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SW 선생님이 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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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안랩 판교사옥 실습실에서는 스크래치 수업이 열렸다. 스크래치는 초중고 학생들이 프로그래밍 개념을 배우며 논리적인 사고 및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게 돕는 도구다. 그런데 실습실에 정작 아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학부모로 보이는 여성 30여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크래치 설명회’라도 연 걸까? 아니다. 소프트웨어(SW)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젝트 ‘안랩쌤’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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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쌤은 비영리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Software Education LAB, 세듀랩), 맘이랜서, 안랩 교육사업팀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SW 교사를 떠올려보자. 기존 교사가 대부분 진행하고 있다. 개발자나 교직을 이수한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코딩 교육 연수를 받은 강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랩쌤은 새로운 후보를 내려한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주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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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안랩쌤 수업 모습

주부와 SW 교사를 연결시킨 단체는 세 곳이다. 먼저 맘이랜서를 보자. 맘이랜서는 20대 이상의 여성 가운데 일과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직장 여성이나 구직을 원하는 여성을 돕는 소셜 벤처다. 가정 문제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새로운 직무 교육을 시켜주고, 필요한 기관에 인력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비즈니스, IT, 교육 등 다양한 산업군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 가운데 SW 교육은 세듀랩과 안랩이 함께했다. 세듀랩은 교육생 연수를 맡고, 안랩은 장소 및 후원을 담당했다.

이번 안랩쌤 1기 프로젝트를 신청한 인원은 200명. 여기서 60명만 뽑아서 두 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대다수 30·40대 여성이자, 초중등 자녀를 둔 주부였다. 아직 뱃속에 아이를 둔 임산부 교육생도 있었고, 대학생 자녀를 둘 법한 50대 교육생도 있었다. 매주 1회 3시간 수업이었지만, 8주간 이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 영주에서 판교까지 찾아온 교육생도 있었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다.

교육생 중 3분의 1은 과거 개발자였거나 IT 관련 전공졸업생이었다. 3분의 1은 과거 교직과 관련된 일을 한 사람, 나머지 3분의 1은 SW 교육에 관심을 둔 주부였다. 대다수 교육생이 SW 교육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고 이 과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1~2명을 뺀 대다수가 8주간 성실히 수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수업은 처음엔 스크래치나 프로그래밍 원리를 알려주고 이후 교사 소양에 관한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2주 정도는 모의수업 과정이 이어졌다.

교육생 정해진 씨는 대학시절 IT 관련 과목을 전공했다. 졸업한 뒤엔 네트워크 보안 관련 개발 일을 했다고 한다. 스크래치에 대해선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공부하려니 자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안랩쌤에 직접 와 전문가에게 배우고자 참여했다.

“아무래도 전공자이니까 기술 부분은 이해하기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 대학 때 배우던 내용과는 다르더라고요. 저는 C언어를 배웠는데요. 그때는 함수 기능이나 함수 쓰는 방법만 배웠어요. 또 당시엔 코드를 최적화하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스크래치는 달라요. 과학, 미술,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스크래치에 녹아 있었어요. 스크래치를 배우면 자연스레 융합적 사고가 정립될 수 있는 거죠.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어서 C언어처럼 언어를 배운다는 부담감이 없어요. 어찌 보면 최근 오픈소스도 많아지고 누구나 코딩을 배울 수 있는 시대인데, 코딩하는 기술보다는 융합적 사고가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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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안랩쌤 1기 교육생

또 다른 교육생 박종희 씨는 과거 방과후 교사로 활동했는데,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방과후 교사로 활동할 때는 로봇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과 즐겁게 수업하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 SW 교육 과정에 도전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엄마가 하는 스크래치에 더 관심 있어 했다”라며 “함께 공부하면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래밍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어려워할 것 같지만, 아이들은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가 생각한 논리대로 블록을 움직여봤는데 결과가 바로 나오잖아요. 그 자체에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해요. 아이들은 대부분 컴퓨터에 흥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는 문서만 만들어도 얼마나 재미있어하는데요. 지금까진 그러한 관심 끝에 게임이 있었어요. 이러한 흥미를 게임을 만드는 쪽으로 이끌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아이들은 컴퓨터를 대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시대잖아요. 이런 교육을 미리 접해도 좋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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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안랩쌤 1기 교육생

하신숙 씨는 진로교육 교사다. 다양한 진로를 체험할 수 있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수업하는 과정을 도와주고 있다. 최근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녀는 “10년 뒤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얘기해줘야 하고, 여기에 소프트웨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며 수강 목적을 밝혔다. 사실 하신숙 교육생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접하는 데 보수적이었다. 자녀가 게임에 빠지는 게 걱정됐고,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볼까봐 컴퓨터를 되도록 멀리하는 쪽으로 교육했다. 하지만 이번 안랩쌤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제가 하는 진로교육은요. 어떤 직업을 체험만 하는 수업이 아니에요. 미래를 준비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고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고, 가치관을 고민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미래엔 소프트웨어가 항상 있고, 피해갈 수 없더라고요. 컴퓨터가 가진 부정적인 면만 보고 미래 흐름을 거부 할 순 없잖아요. 기술 변화 속도가 더 빨라지는 이 시점에서, 기술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정보를 일단 많이 가지는 게 유리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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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숙 안랩쌤 1기 교육생

안랩쌤만의 특화된 커리큘럼은 ‘모의수업’이다. 정원을 대체로 적게 잡은 이유도 모의수업을 통해 교육생들에게 좀 더 근접해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모의수업은 세듀랩 연구원들이 맡았다. 세듀랩은 초중고 SW 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비영리단체다. 경규일 세듀랩 PM은 “강사를 양성하려면, 기술 자체를 교육하기보다 가르치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라며 “세듀랩이 플랫폼을 제시하지 않고 수업 설계나 수업 시간 배분, 수업 대상까지 교육생 스스로 설정하고 고민하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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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쌤 교육생에게 피드백을 주고 있는 정덕현 세듀랩 대외협력 이사, 경규일 세듀랩 PM, 최성일 세듀랩 연구원(왼쪽부터)

실제 교육생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듯이 모의수업을 진행했다. 앉아 있는 교육생들도 학생 역할을 나눠 맡았다. 모의 교사를 맡은 교육생은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화면에서 직접 스크래치 블록을 움직이면서 학생들에게 따라할 것을 유도했고,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대사를 인용하며 유비쿼터스 개념을 이해시키고자 했다. 선물을 주면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유도했고, 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답변에는 다시 여러 번 답변을 덧붙이는 노력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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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쌤 모의수업 현장

세듀랩은 그동안 SW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여러 곳에서 진행했다. 이번 안랩쌤 교육생들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최성일 세듀랩 연구원은 “(이번 교육생들은) 실습실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 자녀와 함께 복습하더라”라며 “학부모이니만큼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안랩쌤 1기 교육생 중 일부는 SW 교육 강사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물론 출석과 과제, 수업 이해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 평가해 일정 점수를 넘는 사람만 안랩쌤 과정을 수료한다. 정덕현 세듀랩 대외협력 이사는 “교육생 대부분 기술, 교사 소양 부분에선 잘 따라왔다”라며 “모의수업에서 교육 전달 방식이나 이해시키는 방식에 대해 많이 알려드리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교육생 중 일부는 자질에 따라 세듀랩 수업에서 보조강사와 일반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맘이랜서가 운영하는 소셜 협력 거래 플랫폼에서도 강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안랩도 합니다, 소프트웨어 교육”

안랩은 2014년에 교육사업팀을 처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사회공헌도 하고,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도 제공하고 있다. 초반에는 보안 교육을 주로 했다면, 후반에는 SW 교육에 집중했다. 최근 SW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전통적인 SW 기업으로서 SW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교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삼성이나 네이버 같은 몇몇 IT 기업들은 아이들이 참여하는 SW 교육을 진행해 왔다. 안랩은 교사 양성에 집중하면서 SW 교육의 첫 단추를 끼웠다. SW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그들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안랩을 이를 통해 SW 교육 기반을 탄탄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안랩쌤 프로젝트에선 여성 교육생만 모집했지만, 내년에 실시하는 수업에선 남성 교육생을 받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여건이 된다면 판교 외 다른 지역에서도 수업을 진행해 볼 심산이다.

전상수 안랩 교육사업팀 차장은 “창의력과 논리력을 키우기 위해 기존 도구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라며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도구로 새로운 수업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지금 SW 교육은 도구보다 융합하는 사고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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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수 안랩 교육사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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