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호재보다 악재가 더 많았다. 아니, 거의 악재로 물들었던 한 해에 가깝다. 고질적인 과잉 보조금은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과 엄포 그리고 잇단 영업정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telecom_logo_750 1~2월 : 대란의 계절 연초는 ‘대란’의 연속이었다. 1.26 대란에 이어 2.11, 2.26, 2.28 대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일 공짜폰이 쏟아진다는 기사가 났고, 사람들은 새벽마다 줄을 섰다. ‘스마트폰 싸게 사려면 밤 12시부터 인터넷을 뒤져라’는 이야기가 횡행했다. 머지 않아 번호이동을 통한 가입자를 더 이상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분위기가 통신 업계에 돌았다. 정부는 분노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보조금을 법제화하고 이를 엄중하게 다스릴 수 있는 처벌 기준을 만들려는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을 서둘러 상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같이 대란을 터뜨렸다. 앞에서는 공정한 거래를 하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대란이 터지는 통신사의 아이러니한 경쟁은 올 초 절정에 이르렀다. LGU_KT 그냥 단말기를 싸게 주는 정도가 아니라 ‘갤럭시노트3’나 ‘갤럭시S4 LTE-A’ 같은 특정 단말기는 100만원 넘는 보조금이 실리기도 했다. 90만원대 단말기 값보다 20만원씩 더 얹어주는 상황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면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체감하기 어려웠다. 대란은 사실상 점조직처럼 조용히 움직였고 늘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일부 가입자들을 대상으로만 이뤄졌다. 실제 뉴스가 나고, 대란 사실이 확인된 뒤는 이미 늦었다. ‘통신사-폰테크족-미디어-정부’의 쳇바퀴도는 눈치 싸움은 마치 뉴스에서만 보는 남이야기 같았지만 매일 가장 뜨거운 뉴스거리가 됐다.

3~5월 : 영업정지 한파 결국 1월부터 이어진 대란에 대해 미래부는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 영업정지라는 고리타분하고 먹히지 않는 것으로 증명된 방법 뿐이었다. 명분은 보조금을 많이 줘서가 아니라 차별해서 주었다는 것이었다. 올 3월부터 장장 45일 동안 통신 3사는 영업정지를 맞았다. 기존 가입자가 기기를 변경하는 것만 허용됐고 신규 가입과 번호이동은 막혔다. 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통신사들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정지가 발표되자 오히려 통신사의 주가는 올라갔다. 반면 이용자들은 휴대폰을 바꾸기 어려워졌고, 통신사 선택에 제약을 받았다. 직원 월급을 주기 어려울 만큼 어려워지는 판매점도 늘었다. 통신사 영업정지를 앞둔 3월 초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가 “영업 정지의 실질적인 피해는 판매점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시 협회는 “미래부와 방통위에 판매점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아차’하더라”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영업정지가 통신사에 처벌 효과가 있느냐는 지적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법적으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는 방책은 이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telecom 단말기 제조사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때마침 3월말에 SKT를 통해 기습 출시된 ‘갤럭시S5’는 기기 자체에 대한 구설도 있었지만 영업정지로 번호 이동 시장이 거의 없다시피 굳어져 버렸고, 보조금을 주기도 조심스러워지다보니 갤럭시S5는 신제품 효과를 전혀 얻지 못했다. 팬택은 통신사에 파는 물량 공급이 중단되면서 자금난을 맞았다. 결국 워크아웃을 거쳐 법정관리, 매각의 수순을 밟고 있다. 순간 자금 유동이 묶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6~9월 : 단통법 앞둔 연속 대란의 반복 하지만 영업정지 이후에도 대란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5월 말 LG전자가 ‘G3’를 발표하던 도중에 대란이 터지면서 신제품이 공짜가 됐을 정도였다. 통신사의 가입자 빼오기 경쟁은 단말기 값을 내리는 것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흙탕물이 됐고, 이를 덮을 수 있는 핑곗거리도 남지 않았다. 이제 보조금의 소재는 ‘단통법 이후에는 단말기 싸게 못 산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날짜를 하나하나 세기도 어려울 만큼 대란은 이어졌고, 카페나 폐쇄 커뮤니티 등으로 방법은 더 음성적으로 숨었다. 매일 대란은 있다는데 실제 제품을 그 값에 구입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즈음 열린 토론회들에서는 외려 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단말기 구입 가격을 낮추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보조금은 순기능보다 시장을 어지럽히고, 통신사의 요금 인하 여력을 낮추는 악재로만 남아 있었다. telecom_fee_02 10월 : 단통법 시행 ‘해법은 단통법밖에 없다’는 분위기로 이어졌고, 법안 통과는 잰걸음을 걸었다. 단통법 시행에 대해 찬반 여론이 갈리긴 했지만 미래부의 의지가 강했고, 사회적 분위기도 보조금 전쟁을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 없다는 쪽으로 흘렀다. 문제는 시행령만 남았다. 하나는 보조금 안에서 통신사와 제조사가 부담하는 금액을 나누어서 공지하는 분리공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조금 상한선이었다. 보조금 상한선은 보수적으로 정해졌다. 6개월에 시장 상황에 따라 한번씩 바꿀 수 있는데 첫 번째는 30만원이었다. 보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보조금을 올리면 단말기 가격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보조금 분리 공시는 제조사들의 입김이 더해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smart_phone_img_600 그리고 10월1일 단통법이 시작됐다. 보조금은 이제 정확한 규칙대로 지급됐다. 차별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가격으로 스마트폰을 살 수 있게 됐다. 그게 전부였다. 대란이 없으니 인터넷에서 보조금을 찾아 헤매던 이들은 스마트폰 값이 하루 아침에 껑충 뛰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돌아보면 최신 제품에는 기존에도 거의 보조금이 실리지 않았는데 단통법 때문에 단말기 부담이 늘어난 것처럼 극단적인 분위기가 생기면서 ‘갤럭시노트4’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대체로 단말기 가격은 올랐다.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 제품들이 공짜폰에 가깝게 판매되곤 했는데 이게 싹 자취를 감췄다. 보조금을 공평하게 주어야 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보조금 액수를 섣불리 늘리지 못했고, 국내에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회사들 중 팬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가격을 내릴 수도 없었다.

이제 스마트폰은 함부로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잡혔다. 그 사이에 통신사들은 요금을 내리지도 않았다. 기존에는 영업정지를 앞두고 여러가지 요금제를 둔 경쟁이 있었지만 단통법 이후에는 그 마저도 없어졌다. 법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잠잠히 시장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단말기 가격은 오르고, 요금은 내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단통법에 씌워졌다.

11월 : 고쳐보자 단통법, 그리고 ‘아이폰6’ 단통법은 시행 한 달 만에 거의 만신창이가 됐다. 연일 부정적인 반응만 이어질 뿐이었다. 실제로도 모두가 비싸게 사는 법, 새로운 단말기 보급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벗기 어려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통신사에 내는 요금 외에 매달 내는 단말기 할부금 역시 통신비용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묘한 일이 벌어졌다. 마냥 얼어붙어 있던 스마트폰 시장이 ‘아이폰6’와 함께 움직인 것이다. 기대 이상으로 수요가 많았다. 추운 날씨에 밤을 새 아이폰을 받아가는 풍경도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아이폰 출시 다음날인 11월1일부터 다시 보조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결국 11월 2일 새벽에 들어가면서 아이폰6와 6플러스 16GB에 대해 50~60만원대 보조금이 쏟아졌다. 이건 제조사가 아니라 전부 통신사가 부담한 보조금이다. IPHONE6_ (1) 이 사건으로 단통법은 무용론이 제기된다. 각 통신사 대표를 형사처벌하겠다는 엄포도 나왔다. 슬슬 이야기가 나오던 단통법 수정안도 힘을 받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이 가장 먼저 단통법을 손보자며 수정안을 제시했다. 현재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배덕광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 등이 잇달아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참에 요금인가제를 없애자는 심재철 의원의 안도 있었지만 이는 초점에서 벗어난 것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렇게 4가지 수정안이 발의되거나 대기 중이다.

평가는 2015년으로 단통법 시행은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되긴 했지만 효과가 아예 없진 않았다. 일부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출고가가 내려가기도 했고, 약정 위약금을 덜어낸 순액 요금제 같은 제도도 나왔다.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인데, 늘 가장 비싸고 좋은 스마트폰을 사야 한다는 부담에서, 싸면서 필요한 기능들을 갖춘 제품을 고른다는 생각이 서서히 시장에 깔리고 있다. 하지만 그 약간의 과소비가 스마트폰과 통신 시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저가폰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소비자의 판단보다 마케팅 비용이 특정 제품의 판매를 좌지우지하던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근 단통법이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정착된 것도 있지만 제조사, 통신사, 시장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된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아이폰6 대란으로 통신사와 제조사들이 다시 정부 눈치를 보게 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기나긴 보조금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모습이다. 덕분에 시장 과열도 식었다. 단말기 제조사와 판매점 등은 내년 걱정에 분주하다. 반면 통신사들은 모두가 경쟁하던 분위기에서 모두가 경쟁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한숨을 더는 눈치다. 보조금 전쟁은 마무리되지만 단통법을 둔 요금 전쟁은 통신사들이 단통법 이후 첫 실적 발표를 하는 2015년 초부터 다시 시작된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