박’이 불러온 프랑켄슈타인이다.

삽메일을 인터넷 은어 2개를 연결해 설명해보자.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듣도 보도 못한 잡것(갑툭튀듣보잡)’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는지.

지식경제부 공인전자문서 샵메일

“해외 서비스도 심의”…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번에는 난데없는 심의 얘기다. 국내 규정을 어긴 해외 서비스를 심의해 차단한다는 심의규정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2월17일 정보통신 심의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 공청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보통신 심의에 관한 규정 제3조에 따르면, ‘일반에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는 심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해외 서비스는 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해외 서비스라 할지라도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이므로 심의를 하겠다는 게 뼈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공청회에서 “해외 웹사이트를 직접 심의하여 삭제・폐쇄하는 게 아니다”라며 “접속을 차단해 국내 이용자가 불법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구제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해외 서비스를 이용할 때 요긴하게 썼던 접속 우회로도 막힐 것으로 보인다. 한명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팀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우회 기술을 막을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쩌면 창조경제란 너무 눈이 부셔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 위험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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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댓글’이 뽑았나

2013년 IT업계 많은 이들이 안녕하지 못했다 한들 이 사건만큼 안녕하지 않은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의 트위터와 댓글이 지난 2012년 대선을 얼룩지게 했다는 논란이 2013년 가장 큰 사건이다.

2012년 12월12일 민주통합당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다른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작성했다는 혐의를 들어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 씨를 공직선거법을 위반으로 고소했다. 해를 바꾼 2013년 3월 여야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것을 합의한다.

국정원 여직원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 댓글 사건의 핵심인물로 떠올랐고, 국정원 전∙현직 간부도 현재 재판 심리 중이다. 국정원의 ‘심리전단’이라는 알쏭달쏭한 조직이 유명세를 탄 것은 물론, 수사 과정에서 국방부도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정치적 댓글 작업을 벌였다는 혐의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몸살을 앓은 것은 트위터다. 국정원은 선거 기간 트위터에 2만여건의 트윗을 작성했다고 11월 공식 시인했다. 한겨레는 12월 국정원이 작성한 트윗이 2091만여건이나 더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선거 기간 운영한 심리전단 계정은 2270개, 검찰이 기소한 트위터 글만 해도 121만여건에 이른다.

새누리당이 국정원의 트윗, 댓글 사건에 관한 특검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12월23일 검찰은 “국정원의 트위터는 선거∙정치에 개입한 것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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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사진: ‘대한민국 청와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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