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처음으로 인터넷을 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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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에서 인터넷이 상용화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가지 기념 행사를 하고 있지만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터넷에서 장애인의 접근에 관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에 인터넷에서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처음 접근에 관한 내용을 글로 남긴다.

1994년 초여름,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어떤 분이 점자에 관한 것을 알고 싶다며 복지관을 찾아왔다. 그는 삼성전자 소속으로 인공 로봇 개발과 관련해 카이스트에 파견 근무 중이라고 했다. 자신이 맡은 업무는 인공 로봇의 손가락에 관한 것으로, 2개의 점이 어느 정도 가까우면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는지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손가락이 점을 인식하는 것에 관해 여러 의견을 들었지만, 시각장애인의 점자에 관한 것을 파악하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해 복지관을 찾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복지관에서 컴퓨터 점역과 자료실 업무를 관계하고 있던 나는 점자에 관한 규격을 포함해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줬다. 그런데 그는 점자프린터를 생산하는 미국 회사의 웹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인터넷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점자프린터 제조회사의 인터넷 정보에 대해 주소 외에는 제공할 정보가 없었다.

그는 내게 인터넷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인터넷 계정이 없이도 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당시 카이스트에서는 일반인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전화선 1개를 공개했는데, 그는 그 번호를 알려줬다.

평소 자료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집에 와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안 됐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엔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학이나 연구소 등 극소수였고 일반인은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이스트에서 일반인을 위해 공개한 전화번호는 웬만해서는 접속이 불가능했다. 접속한다고 해도 1회에 30분간만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을 시간인 밤 12시 넘어서 접속을 해 보았다.

접속이 됐다.

짧은 영어 실력이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미국 국회도서관 BPH(Blind and Physically Handicapped) 웹사이트 접속에 성공했다. 맹인 및 지체장애인을 위한 부서인 BPH에는 시각장애 뿐만 아니라 장애 관련 각종 자료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Braille’(점자)이라고 입력하니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자료가 화면에 나타났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복지관에서 외국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직원 자체가 극소수에 불과했고, 외국 자료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복지관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주로 심야 시간에 카이스트 회선을 통해 인터넷 항해의 즐거움을 누렸다.

1994년 가을, 우연히 시각장애인의 집을 방문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당시 사회적으로 인터넷에 관한 열기가 높아, 시각장애인도 인터넷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것이 화제의 초점이었다. 일반인처럼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계정이 있더라도 스크린 리더가 인터넷을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이스트에서 외부에 공개한 전화를 활용해 미국 국회도서관에 접속했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기적적으로 접속에 성공했다. 복지관에 종사하면서 시각장애인이 음성합성 장치와 스크린 리더를 활용해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화면 내용을 읽어내는 시간은 훨씬 오래 걸렸다. 이에 정보 장애가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것도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있는 각종 정보를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계정이 필요했다. 당시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계정을 별도로 신청해야 했는데, 요금이 비싸서 개인이 신청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계정을 복지관 명의로 신청해 시각장애 관련 정보를 구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종전의 고퍼(Gopher)에서 급격히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이동하던 시기라, 자료를 찾은 지 일주일도 안 돼 웹사이트가 열렸다. 자료를 찾는 대상도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관련 점자 및 점역 프로그램, 보조공학기기, 재활훈련 등에 관한 것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복지도 장애인 복지의 한 분야라서 찾는 자료가 점점 범위를 넓혀나가게 됐다. 시각장애 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 지체장애, 발달장애, 자폐증, 난독증, 주의력 결핍장애 등도 관심을 갖게 됐다. 자료 주제도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활 전반에 관한 것을 찾게 됐다.

외국의 점역 프로그램 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때였다. NFBTRANS, 터보브레일, 핫다츠, 메가다츠 등 4종의 외국 점역 프로그램의 명령어와 사용법을 소개하고, 윈도우를 이용한 촉각 교재 제작도 시연했다. 특히 4종의 외국 점역 프로그램은 인터넷이 아니면 국내에서는 자료를 구할 방법이 없었으며, 단순 점역을 벗어나 워드 프로세서를 포함하는 외국 점역 프로그램 소개는 점역 담당자에게 귀한 자료가 됐다.

본격적으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게 되면서 생활도 바뀌었다. 퇴근 후에는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인터넷에서 자료를 서핑한 다음 2시간 자고 출근했다. 새벽 5시까지 인터넷을 한 이유는 당시는 오전 5시부터 일일점검을 해 통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고 오직 전화망으로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나도 집 전화를 인터넷 회선으로 사용하다보니 가족 간에 연락이 안 됐다. 그래서 집 전화를 1대 더 설치했다.

장애 관련 웹사이트를 어느 정도 수집한 뒤부터, 전국 장애 관련기관 자료 담당자에게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찾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올렸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자료 담당자에 대한 교육은 불가능했다.

무척 실망했다.

시각장애인의 인터넷에 활용에 관해 평소 의견을 나누던 청주맹학교 길태영 선생에게 하소연했다. 길 선생은 뜻밖에도 출판사를 찾아가 책으로 출판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막 화를 냈다. 당시에는 책 출간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었지 일반인은 감히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관 내에서의 자료 담당자에 대한 교육이 불가능하고, 모은 자료를 사장시키지 않는 방법은 출판 뿐이었다.

막상 출판을 결심하고 나니, 다음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동안 구입한 컴퓨터 도서의 출판사 목록을 정리하고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 같으면 저술기획서를 작성해 송부한 뒤 다음 절차를 진행하지만, 그때는 컴퓨터를 활용한 출판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출판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다.

1996년 4월 중순, 복지관에 출근해 무조건 당일 휴가를 청원하고 출판사를 찾아갔다. 강남, 마포, 성북에 있는 출판사를 돌았다. 잉크 프린터로 인쇄한 책자를 보여주며 내용을 설명했다.

내용을 본 출판사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들은 ‘내용은 좋은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판매가 될 것 같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좌절했다.

2호선을 타고 귀가하다가 마지막으로 구의역에 있는 도서출판 삼각형을 찾아갔다. 내용을 설명했더니 강민구 사장이 출간하자고 했다. 담당 직원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너무 의아했다. 왜 출간하느냐고 물었더니, 삼각형에서는 인터넷에 관한 책을 이미 몇 권 출간했고 그 중에 장애인에 관한 것을 한 권 출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인세는 정가의 10%(50만원. 나중에 정가가 올라서 60만원 받았다)를 준다고 했다.

강민구 사장은 내용을 검토하더니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방법과 시각장애인이 인터넷 접속시 사용하는 텍스트 웹브라우저 ‘링스’(Lynx)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 이름은 애초에 <장애와 인터넷>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애라는 개념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으로 하기로 했다.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을 출판하기로 하고 원고를 수정하는 단계에서 대구대학교 점자도서관에 근무하는 이경재 씨를 만났다.

당시 우리 둘은 한국점자도서관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임원회의 뒤 이경재 씨가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금년(1996년) 초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대구경북지회장을 맡았는데, 회장 공약으로 회원에게 인터넷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도 인터넷을 잘 모르는데 시각장애인에게 가르칠 방법이 없다며 그는 막막해했다.

내가 인터넷에 관한 책을 집필해 곧 출간할 단계라고 하니까, 이경재 씨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대구에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것과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1992년 무제한 음성합성장치 ‘가라사대’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말하는 기구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소리 나는 한글을 활용한 컴퓨터 활용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는 곳은 하상재활공학센터, 부산맹인복지관,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미래개발원, 하상재활공학센터, 한국맹인복지연합회 5군데였고 한국장애인재활공학센터에서는 시각장애인용 BBS(전자게시판)인 ‘넓은마을’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성합성장치를 활용해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하는 경우 많은 기능이 포함된 스크린 리더를 활용해야 하지만, 당시 국산 스크린 리더 ‘소리눈’은 인터넷상의 링크를 제대로 추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국내 제품을 활용하지 못하고 외제 음성합성장치인 덱토크(DecTalk), 사운딩보드(Sounding Board), 신포닉스(SynPhonix)를 설치하고 외국 스크린 리더 ‘보컬아이즈’(VocalEyes)를 활용해야 했다.

모든 것이 문제였다.

먼저 음성합성장치가 없었다. 한국장애인재활공학센터의 서인환 소장에게 부탁해 신포닉스와 스크린 리더 보컬아이즈를 구했다.

강의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는 강의 내용을 점자화해 참여자 수만큼 제작했다.

1996년 5월10·11일 1박2일 일정으로 대구 대명동에 있는 대구시각장애인아카데미 사무실에서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을 실시했다.

준비해 간 신포닉스를 컴퓨터에 장착하고 보컬아이즈를 활용해 소리로 인터넷을 구동했다.

아카데미 회원 9명을 대상으로 한 강좌는 도스(DOS)에서 구동되는 텍스트 웹브라우저 링스의 사용법과 야후·알타비스타를 활용한 검색의 실제, 보컬아이즈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링스 사용법은 뉴메릭 키보드를 활용한 커서 이동, URL 이동, 이동 정지, 출력, 저장, 파일 정보 얻기, 북마크, 옵션 메뉴 활용, 끝내기, 찾기, 계속 찾기, 리로드, 리프레시, 편지 보내기,도움말 활용 등을 가르쳤다.

링스는 미국 캔자스대학에서 만든 교내 정보 시스템이 발전한 것이다. 고퍼를 모델로 보다 나은 미디어 환경의 웹브라우저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의 웹브라우저로, 좋은 인터넷 환경이 실현되지 못한 사용자들이 쓰도록 배포됐다.

웹의 묘미는 그래픽 이용자화면(GUI)을 지원하는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텍스트와 함께 멀티미디어 기능을 즐기는 데 있다. 그러나 GUI를 활용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이거나, 컴퓨터의 성능이 떨어져 그래픽을 비롯한 멀티미디어를 구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해서 정보 창고인 웹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가 링스이다.

링스는 텍스트만 보여주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인터넷 자원을 전부 접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픽을 처리하지 못하고 폰트 크기나 선, 특수문자 등을 처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링스에서는 링크에 자동으로 번호가 나타나, 해당 번호만 입력하면 연결된 웹사이트로 이동해 웹을 활용할 수 있다.

'링스'로 야후코리아 웹사이트에 접속한 모습. 링크 앞에는 대괄호 안에 번호가 있다.

‘링스’로 야후코리아 웹사이트에 접속한 모습. 링크 앞에는 대괄호 안에 번호가 있다. 백남중 제공.

시각장애인 인터넷 교육이 중앙일보 1996년 5월16일자 ‘소리로 찾아가는 정보의 보고’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참가자들은 한동안 지역 언론의 엄청난 조명을 받았다.

중앙일보 1996년 5월16일자 '소리로 찾아가는 정보의 보고' 기사. '대구 시각장애인 인터네트 익히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고 컴퓨터 앞에 시각장애인이 점자 책을 읽고, 백남중씨가 설명하는 사진이 있다.

중앙일보 1996년 5월16일자 ‘소리로 찾아가는 정보의 보고’ 기사. 백남중 제공.

책 출간 즈음에 복지관 및 장애 관련 자료를 포함한 복지관 홈페이지(http://interpia.net/kswvh)를 오픈했다.

1996년 6월 중순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이 출판됐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돼 인터넷상에 있는 각종 웹사이트 정보를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따라서 전세계 장애 관련 265개 웹사이트 명칭, 웹주소, e메일과 더불어 해당 웹사이트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했다. 제조회사인 경우엔 주소, 전화번호, 팩스 번호까지 포함했다.

왼쪽 위에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이라는 제목이 2줄로 있고, 각종 장애 관련 웹사이트 로고(NARIC, Full Rulle, NFB, ACCESS PAGE, CHADD, QUICKIE)가 배치돼 있다. 한가운데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 모습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표지. 백남중 제공.

1장에서는 인터넷 접속 방법과 검색엔진, 시각장애인이 활용하는 텍스트 웹브라우저 링스의 사용법을 담았다. 2장에서는 장애 영역별 웹사이트(장애 일반, 시각장애, 청각장애, 발달장애, 정신지체,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서장애, 난독증, 주의력 결핍장애)를, 3장에서는 장애 주제별 웹사이트(법률 관련, 보조공학, 제조회사, 맹도견, 수화), 4장에서는 리스트서브와 유즈넷을 실었다.

NFB: 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 소개 페이지. 웹주소와 e메일을 비롯해 NFB에 대한 소개와 주요 내용이 적혀 있다.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내용 중. 백남중 제공.

출간을 기념해 같은 책을 점자책으로 제작해 시각장애인에게 30부를 무료로 제공했다.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애인 관련한 유일한 컴퓨터 도서다.

대구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인터넷 강좌를 하고 나니 복지관 주최로 같은 내용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강좌를 실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계획에 없는 강좌를 실시한다는 문제와 인터넷은 국제전화 요금을 물어야 한다는 등 각종 오해 때문에 이를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여러 곳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그러던 중 복지관에서 재활훈련을 수료한 이율희 씨에게 이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의 친구를 연결시켜 주었다.

행사를 진행할 후원금이 생긴 뒤부터 본격적인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7월16일 오후 1시30분부터 7월17일 오후 3시까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20명만 대상으로 삼았는데, 맹학교 및 복지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직원들도 참가하길 원했다. 결국 총 37명이 참석했는데, 시각장애인은 24명이었다.

신포닉스와 모뎀이 장착된 컴퓨터 10대와 약시자용 컴퓨터 1대 그리고 액정 패널을 준비했다. 다량의 신포닉스가 없어서 한국장애인재활공학센터에서 빌렸다. 강의용으로는 신포닉스보다 성능이 좋은 외장형 음성합성장치 ‘더블톡’을 1대 구입했다.

컴퓨터 11대를 설치했지만 개개인에게 실습용 컴퓨터를 제공하지 못하는 관게로 컴퓨터 1대당 시각장애인 2명, 정안인 2명을 짝지워 강좌를 진행했다. 참가 시각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인터넷 용어집>, 강좌 교재 등 점자책 3권을, 정안인에게는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책자를 제공했다.

강의는 인터넷, HTML, 유닉스에 대한 이해를 한양여전 전자계산기학과 심해웅 교수가, 링스 사용법과 검색엔진 야후·알타비스타, 장애 관련 웹사이트 소개, 실습은 내가 담당했다.

1박2일간 진행된 강좌였지만 음성합성장치를 활용해 화면 내용이 음성 출력되는 과정을 전부 들려줌으로써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 강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유닉스 사용법과 HTML 문서 이해가 짧았으며 FTP, 텔넷, 고퍼, e메일, 유즈넷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터넷 교육에 참가한 대전맹학교 문성준 선생은 인터넷 초보 시절 경험담과 나만의 이색 웹사이트 그리고 인터넷 관련 자료를 당시 천리안 시각장애인 동호회였던 ‘케인즈’에 올리자고 했다. 또한 한국시각자애인복지회에 대해서는 시각장애인 인터넷 교육의 정례화, 인터넷 교육을 위한 기초 교육 강화, FTP 자료실과 유닉스 등에 대한 사용법 강의 강화, 인터넷 관련 점자도서 제작 활성화, 전국적 통신망을 통한 인터넷 정보의 지속적 게재를 건의했다.

이 글을 빌려 이 모든 과정을 헤치고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 준 청주맹학교 길태영 선생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백남중 님 블로그(http://njpaiks.egloos.com/3494140)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