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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스마트시계, 차고 싶을까요?”

2014.07.18

“안경점 가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안경이 있잖아요. 뭔가 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안경의 기본적인 기능은 동일하죠. 기능이 똑같다고 보면 다른 디자인이 수천개씩 나올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 기호는 너무나 다양해요. 웨어러블도 이런 면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김석기 모폰웨어러블스 대표는 이처럼 기능적인 면에만 몰두해 개성 없는 제품을 대량으로 만든 탓에 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되지 못한다고 풀이했다.

입는컴퓨터, 웨어러블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구글안경, 삼성 갤럭시기어, LG G와치, 모토로라 모토360 등 제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웨어’라는 웨어러블 기기용 운영체제(OS)를 내놓기도 했다. 애플이 이달 초 고급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에서 고위 임원을 영입한 것도 ‘아이와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내놓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웨어러블 시장에 앞다퉈 뛰어드는 IT기업의 뜨거운 관심이 무색하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새 스마트 시계가 나왔다는 기사가 쏟아져도 정작 스마트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왜일까. 김석기 대표는 IT기업이 웨어러블 시장에 전자제품 만들던 습관대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제품 만들듯 웨어러블 기기 만들면 아무도 안 써

“저기(카페 옆자리) 앉아 있는 여성분을 보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꽃무늬 치마를 여성스럽게 잘 갖춰 입었어요. 그런데 저런 분한테 시커먼 우레탄 밴드를 차라고 해보세요. 그걸 쓰겠어요? 웨어러블 기기를 만드는 큰 기업은 아직도 스마트폰 만들던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어요. ‘니가 뭘 입든 신경 안 써.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그냥 써’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걸 쓰겠어요?”

김석기 대표는 기술과 패션이 만나는 웨어러블 시장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웨어러블 기기는 패션 제품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 김 대표의 분석이다.

“전자제품이라고 해도 손에 들고 다니는 것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건 전혀 달라요.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건 어떤가요. 1만원짜리 티셔츠 한 장을 사도 그냥 사지 않아요. 여러벌을 살펴보고 입어 보고 사죠. 왜 그럴까요. 몸에 지니고 다니며 내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노트북은 누군가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옷을 똑같이 입는 사람은 없잖아요”

김석기 대표는 기존에 전자제품을 만들 듯 몇가지 웨어러블 기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일반 소비자가 웨어러블 기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갤럭시기어가 기능적인 것 말고 디자인적인 면에서 모든 사람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길거리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계를 차고 다닌다고 상상해보세요. 전자발찌도 아니고 말이죠.”

samsung_galaxy_gear_ad ▲”갤럭시 기어 찼어?”

기술에만 집착하면 한계 있어

웨어러블 기기가 IT 마니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많은 기능을 작은 기계 안에 욱여넣어야 할까. 김석기 대표는 웨어러블 시장은 기능적으로 차별화할 수 없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해외 전문 개발사가 센서나 칩셋을 내놓으면 이것을 제조사가 가져다 조립해 완제품을 내놓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이나 구글도 알맹이는 똑같이 스마트폰에 쓰던 부품을 가져다 쓴다”라며 “기능으로 특화할 게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 IT기업과 정부는 여전히 기술에만 집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13개 분야 기술을 꼽으며 ‘입을 수 있는 스마트기기’를 첫번째로 내세웠다. 산자부는 웨어러블 등 13대 기술에 5년 동안 20조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돈은 대부분 기술을 갖고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소비자와는 거리가 먼 연구실인 경우가 많다. 이현학 한국패션협회 팀장은 “웨어러블 분야에 투자가 일부 연구원이나 센터에 쏠리기 때문에 막상 나온 결과물은 상품으로 볼 수 없는 제품이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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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대표는 웨어러블 기기가 보급되려면 먼저 다양한 제품이 나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격이나 기능면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다양한 욕구를 지닌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김석기 대표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제품 중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요. 내 스타일에 어울리는 시계를 차고, 내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을 쓰듯이 자기에게 맞는 웨어러블 기기를 차는 거지 새로운 기능이 있으니까 쓰는 게 아니라는 거죠.”

패션 시장처럼 다변화돼야

이현학 팀장은 구글안경이 한국에 상륙하면 국내 웨어러블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글은 이미 여러 안경 전문 브랜드와 손잡고 구글안경에 패션을 입히고 있다. 이 팀장은 “애플이나 구글이 버버리 같은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웨어러블 기기를 명품화해 내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국내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라며 “해외 제품이 바로 국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면 국내 웨어러블 시장은 무너질지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한국패션협회는 웨어러블 시장이 패션 전체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보고 기술에만 집착하는 정부에 패션·문화업체를 소개해 일반 소비자가 쓸만한 제품을 만들도록 할 계획이다.

김석기 대표는 웨어러블 시장이 시계 시장처럼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계의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를 만드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같은 모델을 저렴한 값에 대량으로 생산하기보다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쪽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유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구조다. 김석기 대표는 “기본적인 키트 같은 핵심 부품을 만드는 회사 몇 곳이 있고 나머지 회사가 그 키트를 응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nuribit@bloter.net

기술의 중심에서 사람을 봅니다. 쉽고 친절하게 쓰겠습니다. e메일 nuribit@bloter.net / 트위터 @nuri_bit / 페이스북 facebook.com/nuribi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