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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의 팥소는 누가 뭐래도 ‘키보드’

2014.01.13

요즘 블랙베리 소식이 부쩍 늘었다. 새 CEO를 맞은 블랙베리는 한방에 시장 흐름을 바꿀 ‘혁신’보다는 블랙베리의 ‘강점’을 살리는 데 조심스럽게 한발짝씩 떼고 있는 모습이다.

블랙베리의 CEO인 존 첸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나올 블랙베리의 대부분은 하드웨어 키보드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키보드는 블랙베리의 상징이자 블랙베리 하드웨어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키보드는 블랙베리에 가장 큰 딜레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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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블랙베리 마니아들이 대세에서 밀려난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고집하고 있다. 키보드와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하자면 빠른 e메일이나 블랙베리 메신저가 그 역할이었겠지만, 이는 상당부분 다른 대체 수단으로 희석되고 있다. 블랙베리 메신저 때문에 블랙베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세계 스마트폰 이용자 가운데에서도 매우 한정적일 것이다. 이를 대체할 메신저는 많다. 빠르고 확실한 e메일 역시 강점이긴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기 위해서는 매달 통화 요금 외에 추가로 돈을 내고 ‘블랙베리 인터넷 서비스(BIS)’를 이용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을 통해 월 5천원을 내야 BIS에 접속할 수 있다. 블랙베리는 메신저는 다른 플랫폼에 개방했지만 BIS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마니아들이 블랙베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혹은 세컨드 폰으로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키보드에 있다.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배열이나 자동완성, 진동 기능을 더해도 직접 ‘톡톡’거리는 키보드를 치는 것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윈도우처럼 터치스크린 없어도 충분히 불편하지 않은 것이 블랙베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블랙베리는 그간 몇 차례 키보드 없는 풀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키보드만 고집하고 큰 화면을 쓰지 않은 것이 시장 흐름을 쫒아가지 못했다는 평도 받았다. 블랙베리는 그 동안 ‘블랙베리 스톰’을 비롯해 몇 차례 아이폰 형태의 터치스크린폰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블랙베리에 이런 제품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만 심어줬을 뿐,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다. 이후 ‘블랙베리 볼드 9900’에 키보드와 터치스크린을 넣긴 했지만, 블랙베리는 터치보다 트랙볼과 키보드가 더 잘 어울리는 운영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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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 맞서기 위해 내놓았던 ‘블랙베리 스톰’

하지만 더 큰 화면 전쟁과 게임, 동영상 등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터치스크린에 대한 요구는 블랙베리에 끊이지 않았다. 블랙베리라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태블릿인 ‘블랙베리 플레이북’을 내놓으면서 풀터치스크린 기기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QNX를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베리 태블릿은 주저앉고 말았다. 블랙베리의 사활은 ‘블랙베리 10 OS’에 걸려 있었는데 이때 블랙베리는 주력 제품으로 풀터치스크린을 앞세운 ‘Z10’을 맨 처음 꺼내 들었다.

물론 블랙베리의 터치스크린 키보드는 수준급이었다. 자동완성 기능이 무턱대고 적용되지 않고 글자 일부를 입력하면 추천 단어를 직접 보여줬고, 추천 단어를 기반으로 다음에 누를 키를 좀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기능도 있었다. 하지만 기기나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를 대신할만큼 매력적이지 않았고, 키보드도 빠졌다. 이후 Q10, Q5 같은 후속 제품이 나오긴 했지만 이미 블랙베리는 너무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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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 CEO의 의지는 꽤 강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나올 블랙베리에서 키보드가 차지할 비중이 높다”라며 “앞으로 나올 블랙베리에는 거의 대부분 키보드가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드파티 업체가 만든 아이폰용 키보드 케이스 ‘타이포'(Typo)를 고소한 것도 키보드를 블랙베리의 상징으로 만들려는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터치스크린은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이다. 블랙베리 Q10, Q5 등이 엄지로 커서를 움직이는 트랙패드를 떼어낸 것만으로도 파격일 수 있다. 블랙베리가 당장 포기해야 할 것은 키보드보다 BIS 요금제였다. 블랙베리는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흐름을 놓치고 안드로이드가 성장하면서 잘 하던 부분마저 놓아버리고 경쟁자 쫒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블랙베리의 갈 길은 여전히 멀지만 희망은 있다. 새 CEO 취임과 더불어 이제라도 키보드를 강조하겠다고 약속한 건 기본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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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