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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굳이 법으로 ‘예술’로 규정해야 하나요?

2014.07.17

한 여인이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풀어헤친다. 머리에 먹물을 잔뜩 묻히더니 마치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큰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허리를 잔뜩 숙여 먹물을 바른 바로 그 머리카락으로. 여인의 도화지 옆에는 방금 화장실에서 뜯어온 듯한 남성용 소변기가 놓여 있다. 쓰레기는 아닌 것 같다. 검은색 붓으로 서명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예술가의 전위적인 작품일지도. 여인이 머리카락으로 한바탕 붓춤을 추는 무대 뒤에는 어쩌면 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작가가 그렸다는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 두 음절로 이루어진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상은 뭘까.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전통미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 아닐까. 예술이라는 낱말이 대중에게 던지는 의미는 대개 그런 종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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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게임을 예술의 한 분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7월16일 날짜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이름은 ‘문화예술진흥법일부개정안(이하 게임 예술법)’이다. 게임이 꼭 예술이어야 하나? 예술은 뭐고 게임은 또 뭘까. 근본적인 질문에 앞서 게임 예술법의 속을 살펴보자. 난해한 질문이 떠오르는 것과 달리 내용은 퍽 간결하다.

현재 문화예술진흥법에는 문학과 미술, 음악, 무용, 만화 등 13가지 문화 콘텐츠가 예술로 정의돼 있다. 하지만 게임은 없다. 게임 예술법은 문화예술진흥법이 규정한 예술의 범주에 게임을 포함시키기 위한 법안이다. 문화예술진흥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근간이 되는 법이다. 게임을 예술로 포함시키면, 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광진 의원이 게임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김광진 의원은 16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미술, 소설, 영상, 음악 등을 합치면 영화가 되고, 거기에 관객의 참여까지 더하면 게임이 된다”라며 “문화예술로 인정받는 분야들을 집대성한 매체가 문화예술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옳은 말이다. 그림과 영상, 음악과 시나리오. 여기에 보는 이의 참여와 고도로 발달한 IT 기술까지. 게임은 인류의 창작 활동 중 가장 진보한 매체가 아닐까. 김광진 의원이 설명한 것처럼 게임은 예술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문화예술진흥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2조제1항제1호 중 “출판 및 만화를”을 “출판, 만화 및 게임을”로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임 예술법에서 예술에 집착하는 게임 업계의 분위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게임이 법적으로 예술로 인정받아야 사회의 각종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 말이다. 게임 업계와 정부의 정책이 집착해야 하는 부분은 예술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문화가 자유롭게 생산되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게다가 국내에서 게임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은 까닭은 법이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잖은가. 문화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 탓이 크다. 더 나아가 학업과 억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가와 문화를 등한시하는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게임이 법적으로 예술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라는 카테고리는 또 다른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법으로 규정된 예술은 필연적으로 ‘비예술’을 낳는다. 예술이 아닌 것은 법적인 차별을 받게 된다. 게임을 법적인 예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위험한 까닭이 여기 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그중 잘 만들어진 게임은 자연스럽게 예술이 된다. 법이 정하는 예술이 아니라 진실된 의미의 예술로서 말이다.

게임 예술법은 게임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예술이라는 낱말을 소도구로 끌어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 그리고 게임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서 바라볼 때, 게임의 사회적 위치는 자연스럽게 재고될 것이다. 법의 틀 안에 포함되는 예술로서의 게임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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