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경제’ 실리콘밸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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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지난 2013년 12월20일, 2대의 구글 통근버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24번가와 발렌시아가를 점령한 시위대에 의해 그 자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같은 지역에서 지난 12월9일 구글 통근 버스가 정지당한 데 이어 일어난 두 번째 사건이었고, 같은 날 인근 오클랜드시에서 또 1대의 구글 통근 버스가 저지당했던 걸 감안하면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위대를 분노의 대상은 검색제왕 구글만도 아니었다. 그 날 정지당한 버스 중에는 애플 직원을 가득 채운 버스도 있었다. 땅값 상승으로 인해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거리에 몰리게 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모인 시위대의 주된 불만은 실리콘밸리 지역의 땅값 상승을 주도한 구글, 애플 등을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 전체에 향해 있었다.

구글 통근버스의 유리창이 시위대에 의해 깨지기까지 했던 지난 1220일 웨스트 오클랜드 지역에서 발생했던 사건은 이런 실리콘밸리 기업과 인근 주민 간의 긴장관계가 얼마나 고조됐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비판 언론인 인디베이닷오그에 따르면 웨스트 오클랜드 지역은 전통적으로 오클랜드 항구 근처에 사는 흑인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직원들이 점차 이 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땅값이 상승하고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43월까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강제 퇴거 통지를 받은 거주민 수는 연간 1700건이 넘는데, 이는 2000년대 초 닷컴붐이 꺼진 이후 가장 높은 수치.

2013년 8월 기준 샌프란시스코 지역 강제 퇴거 현황도. (출처: 강제 퇴거 반대 맵핑 프로젝트 사이트)

2013년 8월 기준 샌프란시스코 지역 강제 퇴거 현황도. (출처: Anti-Eviction Mapping Project)

이런 사건들이 계속 불거지면서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소수의 월가 금융인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다수의 미국인의 삶을 파탄에 몰아넣은 뒤에도 막대한 공적 부조를 받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것처럼, 실리콘밸리 역시 소수의 집중된 경제 권력으로서 자신들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나날이 심해져 가는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실리콘밸리가 혹은 기술 혁신이 미국 사회의 불평등의 근원인 것처럼 비난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땅값 상승으로 인한 하이테크 기업들과 인근 주민들 간의 갈등이 미국사회의 빈부 격차를 얼마나 대표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가?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말까지 소득 계층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프랑스에서는 하락했고 독일에서는 현상 유지를 했으나, 미국에서는 8%에서 16%로 급등했다. 특히 이 1% 중에서도 슈퍼 리치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인과 전문경영인이 60% 가량을 차지하는 소득 계층 상위 0.1%는 현재 전체 소득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내야 할 세금은 1970년대 기준으로 절반 가량 감소됐다. 소득 분배를 놓고 봤을 땐, 미국은 유럽 국가부터는 남아메리카의 소득 분배 구조에 더 근접해가고 있다. 미국은 적어도 대다수 미국인들에겐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다.

예일대 정치학과의 제이콥 해커 교수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의 폴 피어슨 교수가 공저해 2010년에 출판한 승자 독식의 정치에 따르면, 이렇게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이나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혁시대(The Progressive Era)를 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이상과는 다르게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돼 가는 까닭은 의회 정치의 부패 때문이다.

흔히 미국의 현대정치사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부터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으로 이어지는 시민운동의 발달 과정으로 판단하기 쉬우나, 그 이면에는 워싱턴과 월스트리트의 부적절한 관계의 심화가 있었다. 월가의 ‘워싱턴 점령’은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됐고, 그 과정은 자발적이었다. 금융 산업 탈규제와 부유층 세제 감면을 외치면 외칠수록 로비스트를 통한 정치 후원금은 더 풍성해졌고, 그럴수록 미국 정치계와 경제계의 유착은 강력해졌다.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인이 0.1%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1970년대부터 소수 정당으로 몰린 공화당이었다. 그들은 개혁시대를 이끌었던 민주당의 뉴딜 연대를 와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월가의 자금을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이 때 공화당의 월가 회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1973년에 설립된 싱크탱크가 미국 경제계 보수 정책의 중심인 해리티지재단이다. 1916년에 설립된 미국 경제계 진보 정책의 핵심인 브루킹스연구소연구의 질, 독립성, 임팩트‘(quality, independence, impact)를 모토로 내건 반면, 해리티지는 미국을 위한 리더십이 슬로건이다. 브루킹스가 사실에 기초한 중립적 의견을 통해 미국의 정책을 주도하려 한다면, 해리티지는 대놓고 공화당과 보수 정권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며 이를 통해서 이해 집단의 지지를 확보한다.

이런 공화당의 공세에 맞서 민주당 역시 월가와 좀 더 친밀해지는 노선을 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금융 산업 탈규제나 부유층 세제 감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약해지게 됐고, 결국엔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1993-2001)를 전후로 공화당과 정책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지 못하게 된다. 클린턴이 1992년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을 때, 이 새로운 경제 정책은 서민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강한 개혁 성향을 보이는 오바마가 극적으로 당선된 이후로 상황이 호전될 거란 희망이 있었으나,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공화당이 적극적 공세를 보인 1970년대 이후에도 민주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해 왔지만, 미국 의회는 다수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하원은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해 임명되지만, 상원은 각 주당 2명씩 임명된다. 연방정부의 유지를 위해서는 주간 형평성이 고려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원에서는 공화당의 입김이 강하다.

특히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강화된 의회 절차인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따라서 상원의 약 60%가 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안 승인이 불가능하다. 이 절차를 이용해 공화당은 의회 소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민주당의 개혁적 성향의 법안을 저지해왔고, 이런 성과를 통해 더 많은 정치 자금을 월가를 통해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013년 올해 101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이 셧다운(정부 기능 일시 정지)을 선언했던 까닭도, 의회 기능이 적절하게 발휘되지 못하는 까닭도, 이런 미국 정치계의 부패와 모순과 무관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실리콘밸리가 미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방관했다고 말하는 건 정당하나 ‘조장했다고 말하는 건 부적절하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은 인터넷이 상업화된 1990년대가 아닌 1970년대에 시작됐으며, 그 뿌리는 기술 혁신이 아니라 정치적 부패다. 불평등 문제의 범위를 좁혀 실리콘밸리의 땅값 상승만을 논한다고 할지라도, 주택 수요 급증에 발맞춰 지가 상승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주택 공급을 원활히 하고 교통 등 다른 공공 인프라를 공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이지 기업의 역할은 아니다.

이렇게 하이테크 기업들과 인근 주민들 간에 갈등이 심화된 배경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가장 갈등이 극심했던 오클랜드 시위건도 이면을 들여다 보면 정부의 억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문제의 한 원인을 차지한다. 왜 이 사건이 웨스트 오클랜드시에서 일어났는가? 오클랜드시와 연방 사법기관은 오클랜드시의 치안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800대가 넘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감시 체제를 더 철저히 하고 있는데, 이는 역으로 해당 지역의 불만과 불안을 고조시키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이런 긴장 상태 속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침입자로 여겨지는 하이테크 기업들에 쏟아지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주 내에서 이렇게 강제 퇴거가 쉽게 증가할 수 있는 까닭에는 1985년에 주 의회가 입법한 엘리스 법이 존재한다. 보통 미국 주에서는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임대료 통제법 적용한다. 이 임대료 통제법은 임대인이 올릴 수 있는 임대료에 한계선을 그음으로써 임차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걸 목표로 한다. 그러나 엘리스법은 이 임대료 통제법에 예외를 만들어서 임대인이 폐업했을 경우, 비록 임차인이 그 동안 신의성실한 임차인이었고 제때 임대료를 지불했을 지라도 이들을 강제 퇴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199711일부터 20138월 말까지 이 엘리스법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낼 임차인을 받아 들이거나 저렴한 공용 주택을 고급 주택으로 개조하면서 이뤄진 강제 퇴거 건수만 모두 3705이었다.

여기서 더 불편한 진실은 미국 의회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주 정부 역시 이 승자독식의 경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 하이테크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고 실리콘밸리가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온 건 벌써 수십년이지만, 세금 낭비를 통해 캘리포니아주가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것 역시 수십년이다. 2011년 민주당의 제리 브라운이 주지사로 취임한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2013년부터는 흑자로 전환됐다고 발표하긴 했다.

그러나 미국 시사 전문지 뉴요커가 지적한 것처럼, 캘리포니아주의 흑자 전환은 브라운의 선정 못지 않게 해당 지역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의 활황으로 인해 자본소득세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주 정부의 재정 수익 극대화란 목표와 거주민들의 생활 안정이란 목표가 충돌할 때,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당위가 갈등할 때, 캘리포니아 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가 더 이상 가열되고, 확산될 것인지 아닐지는 하이테크 기업 못지 않게 주 정부가 이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달려 있다.

물론, 실리콘밸리 기업이 무조건 착한 기업은 아니다. 예컨대 구글이 개방을 추구하는 까닭은 오픈 인터넷에 공유된 콘텐츠가 많을수록 그들의 검색 품질이 높아지고, 검색 품질이 높아질수록 그들의 광고 수익이 늘어나 그들의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시작한 머니 게임에 민주당이 결국 끼어들게 됐던 것처럼, 월스트리트와 다른 기존 산업이 시작한 로비 게임에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기업마저 점점 더 깊이 참여하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테크크런치가 201364일에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구글이 2012년에 미국에서 로비에 투자한 돈만 1820만달러에 이른다. 실리콘밸리 기업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보전하려면 워싱턴이, 정치가 중요하단 걸 인지해가고 있다.

이런 판국에서 실리콘밸리가 또 하나의 월스트리트가 돼 절제하지 못하는 탐욕의 주체, 대중의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구글의 모토인 악이 되지 말자를 넘어서 공공 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중이 새로운 사회적 엘리트로서 실리콘밸리에 바라는 건 혁신과 창조의 기수, 부와 성공의 화신을 넘어, 이젠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